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갉아먹는 ‘아부권력’[오늘을 생각한다]

2024. 6. 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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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은 퇴역 장군 김병관을 국방부 장관에 지명했다.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주식 신고 누락 의혹, 부동산 투기 의혹, 군납 로비스트 의혹 등 20여 가지 의혹이 줄줄이 터지며 ‘의혹 종결자’라는 별명이 붙었고, 천안함 침몰 다음 날 골프를 친 사실도 드러났다. 여당 측에서조차 사퇴 요구가 빗발쳤고, 대통령이 왜 그런 인물을 지명했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의문을 풀어준 것은 한 언론사의 카메라에 찍힌 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 속 그가 손에 쥔 휴대전화에는 박정희·육영수 내외의 사진이 인쇄된 열쇠고리가 달려 있었다. 실제로 대통령이 열쇠고리 때문에 그를 지명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우스꽝스러운 보은인사는 주변 정치인들과 정치군인들에게 뚜렷한 메시지를 주었다. ‘이 대통령은 아부를 좋아한다.’

김 후보자는 결국 사퇴했지만, 이 해프닝은 박근혜 정권이 4년 내내 몸살을 앓았던 ‘진박논란’의 예고편이 됐다. 권력자 근처에서 발생하는 ‘아부권력’의 냄새를 모두가 맡은 것이다.

아부권력이 발생하는 자리에서는 늘 과잉의전과 심기경호가 벌어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12일 김종철 대통령경호처 차장을 신임 병무청장에 임명했다. 김 청장은 지난 1월 강성희 진보당 의원과 2월 카이스트 졸업생이 대통령경호처 요원들에 의해 강제 퇴장된 소위 ‘입틀막 사건’의 책임자다. ‘입틀막’을 치하한다는 것의 어떤 의미인가. 대통령이 심기경호에 만족하고 있으며 아부권력을 용인한다는 뜻이다.

“박정희의 경호실장 차지철은 각하를 보호하겠다며 밤마다 청와대로 탱크부대를 출동시켰다. 전두환의 경호실장 장세동은 ‘심기경호’라는 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두 사람은 정권의 2인자로 불리며 막강한 권세를 누렸지만, 국민적 공분을 사 정권 몰락의 주역이 됐다.”


심기경호를 받는다고 권력자의 권력이 더 강해지지는 않는다. 위압적인 권력 행사는 오히려 권력을 약화시킨다. 반면 심기경호의 실행자들은 권력을 갉아먹으며 득세한다. 박정희의 경호실장 차지철은 각하를 보호하겠다며 밤마다 청와대로 탱크부대를 출동시켰다. 전두환의 경호실장 장세동은 ‘심기경호’라는 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심기경호의 아이콘이 된 두 사람은 정권의 2인자로 불리며 막강한 권세를 누렸지만, 국민적 공분을 사 정권 몰락의 주역이 됐다. 심기경호는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명품백 논란’을 우려한 한동훈에게 가했던 대통령실의 사퇴압력도, 정권에 비판적인 평론가들에게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내린 무더기 징계도 대통령 심기경호의 일환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 일들이 실제로 아첨의 의도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그런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는 사실은 대통령의 ‘스타일’에 관해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드러난 권력은 약화된 권력”이라고 지적했다. 심기경호는 권력의 위세를 고압적인 방식으로 드러내지만, 권력자에 대한 악감정을 고조시켜 권력을 약화시킨다. 현명한 권력자라면 나의 권력을 훼손한 사람에게 상을 내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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