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축소형 민생회복지원금’은 어떨까[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35)
2년 전 주간경향에 ‘정책과 딜레마’라는 연재를 시작하면서 거의 모든 정책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으니,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의 관점으로 정책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러라도 딜레마에 빠져서 생각해봐야 정책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역설적이게도 딜레마를 고려한 정책 결정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정책 조합(policy mix)’이었다. 하나의 정책이 가진 단점, 한계, 부작용 등을 보완하는 정책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으로 최근 현안인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바로 지난 2년간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감세를 일부 철폐하고, 그 재원으로 추진하는 ‘감세 축소형 민생회복지원금’이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규모는 5년 90조원 규모
민생회복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역화폐의 형태로 지급하는 정책’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제22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추진 중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총선 시기인 지난 3월 24일 발표한 정책으로 이 대표가 5월 29일엔 “(소득계층별) 차등 지원도 수용”하겠다며 입장을 선회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반대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 정책에 대해 여야의 표면적인 찬반 공방 이외에 제대로 된 공론의 장이 펼쳐지지 못하고 있다. 민생회복지원금을 왜 이 시점에, 왜 전 국민에게, 왜 25만원을, 왜 지역화폐의 형태로 지급해야 하는지, 또 물가를 자극하지는 않을지에 대해 세심한 논의가 뒤따르지 않고 있다. 지금부터 이런 의문들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겠다.
민생회복지원금이 지금 시점에 필요한 이유는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고, 전체 경제 안에서도 내수 경제가 안 좋기 때문이고, 그중에서도 자영업자들의 다수가 위기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1분기 경제성장률이 최근 2년 3개월 만에 최고치인 전 분기 대비 1.3% 성장했기 때문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의 요건 자체가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은 제89조에서 재난과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 대내외 중대한 변화를 추경의 요건으로 삼고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만 가지고 지금의 경제 상황을 파악해선 곤란하다.
2023년 경제성장률은 1.35%로 한국경제사 70년 가운데 6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런 저조한 수치는 민간 경제가 침체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건전재정’을 내세운 소극적 재정 운용으로 정부의 성장기여도가 2023년 0.2%포인트 수준으로 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전 보수 정부와도 다른 행보다.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 정부의 성장기여도를 2.3%포인트로 끌어올렸다. 박근혜 정부도 2015년 전년보다 경기가 위축되자 정부의 성장기여도를 2014년 0.4%포인트에서 2015년 0.8%포인트로 증가시켰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경기가 위축될 땐 정부가 위기의 방패막이 돼주고, 경기가 과열될 땐 뜨거운 김을 빼는 역할을 하는 것은 경제 운용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 기본을 윤석열 정부는 지키지 않았다. ‘건전재정이 언제나 옳다’는 이념 때문이었다. 더 큰 문제는 무분별한 감세로 재정조차 불건전해졌다는 점이다.
경기침체와 정부의 감세가 맞물리면서 2023년 국세 세수입(세입예산안 기준)은 정부가 애초 들어올 것이라 예상한 400.5조원에 56.4조원 못 미치는 344.1조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상황은 여전하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세 수입은 125.6조원으로 전년 동기간보다 8.4조원 줄었다. 애초 예산안에서 예상한 세수입에서 실제 들어온 금액을 의미하는 ‘세수 진도율’은 34.2%로 대규모 세수 펑크가 발생한 작년(38.9%)보다 낮다. 이런 세 수입의 감소는 경기 위축과 정부 예측의 실패, 대규모 감세라는 세 가지 요인이 두루 작용한 탓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2022년과 2023년 세법 개정안으로 향후 5년간 총 77.8조원(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을 감세했다.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도 없다가 대통령의 즉흥적 발언으로 추진된 반도체 세액공제율 인상만으로도 5년간 13조원(나라살림연구소·21대 국회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추계)을 감세했다. 합치면 5년간 90조원 이상을 감세한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신음, 어디에서 비롯됐나
1분기 경제성장률로 인해 추경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달리 내수 경기(내수의 성장기여율은 3분기 연속 마이너스·원계열 기준)는 여전히 침체 상황이고, 지난 2년간 고물가 상황에서 가계의 실질소득은 감소(현 정부 기간 –1.1%포인트 감소)했고, 무엇보다 올해도 예상되는 대규모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해서라도 추경은 필요한 상황이다. 국회는 예산 심의·확정권이 있기 때문에 정부는 애초의 세수입 예측(세입예산안)과 지출 규모를 수정하는 세입경정 추경안을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생회복지원금과 같은 정책이 필요한 이유는 자영업 부문이 위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지표에서 드러난다.
