“식인사건 밀리 환초에서 4년간 조선인 218명 숨졌다”

광주=이형주 기자 2024. 6. 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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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태평양 밀리 환초(環礁·산호초 섬이 띠 모양으로 연결된 곳)로 끌려가 총기 학살과 굶주림 등으로 숨진 조선인이 20세 청년을 포함해 총 218명이라는 일본 학자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1990년부터 밀리 환초 학살 사건을 연구해온 다케우치 씨는 "1973년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제공한 피징용 사망자 연명부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류한 결과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밀리 환초에서 숨진 조선인이 총 218명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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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제동원 연구자인 일본인 다케우치 야스토 씨(가운데)가 7일 광주시의회에서 ‘강제동원 조선인 남양 밀리환초 칠본섬에서의 저항과 학살’을 주제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함께 기자회견하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일제 강점기에 태평양 밀리 환초(環礁·산호초 섬이 띠 모양으로 연결된 곳)로 끌려가 총기 학살과 굶주림 등으로 숨진 조선인이 20세 청년을 포함해 총 218명이라는 일본 학자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7일 일제강제동원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竹内康人·67) 씨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주최로 광주시의회에서 열린 ‘강제동원 조선인 밀리 환초 칠본섬에서의 저항과 학살’ 기자회견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1945년 3월 18일 태평양 마셜제도 동남쪽 끝자락 밀리환초(環礁)에서 미해군에 의해 구조된 조선인 근로자들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1945년 3월 18일 태평양 마셜제도 동남쪽 끝자락 밀리환초(環礁)에서 미해군에 의해 구조된 조선인 근로자들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1990년부터 밀리 환초 학살 사건을 연구해온 다케우치 씨는 “1973년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제공한 피징용 사망자 연명부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류한 결과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밀리 환초에서 숨진 조선인이 총 218명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사망자의 창씨개명 이름과 출신지, 출생연도 등을 공개하면서 최연소자는 20세, 최고령자는 53세였다고 밝혔다.

밀리 환초는 일제가 1942년 3월 비행장 건설 등을 위해 조선인 800~1000명을 데려가 강제노역시켰던 곳이다. 일본군은 보급이 끊기자 조선인을 살해해 인육을 먹었고, ‘고래고기’라고 속여 배급했다. 이를 눈치 챈 조선인들이 저항하자 기관총을 난사해 55명을 학살했다. 밀리 환초 사망자는 당시 미국 해군이 조선인을 구조하면서 촬영한 사진 등을 토대로 ‘최소 125명’ 등으로 추정됐으나 그간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제강제동원 연구자인 일본인 다케우치 야스토 씨(가운데)가 7일 광주시의회에서 ‘강제동원 조선인 남양 밀리환초 칠본섬에서의 저항과 학살’을 주제로 기자회견하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역사 교사 출신인 다케우치 씨는 1990년 11월 3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밀리 환초 사건을 알게 된 뒤 30년 넘게 이를 연구해왔다. 그는 “내년 밀리 환초 사건 80주년을 앞두고 피해를 명확하게 밝히는 진상 규명을 해야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라며 “희생자의 유해봉환과 일본의 사과·배상 요구, 추모 등에 유족이 참여할 수 있도록 명단 공개를 결정했다”고 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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