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약혼남의 역겨운 책들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6. 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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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애서광들'은 1895년 프랑스 작가가 쓴 단편소설집이다.

이 책이 130년 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이 책에 수록된 소설 '시지스몽의 유산' 때문일 것이다.

엘레오노르는 자신의 불행이 책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상속인 엘레오노르는 저 유언에서 언급된 책 때문에 오십이 넘도록 결혼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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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이후 130년간 살아남은 '여성의 책 복수극'

책 '애서광들'은 1895년 프랑스 작가가 쓴 단편소설집이다. 책에 미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11편을 모았다.

이 책이 130년 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이 책에 수록된 소설 '시지스몽의 유산' 때문일 것이다. 무슨 내용일까.

엘레오노르는 자신의 불행이 책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약혼자였던 시지스몽의 이상한 유언 때문이었다. 생전에 시지스몽은 그야말로 '책에 미친 놈'이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남기고 죽었다.

'서가의 책을 현재 위치에서 옮기지 마시오. 한 권의 책도 팔지 말 것이며, 1년에 1회 내 생일날 내 친구들에게 12시간만 공개하시오.'

상속인 엘레오노르는 저 유언에서 언급된 책 때문에 오십이 넘도록 결혼을 못했다. 엘레오노르는 자신의 불행이 그의 책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복수'를 다짐한다. 시지스몽이 남긴 책의 위치를 1㎝도 이동시키지 않아 유언을 따르지만 저택 지붕을 뚫어 일부러 비를 맞게 하고, 쥐 떼까지 풀어 갉아먹히게 한 것.

책은 곰팡이 천지가 된다. 그리고 썩어 들어간다.

시지스몽의 친구들은 책의 파괴와 소멸을 관망하지 않기로 했다. 시지스몽의 친구 기유마르는 엘레오노르에 거짓으로 청혼한다.

녀석의 속내는 이랬다. '엘레오노르의 법적 남편이 되면 시지스몽의 책을 전부 내 소유로 만들 수 있다.' 기유마르에게 엘레오노르는 '역겨운 책들' 앞에서 말한다. "네, 보시다시피 시지스몽의 유언은 충실히 지켜지고 있습니다. 한 권의 책도 움직이지 않고 원래의 자리에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으니까요."

그는 기유마르의 청혼을 거절한다. 저의를 간파해서다.

그러자 기유마르는 말한다. "제발, 아가씨! 결혼하고 싶지 않다면 나를 양자로 삼아주십시오. 당신의 아들이 되겠습니다. (중략) 그럼 내가 당신을 양녀로 삼겠습니다. 아버지도 좋고 삼촌도 좋습니다!"

기유마르는 엘레오노르를 설득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책 소유욕'이 불러오는 인간의 파멸을 이야기한다. 따지고 보면 책은 종이와 잉크의 합일 뿐이지만 많은 독자가 책에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저 욕망은 때로 집착과 광기로 변질됐다. '책의 영원한 소유'는 '책의 참된 이해'와 동의어일까?

굳이 이 소설이 아니어도 좋다. '애서광들'엔 진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케르아니 기사의 지옥'이란 소설은 음란한 삽화만 모으는 수집가를 다룬다.

'책의 종말'이란 제목의 또 다른 글에서 저자 옥타브 위잔은 미래의 책을 예언하기도 했다.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예언이다.

"…우리 종손들은 인쇄로 책을 만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때쯤이면 인쇄술이 시대에 뒤진 방법이 될 것이고, 지금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사진에 의해 쉽게 대체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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