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오랜만에 엄마와 보고 싶은 영화 ‘원더랜드’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백수진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71번째 레터는 김태용 감독, 탕웨이 주연의 영화 ‘원더랜드’입니다. 죽은 사람을 AI로 복원시켜주는 ‘원더랜드’ 서비스를 통해 AI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요. 줄거리를 처음 들었을 땐,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블랙미러’나 ‘욘더’처럼 비슷한 드라마들이 이미 많이 나왔고,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바람에 현실에서도 AI를 활용한 장례 업체까지 생겨버렸으니까요.
더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을지 우려를 갖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중간부터 ‘아, 이건 SF 영화가 아니고 가족 영화네’ 싶었습니다. SF 영화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리 신선하지 않고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색다른 가족 영화로 본다면 충분히 좋은 영화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액션 영화는 시끄러워서, 호러 영화는 무서워서 대부분의 영화를 즐기지 못하는 저희 엄마를 모시고 가고 싶더라고요.
영화는 미래 사회답게 다양한 가족 구성을 보여줍니다. 싱글맘인 바이리(탕웨이)는 어린 딸과 노모를 두고 불치병에 걸려 AI가 되기를 선택합니다. 정인(수지)과 태주(박보검)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가족 같은 연인으로, 태주가 사고로 의식 불명이 되자 정인은 AI 태주를 만들죠. 이 밖에도 AI 부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1인 가구 해리(정유미)나 손자를 AI로 만든 할머니처럼 다양한 가족의 양상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먹먹하게 그려냅니다.
기존에 나온 비슷한 드라마들이 실버 타운처럼 망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디지털 천국을 그렸다면, 개인 맞춤형으로 가상 세계를 만들어준다는 설정도 좋았습니다. 현실에선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이루지 못했던 꿈을 실현해주는 공간이라는 게 더 애틋하더라고요. 원더랜드에서 바이리는 고고학자로 사막을 누비고, 식물인간이었던 태주는 우주 비행사로 우주를 유영합니다. 저렇게 자유롭고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해봐도 좋지 않을까 설득되더라고요.
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원더랜드의 세계를 그리다보니, 잿빛 아니면 흙빛이었던 SF 영화들과 달리 따스하고 포근한 영상미를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피사체들도 한몫했겠죠? 탕웨이·수지·박보검·정유미·최우식에 공유까지 화려한 캐스팅에 걸맞게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특히 수지 배우의 연기에 놀랐는데요. (분명 비현실적인 외모인데도!)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상황에 지치고 찌든 현실적인 얼굴을 보여주며 판타지 같은 스토리를 믿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현실에 발붙인 스토리, 탄탄한 전개를 선호하는 분이나 감정 과잉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께는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저 역시 신파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에 후반부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집에 가는 길에 소중한 사람들이 떠올라서 괜히 코끝이 시큰하더라고요. 누가 더 자극적인가 경쟁하는 듯한 영화·OTT 드라마에 지쳐서 그런지, 오랜만에 나온 착하고 무해한 영화가 더 귀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오늘자로 쓴 김태용 감독의 인터뷰 기사도 함께 보내드릴게요! 주말에 볼 영화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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