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전삼노’, 현대·기아차 노조의 전철 밟지 말아야 [김대호 쓴소리 곧은 소리]
한국의 대기업 노조는 사회적 강자…회사에 ‘국내 기피’ 현상 생기면 다 손해
(시사저널=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5월29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파업을 선언했다. 1969년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처음이자, 최초 노조 설립(2018년 3월)으로부터 6년 만이다. 한국노총 소속인 전삼노는 2019년 11월 사내 4번째로 설립되었지만, 급속히 세를 불려 삼성전자 5개 노조 중 최대 노조로 성장했다. 전체 직원 12만여 명의 20%가량인 2만8000명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 전삼노 조합원은 삼성전자 4대 사업부문 중 하나인 DS(반도체)부문 직원이 대다수로 알려져 있는데, 핵심 요구사항은 임금 인상, 유급휴가, 성과급 지급방식 변경 등이다.
삼성, 최고의 직장·최대의 납세자로 남아야
삼성전자는 관행에 따라 노사협의회에서 올해 초 평균 임금인상률 5.1%에 합의했다. 하지만 6.5% 인상을 요구해온 전삼노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5.1%를 초과하는 임금 인상과 유급휴가 1일 추가를 요구했다. 그 외에도 성과급을 영업이익 기준으로 지급할 것도 요구했다.
삼성전자의 4대 사업부문은 DS(반도체), DX(휴대폰가전), DP(디스플레이), 하만(스피커 등)인데 경영 실적 차가 크고, 연도별 등락도 심하다.
2023년 실적은 DS부문 영업이익은 -15조원이지만, DX는 +14조원, DP는 +6조원, 하만은 +1조원이다. 삼성전자 직원의 작년 평균 임금(등기이사 제외)은 연봉의 50%가량인 성과급을 포함해 1억2000만원 정도인데, 실적이 저조한 DS부문은 성과급이 없기 마련. 이로 인한 불만이 이번 단체행동의 동력이 되었음은 불문가지다. 전삼노는 파업 선언은 했지만, 실제 단체행동은 6월7일 집단 연차휴가 사용이다. 6월6일은 현충일이고, 8일과 9일은 주말이기에 7일을 연차휴가로 사용하면, 4일간의 연휴를 얻게 된다. 조합원들이 참여하기는 쉽지만, 쟁의행위를 선언한 상태라서 사측은 불법 시비를 걸래야 걸 수 없다. 1987년 이후 노조운동의 관행으로 보면, 지금 전삼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체행동을 통해 작은 것 하나라도 쟁취하는 승리의 경험이다. 사측은 대응할 수단과 방법이 거의 없어 곤혹스러울 것이다.
섣부른 대응을 했다가는 노동전문 변호사를 여럿 거느린 한국노총·민주노총은 물론이고, 총선에서 금배지를 단 노조 간부 출신 국회의원 16명(민주당 12명, 진보당 1명, 국민의힘 3명)도 득달같이 달려올 것이다. 게다가 전삼노 간부들은 노조 탄압이 정치·사회적 이슈가 되기만 하면, 유명 인사가 되고 장차 국회의원까지 노릴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 점에서 삼성전자 경영진과 관리직은 전삼노하고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양대 노총과 민주당·조국혁신당 등 192석 야당과 민변 등 수많은 진보 시민·노동단체와 MBC·한겨레 등 진보언론의 연대체와 싸우는 것이다. 엄청난 무지와 착각이지만, 이들에게 삼성은 불평등·양극화의 원흉인 재벌 대장이기 때문이다. 이재용을 청탁과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2차례에 걸쳐 총 761일간 구속한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정부 자체가 노조와 한패였다. 사실 삼성의 무노조 방침이 폐기된 것은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삼노는 사용자 측의 무기는 계속 빼앗고, 노조 측의 무기는 점점 더 늘려준 한국 특유의 노동관계법의 엄호도 받아왔다. 그런데 법원과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의외로 대기업 노동 현실을 잘 모른다. 공권력도 노조의 불법 폭력행위에 대한 진압을 꺼린다. 진압경찰을 타깃으로 한 소송(쌍용차 사건 등)에 데어서다. 노동위원회는 근로자에게 편파적이고, 책을 통해 노동 현실을 배운 상당수 법관 역시 노조와 근로자의 눈물에 지나치게 온정적이다.
