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호소 “‘밀리환초 학살’ 전남 피해자들 진짜 이름 찾아주세요”
남태평양 외딴섬에 끌려가 희생된 218명
역사교사 출신 다케우치 야스토 ‘명부’ 공개
이름·본적·친권자 등 정리…214명이 ‘전남’
“내년 학살사건 80년, 반드시 명예회복을”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에 의해 남태평양 섬 밀리환초로 강제징용됐다 숨진 전남 출신 조선인이 2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밀리환초에서는 조선인 변사체가 발견되면서 조선인들이 집단저항했지만 일본군에 학살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남태평양 외딴섬에 강제징용됐던 전남 출신 조선인들이 대량 학살된 사실을 자료로 정리해 공개한 사람은 역사교사 출신의 일본인이다.
7일 일본인 다케우치 야스토(67)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함께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태평양 밀리환초에서 발생했던 조선인의 저항과 일본군의 학살’에 대해 발표했다. 일본 역사교사 출신인 다케우치는 40여년 동안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는 이날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밀리환초에서 사망한 조선인 218명의 명부를 공개했다. 밀리환초는 밀리섬을 중심으로 100여 개의 크고 작은 산호섬이 둥근 띠 모양을 하고 있다
타케우치는 일본 정부의 ‘피징용 사망자 연명부’와 ‘해군군속 신상조사표’ 등을 토대로 사망자들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피징용 사망자 명부는 1973년 일본 정부가 한국정부에 제공했지만, 특정 지역 사망자만을 따로 분류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사망자 218명 중 4명을 제외한 214명은 모두 전남 지역 출신이다. 본적지가 전남 담양인 사람이 40명, 순천 29명, 곡성과 보성 17명, 광양 16명, 무안 13명, 고흥과 광산(현 광주시 광산구) 11명, 장흥·나주·화순 10명, 영암·구례 8명, 강진 7명, 광주·해남 3명, 목포 1명 이었다.
명부는 사망자의 성명과 출생연도, 사망일시, 사망구분(전사·사망 등), 본적지, 친권자 등이 기록돼 있다. 성명은 일본식 이름으로 바꾼 이름이 대다수 였지만 출생연도와 본적, 친권자 등을 확인할 수 있어 현지 조사를 진행하면 어렵지 않게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1940년대 초부터 조선인들을 남태평양이 섬으로 강제징용했다. 미크로네시아 마셜제도의 동남쪽 끝에 있는 밀리환초에도 비행장 등 군사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조선인 800∼1000여명이 동원됐다.
하지만 1944년 6월부터 밀리환초는 미군의 공격으로 보급이 끊긴 채 고립됐다. 이곳에 일본의 보급이 이뤄진 것은 1943년 12월이 마지막이었다. 일본은 1944년 3월 잠수함을 이용해 식량 공급을 추진했지만 턱없이 적은 양이었다.
결국 일본은 ‘현지자활’을 위해 환초 내 각 섬으로 일본군과 조선인을 나눠 배치했다. 밀리환초 체르본섬에는 일본군 11명과 조선인 120여명이 배치돼 있었다. 1945년 2월 섬에서 조선인 변사체가 잇따라 발견되자 조선인들은 굶주린 일본군의 만행으로 보고 저항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인근 섬에서 기관총을 앞세운 일본군이 들이닥쳤다. 일본군은 조선인 55명을 학살했는데 사망자 명단 정리 결과 이들 모두의 본적지는 전남이었다. 특히 25명이 담양 출신이었고 순천과 고흥, 보성 출신들도 있었다.
2010년 정부의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회’에서 밀리환초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의결했지만 전남지역 조선인들이 대거 학살된 이 사건은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역 출신 사망자 명단도 정확하게 정리되지 못했고 추모 사업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다케우치는 “내년이면 학살 사건이 발생한 지 80년이 된다. 전쟁 범죄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피해가 되풀이된다”면서 “이 사건이 지역(전남)에 충분히 알려졌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적어도 피해자들이 진짜 이름이라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저항자였던 그분들의 명예회복이 꼭 필요하다”면서 “진심된 의미의 추도와 역사계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피해자들의 이름을 찾고 유해도 발굴해야 하는데 일본은 사죄도 없고 진상규명도 없었다”면서 “한국은 진상규명을 멈췄는데 뜻있는 일본 사람의 노력으로 피해자가 조명받는 게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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