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추락 그리고 비상···기회가 된 경제위기
대기근·세계대전·미국 대공황 등
현대 경제사 흔든 7대 사건 조명
1840년대 공급 쇼크로 경제마비
증기·철도 개발로 공급망 다변화
좋은위기·나쁜위기 반복된 역사
팬데믹·AI시대의 경제해법 모색
1840년대에 유럽에서 불어닥친 최대 위기는 사람과 농작물을 가리지 않고 퍼진 전염병이었다. 독일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호밀빵에 들어가는 호밀 가격이 1844년부터 1847년까지 3년 간 118% 치솟았고 감자 가격은 131% 올랐다. 이 시기 아일랜드는 ‘감자 마름병’으로 감자 수확량의 8할을 폐기 처분해야 했다.
문제는 못생긴 감자로 꼽히는 ‘럼퍼 감자’가 아일랜드에서만 재배되던 품종이었다는 것. 럼퍼 감자는 1845년만 해도 1.5실링에 거래됐으나 한 해가 지나자 6실링으로 4배 가량 뛰었다. 일반 시민들이 주식을 먹지 못하게 되자 영양실조로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근대 이후 유럽에서 경험한 사실상 첫 ‘공급 위기(공급 쇼크)’로 꼽힌다.
역사가인 조너선 스퍼버는 이 시기 이 같은 위기들을 ‘전환의 위기(Crisis of transition)’라고 표현한다. 위기지만 이는 새로운 도약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전환점이 된 위기라는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유럽 역사와 세계화를 연구하는 해롤드 제임스 교수는 이런 부분에 집중해 1840년대의 식량 기근부터 2020년의 팬데믹까지 경제사를 뒤흔든 7개 전환의 위기를 살폈다. 신작 ‘7번의 대전환(21세기북스 펴냄)’의 원제는 ‘7번의 추락(Seven Crashes)’이지만 국내 번역 출판되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제목에 조금 더 직접적으로 담겼다.
저자에 따르면 1840년대의 공급 쇼크는 ‘운송 혁명’으로 이어졌다. 공급 쇼크를 해소하는 제 1 원칙은 투입을 늘리는 것이고 이는 공급망의 다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운송 기술은 당시에 충분히 무르익어 있었다. 1776년에 매슈 볼턴과 제임스 와트가 증기 기관을 생산했지만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1825년에야 영국 최초의 철도가 개통된 상태였다. 하지만 공급 쇼크로 인해 철도의 개통은 더욱 빨라졌다. 최초의 증기선인 ‘그레이트 웨스턴’이 1838년 대서양을 횡단했지만 해상 수송이 본격화된 것도 1850년대에 들어서였다.
1970년대의 ‘오일 쇼크’ 역시 대표적인 공급 위기로 꼽힌다. 일부 산유국의 원유 공급 조절로 시작된 오일 쇼크는 자원 보유국이 경제적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지만 동시에 세계화를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이 시기 국제 상거래에 혁명을 일으킨 ‘컨테이너 수송 체계화(Containerization)’가 시작됐다. 표준화된 규격의 컨테이너는 1950년대에 등장해 미국 최초의 컨테이너 항구인 뉴저지 엘리자베스 항만청 해상 터미널에서 볼 수 있었다. 컨테이너 운송은 오일 쇼크가 본격화된 1970년대부터 본격화했다.
이 시기 제트기 역시 대규모 운송 수단으로서 활약을 시작했다. 결국 1840년대와 1970년대 철도와 컨테이너 선박과 같은 혁명적 기술이 빠르게 대중화된 것은 위기가 촉발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불확실성과 정치 혼란은 훨씬 더 폭넓은 실행을 밀어붙이거나 실행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했다. 위기에 당면할 때 자본주의는 위기를 해결하는 창의성과 생산성을 발휘해낸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암울할 때 자본주의는 이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해결책을 고안한다는 것이다.
물론 ‘좋은 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나쁜 위기’도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게 수요 쇼크로 촉발된 위기 중 하나인 1920년대의 대공황이다. 수요가 붕괴했을 경우 무역을 통해 넘쳐 나는 공산품은 오히려 ‘재앙’이 된다. 이 때 국가들은 저마다 활짝 열어뒀던 문을 걸어 잠그고 디플레이션에 대응했다. 이 시점 국가간 갈등이 초래되고 결국 세계 제2차대전의 불씨가 돼 세계화는 크게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최근에 겪은 위기인 팬데믹은 어떨까. 초기에는 디플레이션 위기의 색채를 띠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둔갑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래없는 불확실성을 낳았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화와 인공지능(AI) 개발이 가속화하고 있다. 하지만 AI의 발전은 지구상의 불평등을 더욱 빠르게 키울 수 있다. 위기로부터 배우고 풀어야 할 문제는 점점 고차방정식으로 진화 중이다.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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