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한국인 136명 태운 중국 항공기의 추락…'원칙' 어긴 조종사 과실이 부른 참사

강선애 2024. 6. 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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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6일 방송된 '복행하라 129편'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츄, 개그맨 강재준, 그룹 위너 멤버 이승훈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비행기가 추락했다

때는 2002년 4월 15일, 김해고등학교야. 2002 월드컵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을 때지만, 여긴 조용해.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이거든. 선생님의 강의 소리와 필기 소리만 흐르던 그때, 수업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려. 점심시간이 됐는데, 학생들은 휴대폰을 보며 웅성웅성 난리야. 수업 중, 믿기지 않는 문자가 왔거든. 바로 이거야.

"지금 쿵 소리가 나고 난리가 났어. 폭발한 것 같아. 비행기가 떨어진 것 같아."

수업 중 다른 학교를 다니는 친구에게서 온 문자인데,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내용이었어.

"사실은 농담인지 알았거든요. 그 친구들이 문자를 받고 전해 전해 이렇게 들었을 때는, '에이 장난이겠지' 했어요. 근데 통신사에서 보내는 뉴스 서비스를 통해서, 뉴스를 핸드폰으로 받고 보니까, 사실이더라고요. 어떤 상황일까, 정말 그렇게 크게 사고가 난 게 맞나… 사실은 이제 문자로 밖에 확인이 안 된 사실이니까."

-이상욱, 당시 김해고등학교 학생회장

신어산 자락에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거야. 학생들은 사고현장에 가자고 의견을 모았어.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었대. 마침 점심시간이고 사고가 일어났다는 곳도 학교랑 그리 멀지 않았어. 학생회장을 포함한 10명 정도의 학생은 바로 택시를 나눠 타고 출발을 해.

산 쪽에 가까워지자,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코를 찔러. 타는 냄새가 나고, 피어 오른 연기가 보여. 구급차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와. 산 아래쪽이 이러면, 도대체 사고현장은 어느 정도인 걸까? 사고 현장을 보여줄게.

"추락한 항공기의 동체엔 여전히 불길이 치솟고 있습니다.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지만 폭발의 위험성 때문에 접근조차 어렵습니다. 비행기는 앞뒤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부서졌습니다. 엔진은 동체로부터 한참이나 튕겨져 나뒹굴고 있고 꼬리 부분은 숲 속에 묻혔습니다. 사고 현장의 소나무들이 활주로처럼 모두 쓰러져 있습니다. 현재 119 구조대원들이 사고 현장으로 위험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생존자 추가 수색 작업엔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 사고 현장은 현재 산 중턱이어서 구조 작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2002년 4월 15일 베이징을 출발해 김해공항으로 오던 중국 민항기가 사고가 난 거야. 중국국제항공공사 129편 추락 사고야. 중국국제항공, 에어차이나라고도 하지. 이 사고는 대한민국 영토에서 일어난 최악의 항공사고로 일컬어지고 있어.

이 비행기에는 몇 명의 한국인이 타고 있었을까? 조종사와 승무원 포함 총 166명이 타고 있었고, 그 중 한국인은 136명이었어. 이 비행기 안 사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시간을 앞으로 조금 되돌려볼게.

▲ 여행 마지막 날, 달라진 운명

4월 15일 새벽.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한 호텔 로비에 잔뜩 피곤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단체여행객이야. 이번 여행의 가이드 중 한 사람이, 바로 이 분이야.

가이드 설익수 씨. 이번 중국 일정이 첫 출장이었다고 해. 익수 씨는 이 첫경험을 아주 제대로 했다고 해. 가이드니까 인솔을 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오히려 인솔을 당하고 있는 거야. 여행 오신 분들은 중국어도 잘하고, 좋은 곳도 많이 알아서 오히려 익수 씨를 데리고 다녔다는 거야. 익수 씨의 정신을 쏙 빼놓았던 여행일정이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야.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여행객들이 새벽부터 호텔 로비에 모인 이유는, 비행기 좌석 때문이야. 비행기 티켓은 미리 구매했지만, 좌석은 공항에 가서 정해지는 시스템이었어. 그래서 좀 편한 좌석이나 원하는 좌석에 앉으려면 빨리 가야하는 거야.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 익수 씨는 왠지 쎄~한 느낌을 받았어. 아주 중요한 걸 호텔에 두고 온 거야. 바로 여권! 익수 씨가 여행객들의 여권을 전부 호텔에 두고 온 거야. 공항으로 향하던 버스는 유턴을 해서 다시 호텔로 향해. 그리곤, 서둘러 여권을 찾아 다시 공항으로 달렸어. 늦으면 단체관광객 모두가 비행기를 못 탔을 수 있는 상황이야. 이들이 타려는 비행기가 바로 에어차이나 129편이야. 대한민국 영토에서 일어난 최악의 항공 사고의 바로 그 비행기야.

여권 소동이 있었지만 이들은 예정대로 비행기를 탔어. 이들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는 출발 전이였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인솔했던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뒷좌석에 배정됐어. 어쨌든 비행기를 안 놓쳤으니 그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앞으로 닥칠 일을 알 수가 없으니까.

기진맥진해진 익수 씨도 좌석에 앉았어. 익수 씨가 앉은 자리는, 총 33열인 비행기에서 바로 여기, 30D야.

그리고 익수 씨가 인솔하던 사람들 중 특히 신경을 쓰는 두 사람이 있었어. 부부인데, 보험회사 직원인 남편을 따라 아내도 함께 온 거였어. 아내 분이 임신 7개월이었거든. 이 부부는 익수 씨 바로 뒷좌석인 31D, 31E에 앉게 돼.

