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 15주년 더 웅장해진 무대 더 뜨거워진 노래 '울컥'
정성화·민우혁·양준모 주연
EXID 솔지도 새롭게 합류
이제는 국가의 보물이 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그가 일본인 간수 지바 도시치에게 써준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그는 대한제국의 의병 지휘관으로 적국의 수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전쟁 영웅이지만 그 이상의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 재판에서 밝힌 거사의 목적과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이 그의 죽음을 인류의 평화를 위한 순교자적 희생으로 격상시켰기 때문이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909년 하얼빈 의거를 다룬 뮤지컬 '영웅'(연출 김민영)의 15주년 기념 공연이 관객을 맞고 있다.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2009년 초연됐던 '영웅'의 열 번째 공연이다.
뮤지컬이 그리는 영웅은 안 의사와 이토 두 사람이다. 안 의사는 위기에 처한 대한제국을 위해 무력 투쟁에 나선 군인, 이토는 일본을 아시아 유일의 열강으로 발전시킨 정치 지도자다. 상황은 다르지만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 자국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 다 영웅이다. 이토가 하얼빈행을 앞두고 일본 관료, 군인들과 함께 부르는 넘버 '출정식'은 68세 노인 이토가 가진 야망을 정열적으로 드러낸다. "내일은 발해로. 얼지 않는 항구 대련. 그 땅을 일본에. 만주가 우리의 땅. 거기까지가 나의 꿈. 그다음부턴 너희들의 꿈을 이루어라."
안 의사가 이토를 넘어서는 인물로 거듭나는 것은 그가 러시아 하얼빈에서 이토를 사살한 이후다. 일본 관할 법원으로 넘겨진 그는 졸속으로 진행되는 재판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전 세계인들을 향해 거사의 목적을 당당히 밝힌다. 이제는 뮤지컬을 보지 않은 사람도 알만큼 유명한 넘버 '누가 죄인인가'를 통해 을사늑약과 정미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 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등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천명한다.
안 의사가 이토와 차원을 달리하는 것은 그가 전쟁의 논리를 넘어 평화를 역설했기 때문이다. 열강들이 약소국을 침탈하는 야만의 시대에 평화와 상생의 뜻을 품었고 그 뜻을 알리기 위해 의거를 계획해 성공시켰다. 단순히 대한제국의 이익이 아닌 인류의 화합이라는 한 차원 높은 가치를 내세운 것이다. 동양평화가 무엇이냐는 간수 지바의 질문에 안 의사는 답한다. "나의 손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토를 쐈지만 내 아들의 손은 기도를 하는 손이 되는 것. 그것이 동양평화요."
인류의 평화를 역설하는 안 의사의 모습을 뮤지컬은 성인의 모습으로 그린다. 동양 3국의 평화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자신과 동포를 박해한 일본인들을 미워하지 않는 모습, 천주교 신자로서 늘 신을 찾는 모습 등은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았다. 의거에 성공하기 전, 사형이 집행되기 전 인간적인 고뇌를 겪는 모습 또한 숨이 끊어지기 전 신에게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쳤던 인간 그리스도를 떠오르게 한다. 뮤지컬은 안 의사가 고뇌할 때 무대의 배경이 스테인드글라스 등 천주교적 이미지로 채워지게 연출한다. 형장에서 안 의사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연출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리스도를 연상케 한다.
22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영웅'은 무대 디자인이 탁월한 작품이다. 연해주 자작나무숲, 블라디보스토크, 하얼빈역, 뤼순 재판소 등을 실감나게 구현하고 장면의 전환 또한 자연스럽다. 특히 여러 층의 철제 구조물을 활용해 독립군과 일본군의 추격전을 묘사한 장면은 박진감이 넘친다. 눈발을 뚫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조선인 밀정 설희가 이토 암살을 시도하는 장면은 실제 눈과 기차를 보는 듯 생생하다.
지난 시즌에 안중근 역을 맡은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유리아, 솔지(아이돌 EXID 멤버), 최유정(Weki Meki 멤버) 등이 새로 합류했으며, 2022년 개봉한 영화 '영웅'에서 지바를 연기했던 일본인 배우 노지마 나오토도 이번 뮤지컬 '영웅'에서 지바 역으로 출연한다. 공연은 8월 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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