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기 수제맥주협회장 “수제맥주 김 빠졌다고? 이제부터가 시작” [밀착취재]
이인기 협회장 “수제맥주 시장, 꾸준한 성장 중”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다.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맥주다. 그중에서도 지역 특색이 가미된 수제맥주는 독특한 맛과 스토리가 더해져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갖는다. 코로나19로 주류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2020년 ‘홈술’ 열풍을 타고 급성장했던 수제맥주가 잇따른 시장 악재로 정체기를 맞았다. 주류 트렌드가 위스키·하이볼 등으로 이동하면서 ‘수제맥주 거품은 꺼졌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수제맥주 협회가 개최한 첫 맥주 축제가 열렸다.
지난 주말 서울 성수동 언더스탠드 에비뉴에서 열린 ‘K비어 페스티벌’ 현장에서 이인기 한국수제맥주협회장을 만났다. 이 협회장은 수제맥주의 위기론에 대해 “로컬 수제맥주 시장이 정체기를 맞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현재도 수제맥주 시장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수제맥주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평가했다.
국내 수제맥주는 2014년 주세법 개정으로 소규모 양조장의 외부 유통이 허용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병입 판매가 가능해졌고 2018년에는 소매점 판매가 허가됐다.
◆ “수제맥주 급격한 성장, 오히려 독이 됐다”
이 협회장은 당시 수제맥주의 급성장이 오히려 성장 속도의 맥을 끊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창 수제맥주가 인기를 끌던 3~4년 전 당시 편의점에서 ‘수입맥주 4캔에 1만원’ 상품이 잘 팔렸다. 수제맥주 인기가 높아지자 일부 덩치 큰 업체들이 수입맥주처럼 낮은 가격에 수제맥주를 만들어 편의점에 납품했고 실제로 판매가 잘 되면서 수제맥주의 성공처럼 여겨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미성숙한 상황에서 수제맥주 시장이 단기간에 성장했고, 상장회사도 나왔다. 몇 년 후 결과는 좋지 않았다”며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무리한 가격 경쟁이 벌어졌고, 결국 소규모 업체들은 적자를 떠안아야 했다”고 말했다. 수제맥주 1위 사업자이자 수제맥주 상장 1호인 제주맥주는 상장 이후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현재는 품질력 강화와 더불어 협회 차원에서 인증 제도를 준비 중이다. 이 협회장은 “인증마크 제도를 도입해 소비자들에게 질높은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편의점맥주로 인식되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협회장은 “축제 현장에서 소비자들을 만나보면 수제맥주에 대한 반응이 정말 좋다”면서 “특색 있는 맛으로 소비자들에게 호응도가 높지만, 지역 맥주 회사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막힌 활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축제를 통해서라도 소비자들에게 우수한 지역 맥주를 알리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현재 2~3%대인 수제맥주 시장 점유율을 5%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는 이 협회장은 “지역 특산물이 들어간 차별화된 맛을 개발하고 소비자와 접점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반성도 내놨다.
◆ “지역 수제맥주 맛과 품질, 가치 알릴 계획”
지역 수제맥주의 맛과 품질, 가치를 알리기 위해 기획된 이날 축제에는 총 22개 양조장이 참가해 총 130종 이상의 맥주를 소개했다. 월드비어컵(WBC), 인터내셔널비어컵(IBC), 코리아인터내셔널비어어워드(KIBA) 등 글로벌 맥주 대회에서 메달 수상으로 검증된 제품을 비롯해 지역 특산품을 녹인 프리미엄 로컬 맥주들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었다.
한손에 쇼핑백을 들고 부스를 돌고 있던 방문객 30대 정모 씨는 “지역 로컬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축제가 있어 미리 티켓을 구입하고 찾아왔다”며 “서울에도 판매하는 ‘펍’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앞으로 가끔 이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전 대표 로컬 맥주를 지향하는 ‘더랜치크루잉’은 프랑스 출신 물리학 전공자 프레데릭 휘센이 카이스트로 유학을 왔다가 한국 맥주에 빠져 2016년 창업한 수제 맥주 회사다. 이곳에서 아내를 만나 20년째 대전에 터를 잡고 있다. 프레데릭 휘센 대표는 “유학 당시 대전에 브루어리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며 “품질 좋은 수제 맥주로 대전 시민들의 자부심이 되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젠하우스와 핵드앤몰트에서 10여년 경력을 쌓은 뒤 더랜치 브루잉 양조장을 직접 설계했다.
1세대 수제맥주회사로 손꼽히는 ‘화수브루어리’도 만날 수 있었다. 경주지역의 로컬 브루어리로서 지역 맥주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지역 특산품을 부재료로 활용한 맥주를 만들고 있다. 경북 경주 보문로에서 화수브루어리 양조장을 운영하는 이화수 대표는 “더 많은 분이 경주의 특색있는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화수브루어리는 정성스럽게 선택된 재료와 철저한 제조과정을 통해 맥아, 홉, 이스트와 같은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바닐라빈 등 여러 부재료와 독특한 맛을 부여해 다양한 스타일과 풍미로 사랑받고 있다.
이날 ‘부족한녀석들’ 부스를 찾은 20대 손님은 “논알콜은 기대 안했는데 맛을 보고 놀랐다”며 “그동안 논알콜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건 그동안 먹었던 맥주보다도 풍미가 깊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글·사진=박윤희 기자 py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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