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반려 권고’ 일본 사도광산, ‘군함도’ 판박이 될까

정희완 기자 2024. 6. 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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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 결정
정부 “찬성 여부 일본에 달려…전체 역사 반영해야”
일, 후속 조치 권고 나와도 이행 불분명
군함도 등재 후속 조치도 9년째 미흡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 내부 모습. 연합뉴스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가 오는 7월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WHC의 전문가 자문기구는 지난 6일 추가 자료 제출이 필요하다는 ‘보류’를 권고했다. 권고 중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을 비롯한 전체 역사를 설명할 수 있게 조치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 정부는 이런 권고 내용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WHC 회의에서 등재 반대 의견을 내겠다는 방침이다. 일본이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는 권고를 수용하더라도 제대로 이행할지는 미지수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하시마 탄광)의 세계유산 등재 때도 후속 조치를 약속했으나 여전히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찬성할지 여부는 향후 일본의 조치에 달려 있다”라며 “전체 역사가 담겨야 한다는 우리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등재에 반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월 한차례 반려 끝에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그런데 등재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1603~1868년)로 한정했다. 일제강점기 1939~1945년 조선인 1500~2000여명이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된 역사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사도광산은 에도시대에는 금광으로 유명했지만 태평양전쟁 이후 구리, 철, 아연 등 전쟁물자를 확보하는 데 주로 이용됐다. 한국 정부는 그간 전체 역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일 WHC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보류를 권고했다고 일본 문화청이 밝혔다. 이코모스는 사도광산의 시대적 경계, 유산 보호를 위한 완충지대 설정, 상업 채굴 금지 등 3가지를 보완토록 했다. 또 부대 권고사항에서는 전체 역사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시설을 갖추라는 취지의 내용도 담겼다.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표결 가능성은 낮을 듯

오는 7월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하는 제46차 WHC 회의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판가름난다. 등재·보류·반려·등재불가 등 4가지 가운데 하나를 결정한다. WHC는 관례로 전원 동의를 통해 등재 여부를 결정해왔다. 21개 위원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표결도 가능하다.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 WHC 위원국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우리 입장이 반영됐다고 판단하면 WHC에서 컨센서스(전원 동의)가 형성되는 것을 막지 않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투표를 진행한 전례는 드물다. 이 당국자는 “투표까지 가는 걸 다른 회원국과 사무국은 최대한 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정식추천서를 유네스코에 다시 제출한 2023년 1월20일 오후 주한일본대사 대리인 나미오카 다이스케 경제공사가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초치 되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은 사도광산 등재 문제를 두고 협의를 진행해왔다. 양국은 투표까지 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면서 합의를 이루자는 게 공통의 목표라고 한다. 한·일이 합의를 보지 못하면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투표에서 패하는 한쪽은 외교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WHC는 이코모스의 권고 내용을 주요하게 참고하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최근에는 위원국들이 정치적·전략적 입장에 따라 등재 결정을 후하게 내리는 추세라고 외교부 측은 설명했다. 지난해 이코모스에서 보류를 권고한 8건이 WHC에서 등재 결정으로 변경됐다. 반려 권고 9건 중 6건도 WHC에서 등재 결정이 내려졌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총 1199건이다.

일본, 군함도 관련 후속 조치 안 지켜

WHC에서 보류 결정을 유지하면 사도광산의 등재 여부는 내년 이후로 미뤄진다. WHC가 유산 등재를 결정하면서, 동시에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시설 등을 설치하라고 권고할 수도 있다. 다만 권고사항을 어긴다고 해서 제재나 벌칙이 부과되는 건 아니다. 이 때문에 일본이 이를 제대로 이행할지는 불분명하다.

전례도 있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 탄광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도 시기를 1850~1910년으로 좁혔다. 강제동원의 역사를 지우려 한다는 비판이 이번처럼 똑같이 제기됐다. WHC는 당시 등재 결정을 내리면서도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시설물 등을 설치하라고 권고했고 일본도 이를 약속했다. 그러나 일본은 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후속 조치에 소극적이다.

WHC는 2021년 제44차 의제 결정문에서 일본의 후속 조치를 두고 “관련 결정을 아직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하게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WHC는 “다수의 한국인 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노역한 사실과 일본 정부의 징용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이행하라고 했다. WHC는 지난해 9월 제45차 회의에서도 후속 조치와 관련해 당사국과 대화할 것을 일본에 주문했다. 후속 조치를 위한 일부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여전히 미흡한 상태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는 군함도 관련 후속 조치 문제도 일본과 지속 협의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이 군함도 관련 후속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한다”라며 “이번 사도광산 등재와 관련해서도 후속 조치를 이행할 것이라고 전적으로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일본이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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