한국은 올해 3월 기준 자영업자 수가 557만명(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으로 집계되는, 자영업 과잉 공급 국가다. 문제는 과잉 공급을 줄일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은퇴 창업도 여전하다. 그런데 최근의 위기는 구조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19 시기에 방역에 협조한 대가로 빚을 떠안았다가 최근 경기 침체와 식재료 가격 인상 등이 겹친 탓이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폐업한 서울의 일반음식점은 2020년 1만1633곳에서 2023년 1만4642곳으로 늘었고, 올해 4월까지 벌써 5248곳이다.
자영업자의 채무 상황도 심각하다. 나이스평가정보가 양경숙 전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개인사업자 대출 인원과 금액 규모가 2019년 말과 비교해 각각 60%, 51% 증가했다. 3개월 이상 상환하지 못한 자영업자의 수도 작년 말 6만1474명에서 올 1분기 7만2815명으로 늘었고, 다중채무자도 증가했다. 노란우산공제 폐업 공제금도 최근 급증세다. 상황이 이렇게 된 시작점엔 정부의 미온적인 코로나19 대응이 있었다. 국제통화기금이 발표한 ‘각국의 코로나19 대응 추가 재정 지출’에서 한국은 2021년 10월까지 GDP(국내총생산) 대비 6.4%를 지출했는데, 이는 선진국 10개국 평균(14.6%)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때부터 시작된 문제가 켜켜이 쌓여 금리와 물가 인상으로 터진 셈이다.
그렇다면 자영업 지원 정책으로 민생회복지원금은 적절할까. 전 국민이 아닌, 취약계층이나 자영업자들을 선별해 지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 방안 모두 여러 장단점이 있고, 이미 코로나19 시기에 1차 재난지원금(전 국민 대상)과 5차 재난지원금(하위 88% 소득계층 대상), 코로나19 손실보상 등으로 경험해본 적도 있다. 전 국민 지원이 손쉽고 신속하지만, 재분배 효과가 약하다. 선별 지원은 소득 자료의 한계(과거 시점의 자료·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부과체계 차이 등)를 보완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드는 문제가 있다. 소비자에게 지원할 것인가, 자영업자를 지원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만일 자영업자에게만 지원하면 상당 부분 부채 상환, 임대료 등에 쓰여 경기 활성화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비자와 자영업자, 양쪽을 지원하는 효과도 있다.
왜 25만원이냐고 물으신다면···
각각의 방안이 가진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의 하나는 ‘전 국민 지원’과 ‘감세 축소’를 연계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연간 18조원 규모의 감세를 단행했고, 이중 일부를 철폐한다면 민생회복지원금의 재원 13조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감세 축소와 연계한다면 재분배 효과도 탁월하다. 5년간 총 73.6조원의 감세 효과가 있는 2022년 세법 개정안의 경우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감세 규모가 34.8조원이 넘는다(국회 예산정책처 추계). 세금 감면은 고소득층일수록 더 큰 혜택을 받기 때문에 이를 줄이고 모두에게 지급하면 당연히 재분배 효과가 있고, 선별의 어려움도 없이 신속하게 전 국민에게 지급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왜 하필 1인당 25만원이냐는 질문에 답변해 보겠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규모 2000명에 빗대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지만, 25만원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수준의 규모라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한 나라가 모든 생산요소를 정상적으로 가동해 인플레이션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생산 수준이라는 ‘잠재 GDP’라는 개념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계로는 한국의 잠재 GDP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실질 GDP보다 큰 상황이다. 여러 이유로 달성 가능한 생산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단 의미다. 실질 GDP에서 잠재 GDP를 뺀 수치가 지난해 -0.42, 올해 -0.25로 추산된다. 이는 국가 GDP에 견줘볼 때 지난해 10조원 이상, 올해엔 5조원 이상의 생산이 증가해도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1인당 25만원을 지급하기 위한 13조원의 재정이 새로 풀릴 경우 추가 소비승수는 연구마다 다르지만 20~40%로 보고된다. 이 경우 2.6조~5.2조원의 추가 소비가 이뤄진다. 최근 물가의 여러 지표를 감안해도 한국 경제가 감당할 만한 추가 소비인 셈이다.
정치의 목적은 당연히 ‘사람들의 삶’(민생)을 개선하는 것이다. 심도 있는 정책 논의가 이어져 민생회복지원금이든, 혹은 같은 취지의 정책이 조속히 시행됐으면 한다.
아울러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 지난 2년간 정책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하게 해준 주간경향에 감사드린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윤형중 LAB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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