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태양빛으로…인류 공간을 예술로 승화시킨 거장 칸
샌디에이고 '소크 연구소'
해 길이까지 완벽하게 계산
20세기 건축 뒤흔든 천재
어린시절부터 삶·사랑 다뤄
46만달러 부채만 남긴
사업가로서의 이면도 소개
괴테는 말했다. "건축은 냉동된 음악이다."
건축사에서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인 괴테의 이 말은 20세기 한 건축가에 의해 수정됐다. 건축은 냉동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흐르는 음악"이라는 것. 그는 건축 설계도를 "악보"에 비유했다.
그의 이름은 바로 루이스 칸(1901~1974). 콘크리트와 태양빛으로 인류의 수천 년 건축사의 방향을 수정해버린 위대한 건축가 칸은 오늘날 하나의 역사로 남았다. 칸의 삶과 건축을 다룬 평전이 사후 50년을 기념해 한국에도 출간됐다. 2017년 해외에서 출간된 뒤 뉴욕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이코노미스트 등 유명 언론에서 모두 찬사를 쏟아낸 '진짜 명저'다. 펼치는 페이지마다 은은한 광휘로 가득한 책 '루이스 칸, 벽돌에 말을 걸다'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이 책은 칸의 출생이 아닌, 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역순이다.
72세 나이의 칸은 1974년 뉴욕의 펜역 건물의 화장실에서 곱게 누운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됐다. 경찰관이 인공호흡을 시도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사인은 관상동맥 폐색. 칸의 죽음이 확정된 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전 세계 언론이 그의 죽음을 추도했다.
왜일까. 칸은 20세기 건축사의 천재 중 천재, 건축사의 물줄기를 바꾼 장인이었기 때문이다.
소년 칸은 예술적 재능이 차고도 넘쳤다. 부친은 아들이 화가가 되길 바랐다. 유년 시절의 칸은 자기 내면의 세계에 침잠하길 즐겼다. 책에 따르면 한때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베껴 그리던 칸은 나폴레옹의 '왼쪽 눈'이 잘 그려지지 않아 답답해했다. 나폴레옹 동공을 그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들의 그림을 그의 아버지가 침착하게 수정해줬다. 그러나 조용했던 아이는 뜻밖에도 아버지에게 화를 냈다. "이건 제 그림이 아니라 아버지 그림이잖아요." 소년은 연필과 종이를 던져버렸다.
성인이 된 칸이 선택한 장르는 바로 건축이었다. 건축은 공간의 예술이면서 동시에 시간의 예술이었다. 그림을 보려면 미술관에, 공연을 보려면 콘서트에 가야 했다. 하지만 건축은 그 자체로 인간을 한 공간에서 경험하게 하는 초월적 예술이었다.
'소크 생물학 연구소'는 칸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82m 길이의 직사각형 형태의 광장이 양측 건물 사이에서 태평양을 마주 보도록 설계된 작품이다. 이때 칸의 선택은 콘크리트와 태양이었다. 태평양과 마주 보는 광장엔 폭 30㎝짜리 수로가 직선으로 흐른다. 춘분과 추분에는 수로와 태평양이 만나는 지점에 해가 지나간다. 이 책의 저자는 소크 생물학 연구소의 이 광장을 "하늘을 천장으로 하는 하나의 방"이라고 표현한다.
'킴벨 미술관'은 또 어떤가. 한국의 유명 건축가 유현준이 유튜브에서 극찬하기도 했던 킴벨 미술관은, 이 책에 따르면 "완벽한 조화"의 공간이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아치 모양의 천장은 고대 로마의 천장 구조를 가져오면서 동시에 빛을 끌어들여 '부드러운 콘크리트'를 구현했다. 알루미늄 반사판이 중앙의 틈을 통해 들어와 미술품을 은은하게 비춘다. "콘크리트로 만든 대성당"인 셈이다.
1952년 이후 40여 개 건축물을 남긴 칸은 생전에 235개 건축물을 설계했고 결국 81개를 실제로 남겼는데, 그의 상상들은 건축사의 교과서로 남겨졌다.
평전은 언제나 해당 인물에 대한 칭송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책은 '형편없는 사업가'로서의 칸도 조명한다. 칸의 회사는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렸고 사후 '46만달러의 부채'만 남겼다.
하나의 건축물에도 빛과 그림자는 공존하는 법. 한 인간이 삶이라는 무형의 건축물을 쌓는 존재라면, 칸은 그림자 속에서도 존재한다. 다만 이 책은 직시한다. 한 인간의 '창조의 계단'에 오르는 긴 과정을.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콘크리트와 벽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칸은 생전에 벽돌에 말을 걸었다고 한다. "네가 원하는 게 뭐지?" 그러면 벽돌이 대답했다. "난 아치가 좋아." "아치를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어. 대신 개구부 위에 콘크리트 상인방을 사용할까 해. 어떻게 생각해?" 그러나 벽돌은 처음과 다름없는 어조로 말했다. "난 아치가 좋아." 그 들리지 않는 대화가 칸의 작품으로 남았다.
[김유태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8천개의 눈이 지켜본다”…김호중 꼼짝못하게 한 ‘이것’ - 매일경제
- ‘간헐적 단식’ 창시자 英 모슬리, 그리스 휴가 중 실종 - 매일경제
- “초저가 열풍에 질렸다”…서울 문닫은 식당·카페 1분기만 6천곳 - 매일경제
- “살가죽과 뼈의 경계가 무색”…2년 만에 돌아온 우크라 포로 - 매일경제
- “정년 70세로, 전국 처음”…2000여명 근무하는 ‘이곳’ 어디길래 - 매일경제
- ‘7공주’ 막내 박유림, 대치동 수학강사 됐다…전교 1등 비결 묻자 한 말 - 매일경제
- 서울대병원 ‘전체휴진’ 결의…의협도 오늘 ‘총파업’ 투표 마감 - 매일경제
- 트럼프 유죄 평결 후 바이든과 지지율 격차 3%P서 1%P로 줄어 - 매일경제
- “여기저기 ‘서민 커피’ 늘어나더라”…초저가 열풍에 자영업자 ‘한숨’ - 매일경제
- ‘韓 감독 간의 피 튀기는 경쟁’ 신태용 vs 김상식, WC 최종예선 티켓 누가 거머쥐나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