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제노역 사도광산 세계유산 보류에 '당혹'…내달 등재 강행

이종훈 기자 2024. 6. 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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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전문가 자문기구가 6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보류'(refer)를 권고하자 일본 현지에서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가 다음 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등재 추진 강행 의지를 밝히면서 '전체 역사를 설명하라'는 자문기구 권고를 어떻게 반영할지를 두고 막판까지 한일 간 치열한 외교전이 예상됩니다.

시민단체 '사도를 세계 유산으로 하는 모임'의 쇼야마 다다히코 사무국장은 등재 심사를 담당하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권고 결과가 알려진 뒤 "'등재 권고'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충격"이라고 말하며 당혹스러워했다고 산케이신문이 7일 보도했습니다.

쇼야마 국장은 "아직 희망은 있으므로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를 움직여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자문기구에서 당장 '등재 권고' 결정이 나오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들은 다음 달 하순 인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등재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코모스의 권고 내용에 대응해 다음 달 등재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일본 문화청은 "지난해 이코모스에서 보류 권고를 받은 문화유산 6건은 모두 지난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결의됐다"면서 이런 방침을 밝혔습니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도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사도광산에 대해 세계유산등재를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올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 등재 실현을 위해 무엇이 가장 효과적인가 하는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정부가 하나가 돼 대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이코모스가 한 강제노역을 포함한 전체 역사 설명 권고를 일본이 어떻게 이행할지가 관건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유산 대상 기간을 에도시기인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했습니다.

이를 놓고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강제노역 시기인 일제강점기를 포함해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가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왔습니다.

이코모스도 전날 권고문에서 "광업 채굴이 이뤄졌던 모든 시기를 통한 추천 자산에 관한 전체 역사를 현장 레벨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전시전략을 책정해 시설과 설비 등을 갖추라"고 주문해 사실상 한국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야시 장관은 이코모스의 강제노역 반영 권고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과 관련해 "사도광산의 문화유산으로서 훌륭한 가치를 평가받도록 계속 한국 정부와 성실하고 부단하게 정중히 논의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이 어떻게 이코모스 권고를 이행할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과거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도 약속을 어긴 적이 있는 만큼, 남은 기간 한일 정부 간 치열한 '외교 줄다리기'가 예상됩니다.

오카와 고헤이 일본 문화청 문화유산국제협력실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어떤 식으로 전체 역사를 보여줄지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 사도시, 니가타현과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에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이라는 점을 알리는 시설 등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다음 달까지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를 놓고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을 대상으로 각자 주장을 알리는 총력 외교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등재 결정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21개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성립된다는 규정이 있지만,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코모스의 권고 내용에 따라 일본보다 우위에 서서 위원국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요미우리는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는 한국이 '전시 강제노동 피해 현장'이라며 반발해 왔다"면서 "한국과 일본은 모두 이번에 21개국으로 구성된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을 맡고 있어 대응이 주목된다"고 전했습니다.

일본은 앞서 2015년에도 1940년대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시대 산업혁명 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대상 시기를 1850∼1910년으로 설정해 강제 동원 논란을 피해 가려했습니다.

당시 이코모스는 '등재 권고' 의견과 함께 일본 측에 강제 동원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할 것을 함께 권고했고, 이러한 의견은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결정 때도 반영됐습니다.

일본은 '의사에 반해 끌려와 엄혹한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된 조선인'을 기리며 정보센터를 세우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위해 건립된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에서는 군함도에서 자행된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한 반성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종훈 기자 whybe0419@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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