근로자에게 지나치게 온정적인 노동법 체계
헌법과 법률이 노조운동을 보장함에도, 삼성이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고, 상당수 경영자·관리자·기술자와 지식인들도 우려 섞인 눈으로 노조운동을 바라보는 것은, 한국에서 노조는 유럽·미국·일본과 달리 사회적 약자의 무기가 아니라, 사회적 강자의 무기, 곧 사회적 약자의 몫을 빼앗는 흉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헌법 제33조에서 노동3권을 보장한 것은 노조가 단체교섭을 통해 직무에 따른 기업횡단적인 근로조건의 표준을 형성해, 교섭력 약한 근로자의 권익 증진에 이바지한다고 보았기 때문인데, 한국의 힘센 노조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
그 결과 근로조건은 기업의 지불능력과 노조의 교섭력(투쟁력)의 함수가 되고, 사람값(근로조건)은 개인의 직무성과(생산성)가 아니라 소속(직장)에 따라 천양지차다. 한마디로 직장이 곧 계급인 사회, 대기업·공공부문 종사자는 곧 양반·귀족인 사회가 된 것이다. 근로자나 노조 간부의 심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법제도와 해석이 이를 조장해 왔기 때문이다.
헌법은 근로자와 노조 역시 사용자와 사용자단체와 마찬가지로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없다. 퇴사·이직과 해고, 파업과 직장폐쇄로 대표되는 노사 간 무기의 대등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없다. 예컨대 노조법 제42조와 제43조는 파업 시 노조의 사업장 점거는 폭넓게 허용했지만, 사용자의 대체인력 투입은 엄격히 금했다. 제81조(부당노동행위)에서는 오직 사용자에 대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행위를 무려 900여 글자로 세세하게 적시해 놓고, 위반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있다. 사용자의 웬만한 노조 대책은 부당노동행위로 걸면 걸리게 돼있다.
근로기준법 제23조와 제24조는 정당한 사유 없는 해고를 금했는데, 한국 법관들은 선진국보다 이 사유를 아주 엄격하게 해석한다. 따라서 근로조건이 외부 노동시장 수준에 근접해, 오히려 숙련 근로자의 이직을 걱정하는 중소기업은 해고가 어렵지 않지만, 하는 일(생산성)에 비해 근로조건이 좋은 곳은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직 여기서만 '해고는 살인'이라는 단말마가 튀어나온다. 이제 삼성전자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익숙한 단말마가 튀어나올 것이다.
이러니 투자와 고용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국내 투자·고용을 몹시 꺼릴 수밖에. 전삼노가 현대·기아차 노조의 전철을 밟으면 삼성전자도 국내 투자·고용을 기피하고 해외로 눈을 돌릴 것이다. 자동화·무인화와 외주화·분사화도 박차를 가할 것이다. 삼성전자 조합원들과 경영자·관리자·기술자들은 이 위험을 잘 알 것이다. 따라서 흑심을 품은 노조 간부들과 민노총·민주당·진보언론 등이 아무리 흔들어도, 대다수 조합원이 흔들리지 않고, 경영자·관리자들이 직원들의 정당한 요구·불만에 귀를 기울이는 등 건강한 조직문화를 견지하기만 하면, 삼성전자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업이자, 국내 최고의 직장이자, 최대의 납세자요, 애국자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노조는 익숙한 전철을 밟지 말고, 윤 정부라도 삼성의 고군분투를 이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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