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을 가진 인간이 싸우는 방식...연극 ‘웃음의 대학’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4. 6. 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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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을 연구한 철학자 에리히 프롬(1900~1980)은 명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자유에는 고독과 책임이 따르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전체주의에 스스로 자유를 헌납했다고 분석했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인간성의 회복을 그린 코미디 연극 '웃음의 대학'(연출 표상아)이 관객을 맞았다.

웃음으로 제유(사물의 일부분이나 특징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비유법)되는 인간성과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 권력을 희화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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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연극 ‘웃음의 대학’
엄혹했던 군국주의 일본에서
웃음 주는 연극 공연하기 위한
극작가와 검열관의 줄다리기
자유 억압하는 국가권력 풍자
자유 향한 인간의 의지 그려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인간성의 회복을 그린 코미디 연극 ‘웃음의 대학’의 한 장면. 연극열전
파시즘을 연구한 철학자 에리히 프롬(1900~1980)은 명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자유에는 고독과 책임이 따르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전체주의에 스스로 자유를 헌납했다고 분석했다. 인간성의 발로인 자유를 시민들이 끊임없이 갈구해야 사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했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인간성의 회복을 그린 코미디 연극 ‘웃음의 대학’(연출 표상아)이 관객을 맞았다.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40년대 일본, 두 남자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있다. 한 명은 희극(웃음을 유발하며 사회 문제를 경쾌하게 다루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는 극작가, 다른 한 명은 시국에 맞지 않은 연극을 금지하는 임무를 맡은 검열관이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인간성의 회복을 그린 코미디 연극 ‘웃음의 대학’의 한 장면. 연극열전
엄혹했던 시기의 문화예술 검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웃음의 대학’은 시종일관 관객이 배꼽을 잡게 한다. 세상에 웃음 따위는 필요 없다고 믿는 검열관은 작품의 설정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햄릿’으로 바꾸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지만 작가는 지시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매번 대본을 더 웃기게 개작해 가져온다. 검열관이 다시 퇴짜를 놓으면 작가는 대본을 소리 내 읽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다면서 직접 연기를 하고, 더 엉뚱해진 연극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웃음의 대학’은 단순히 웃긴 것을 넘어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하는 희극의 본분을 다하는 작품이다. 웃음으로 제유(사물의 일부분이나 특징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비유법)되는 인간성과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 권력을 희화화한다. 검열관이 일본 국민의 충성심 고취를 위해 연극에 ‘천황 폐하 만세’라는 대사를 넣으라고 지시하면 작가가 극중 인물 햄릿의 말(馬)들의 이름을 ‘천황’ ‘폐하’ ‘만세’로 설정하는 식이다.

관객을 정신없이 웃게 한 뒤 연극은 자유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도 던진다. 작가가 왜 검열관의 반복되는 어깃장에도 포기하지 않는지, 통과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 왜 매번 더 웃기게 대본을 수정하는지에 대한 속내가 드러난다. 군국주의의 하수인이었던 검열관이 대본 수정을 거듭하며 점차 마음을 열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모습 역시 인간의 본성에 자리한 자유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인간성의 회복을 그린 코미디 연극 ‘웃음의 대학’의 한 장면. 연극열전
연극의 백미는 작가와 검열관이 테이블에서 함께 대본 수정에 몰입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바꿔앉는 장면이다. 검열을 하고 수검을 하는 수직적 관계였던 두 사람이 수평적 관계로, 더 나아가 연극을 더 잘 아는 작가가 검열관을 가르치고 호통을 치는 관계로 상황이 역전되는 순간이다.

삼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웃음의 대학’의 무대는 벽과 바닥이 모두 회색 빛인 사각형의 검열실로 구성됐다. 달력과 양동이, 뻐꾸기가 없는 뻐꾸기 시계 등 감방처럼 칙칙한 소품들이 놓였고, 창문 하나가 천장에 가까울 만큼 높은 곳에 뚫려있다. 창가에는 무대 위의 유일한 생물인 화초가 하나 놓여있다. 엄혹했던 시기에 미약하게 살아있는 자유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극작가 미타니 코키가 쓴 ‘웃음의 대학’ 1996년 일본 초연 뒤 요미우리 연극대상 우수작품상 등을 받은 작품이다. 영국, 러시아, 캐나다, 중국 등에서 공연됐으며 한국에서는 2008년 초연됐다. 이번 공연에는 검열관 역에 송승환·서현철, 작가 역에 주민진·신주협이 출연한다. 공연은 9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인간성의 회복을 그린 코미디 연극 ‘웃음의 대학’의 한 장면. 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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