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에 살 길은 명문대뿐” 中 수능 1342만명 혈투
7일 중국 대학 입학시험인 ‘가오카오(高考)’가 치러지는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고등학교 시험장. 비가 내리는 중에도, 교문 앞 도로에 세워진 경찰차 앞에 수험생 부모 10여 명이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차 번호판의 숫자가 1998년 5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발표한 명문대 육성 전략의 이름 ‘985′와 같았기 때문이다. ‘985 대학’은 베이징대·칭화대 등 상위 39곳을 가리킨다.
이 차와 나란히 주차된 경찰차 또한 ‘대박[發]’을 뜻하는 ‘888′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총 10대의 경찰차가 시험장 주변을 에워쌌는데, 의도적으로 ‘행운의 넘버’ 차량들을 정문 가까이 배치한 듯했다. 학부모들은 “베이징 105곳의 시험장 중에 이곳의 합격 기운이 가장 강력하다”면서 환호했다.
올해 가오카오에는 사상 최다인 1342만명이 응시했다. 작년(1291만명)보다 수험생이 51만명이나 늘었다. 코로나 확산과 거리두기로 인해 재수생이 적체된 것도 수험생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 이에 따라 4년제 대학 입학률은 작년(38%)보다 낮아진 36%로 예상되고, 중국에서 손꼽히는 100여 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응시생은 전체의 4%(60만명)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험난한 경쟁을 앞두고 수험생들은 일단 나라가 강조하는 ‘물리 우선주의’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중국 7개 성(省)에선 올해 처음 물리 과목을 강조하는 신(新)가오카오를 시행했다. 주요 대학에서 지원자의 물리 성적을 중요하게 보면서 물리 과목의 입시판 위상도 커졌다.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의 대(對)중국 봉쇄에 맞서기 위해 기술 자립에 국가 역량을 쏟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가오카오가 과학 인재 양성의 핵심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베이징의 가오카오 시험장 앞에서 만난 학부모들은 올해 가오카오에서 물리가 예년보다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왕모(45)씨는 “아들은 선택 과목으로 물리·화학·사상정치를 골랐는데, 학교에서 대학을 수월하게 가려면 물리와 화학을 필수로 고르라고 조언하더라”고 했다. 또 다른 수험생 어머니 장모(48)씨는 “베이징의 수능은 공식적으로는 나흘이지만, 수험생들이 선택한 과목이 비슷해 (물리·화학 시험을 치르는) 9일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중국의 헤이룽장·간쑤·지린·안후이·장시·구이저우·광시성 등 7개 성(省)에선 올해 처음으로 물리가 강조된 신(新)가오카오를 치른다. ‘3+1+2′로 불리는 방식으로, 수험생이 공통 과목인 중국어·영어·수학 외에 물리·역사 두 과목 중 하나를 고르고, 나머지 선택 과목 두 개를 채우도록 했다. 성적을 매길 때도 물리는 등급이 아닌 원(原)점수로 표시한다. 그동안 ‘덜 중요한 과목(次科)’으로 취급됐던 물리가 이젠 국·영·수와 비슷한 위상의 ‘제4의 과목’으로 지정된 것이다.
중국은 2014년부터 일부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입시 개혁을 시도했는데, 국·영·수 외에 세 과목을 임의로 고르도록 했다. 이때 물리 기피 현상이 일어나자 2017년부터 국·영·수 외에 물리 필수 선택 방식을 채택하는 지역을 늘렸다. 이젠 새로 합류한 7개 성을 포함하면 중국의 34개 성급 지역 가운데 68%(23곳)가 물리를 강조하는 가오카오를 치르게 됐다.
대학에서도 물리 과목을 이수한 응시생을 우대하고 있다. 2021년 중국 교육부가 내놓은 ‘대학교 전공 지원 요건 지침’에서는 이공계, 농업, 의학 전공 61개 가운데 55개의 지원 조건을 물리·화학 과목 이수로 못 박았다. 물리 시험 성적이 반드시 있어야 지원 가능한 대학 전공이 전체의 40%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물리 성적이 탁월한 학생의 명문대 특별 입학도 매년 화제가 된다.
중국 국가교육고시지도위원회 소속 전문가 첸지원은 최근 중국 관영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방은 중국이 40년 동안 빠르게 발전한 원인을 엔지니어(기술자) 군단 양성에서 찾는다”면서 “세계 각국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겨루는 상황에서 이공계 인재 양성은 가오카오의 중요한 목표”라고 했다.
중국 입시판에서는 문과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도 빈번해졌다. 3000만명 이상의 팔로어를 보유한 스타 입시 전문가 장쉐펑은 “인문계의 말로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되는 것”이라면서 “아이가 신문방송학과에 간다고 우기면 때려서라도 말리겠다”고도 했다.
이날 비가 내려 쌀쌀했지만, 수험생 어머니 중엔 자녀를 응원하기 위해 치파오(중국 전통 원피스)를 입고 온 경우가 적지 않았다. 치파오의 치(旗)가 한자 성어 ‘치카이더성(旗開得勝·군대가 깃발을 펼치자 승리를 얻는다)’의 첫 글자와 같아서다.
올해 시험은 대체로 7~10일 나흘 동안 치러진다. 중국 단오절 연휴(8~10일)와 겹친 덕분에 ‘이쥐가오쭝(一擧高粽·단번에 성공)’이란 응원 문구도 유행했다. 단오절에 먹는 연잎으로 감싼 찹쌀 주먹밥 ‘쭝즈’의 ‘쭝(粽)’ 자가 명중을 뜻하는 ‘중(中)’ 자와 발음이 비슷한 데서 착안한 언어유희다.
시험장 주변 호텔에서도 명문대를 상징하는 숫자인 985·211호 객실은 일찌감치 예약이 끝났다. 수험생과 부모가 편하게 묵을 수 있는 투 베드룸의 가격은 일부 호텔에서 평일 두 배가량으로 올랐다.
중국에서 대입 열풍이 여전히 뜨거운 것은 청년 실업 문제가 날로 심각해져서다. 그만큼 ‘학력 인플레이션’도 문제다. 중국의 실제 16~24세 청년 실업률은 정부 발표의 두 배인 40%가 넘는다는 연구가 있다. 대학 재학생을 제외한 통계를 봐도 실업률은 14∼15%에 달한다. 취업난으로 인해 석·박사 과정을 밟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기업마다 고학력 지원자들이 넘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가오카오에서 명문대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이 구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인식도 더 팽배해졌다. 다만 2019년부터 신생아 수가 급감했고, 최근 2년 동안 신생아 수 1000만명 선마저 깨졌기에 향후 중국에서 과도한 입시 경쟁이 자취를 감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 베이징대 학생은 더우인(중국판 카카오톡)에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운명을 바꾼 사람들 중 하나. 그런 내가 사회에서 남들보다 좋은 대우 받는 것은 불평등이 아니다”라고 말한 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엔 비난보다 지지 댓글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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