탑승이 끝난 비행기 안에는 단체관광객들이 많이 보여. 부부동반 계모임, 효도관광 온 어르신들, 고교동창생 모임, 그리고... 이 분도 있었어.

이름, 양진경. 진경 씨는 남편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어. 진경 씨도 의사, 남편도 의사인 의사부부야. 치과의사인 진경 씨와 성형외과 의사인 남편의 병원은 한 건물에 나란히 붙어있어. 병원일로 바빠 시간을 못 내다 이번에 큰 맘 먹고 휴가를 낸 거였어.

베이징 현지시간 오전 8시 37분. 에어차이나 129편 항공기는 중국 베이징 공항을 출발해. 베이징에서 김해공항까지 비행시간은 두 시간 정도야. 이륙도 별문제 없이 이뤄졌고 그 후 비행도 순조로워.

하지만, 김해공항의 사정은 달랐어. 기상상황이 안 좋아서 오전 8시 30분부터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된 상태였어. 그러면 김해공항이 아닌 예비공항인 인천공항으로 가야해. 그런데 그 사이, 김해공항 기상상황이 호전 돼. 그래서 항공기는 당초 목적지인 김해공항으로 비행을 계속해. 호전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김해공항 기상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아.

비행기 안에서도 문제가 발생해. 비행기에 산모가 있었잖아.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야. 바로, 담배연기.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90년대 중반 이후로 전 노선이 금연이었어. 하지만 중국 비행기는 아니었던 건지 화장실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야. 산모의 자리는 화장실 근처였어. 그래서 승무원이 아내 분의 좌석을 옮겨주겠다고 했대. 그런데 아내가 남편 옆에 있겠다며 거절했어. 이 결정은, 운명을 어떻게 바꿨을까?

▲ 사고의 순간

오전 11시 15분경, 착륙에 관한 기내 안내 방송이 나오고, 승무원들이 좌석벨트를 확인해. 그리고 얼마 후,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람이 있어. 누굴까? 직접 들어봐.

"좌석벨트 매라고 한 이후로 그 때 출렁거림, 뚝 떨어지는 거 있잖아요. 뚝 떨어지는 게 몇 번 있었고. 그래도 사람들은 별 신경 안 쓰시더라고요. 옆에 타셨던 책임자(가이드)들은 이제 비행기를 많이 탔거든요.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설익수, 탑승객, 당시 여행사 직원

설익수 씨야. 여권을 놓고 왔다가 운명의 비행기를 탔던 바로 그 사람. 그는 대한민국 영토에서 일어난 최악의 항공사고의 생존자야.

비행기를 타보면 때로 흔들리는 경우가 있잖아?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 그런데 얼마 후, 몇몇 승객이 창 밖을 보고는 깜짝 놀라. 보이지 말아야 할 게 보였거든. 바로 나무였어. 활주로에 나무가 있을 리 없잖아. 순간, 익수 씨는 비행기가 확 기우는 느낌을 받아.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앞에서 기울기가, 우리가 청룡열차 타면 저 밑에 사람머리가 보이잖아요. 그렇게 보이더라고요. 기울기 각도가."

-설익수, 탑승객, 당시 여행사 직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앞에서부터 비행기 내부등이 파바박 하고 꺼져.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칼날 같은 비명소리가 울려 퍼져. 몸이 앞으로 팍! 숙여지더니 들어 올릴 수도 없어.

"가슴이 무릎에 탁 달라 붙더라고요. 완전히 몸이 안 움직여지더라고요. 안전벨트 매고 있으니까 아마 이 정도로 기울어진 것 같아. 아마 안전벨트 안 맨 사람들은 다 떨어졌을 겁니다."

-설익수, 비행기 탑승객, 여행사 직원

슝슝슝~ 뭔가 스치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 기체가 찢어진 듯 바깥 모습이 순간순간 보여. 익수 씨가 힘겹게 고개를 돌려 옆쪽을 보니, 같은 열에 앉아있던 옆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동체 밖으로 튕겨나간 건지, 다른 쪽으로 굴러 떨어진 건지 알 수가 없어. 익수 씨는 그 순간까지도 사고가 났다는 생각도 못했대. 머릿속에선 계속 '이게 뭐지?'란 생각뿐이야.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거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질끈 감았던 눈을 뜨니, 빛이 보여. 비행기 기체가 부서진 곳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아. 익수 씨는 그 빛을 향해 무턱대고 기었어. 엉금엉금 기어서 가는데 너무 먼 느낌이야. 실제 시간은 모르겠지만 10분은 지난 것 같이 느껴져. 익수 씨는 파손된 비행기 틈새를 꾸역꾸역 비집고 밖으로 기어 나가는데 성공했어. 밖으로 나와 그가 목격한 것은, 떨어지는 빗방울과 안개야. 자욱한 안개 사이로 쓰러진 사람, 그리고 몸에 불이 붙은 사람도 보여.

사고 시각은 오전 11시 21분 17초. 베이징 공항에서 출발한 에어차이나 129편 항공기가 김해공항에 착륙하던 중 추락한 거야. 사고현장은 너무나 참혹했어. 사진을 보여줄게.

비행기는 산산조각이 나서 산 여기 저기 흩어졌어. 추락 후 비행기에선 화재까지 발생해. 익수 씨는 비행기를 빠져나온 순간, 코를 찌르는 냄새를 맡았대. 항공유 냄새야. 항공유 냄새를 맡은 순간, 익수 씨는 미친 듯이 달렸어. 산 밑쪽으로 뛴 거야. 왜? 폭발할 수 있으니까. 터지면 죽는다는 생각뿐이었대.

얼마나 뛰었을까? 눈 앞에 무덤이 보이는 거야. 무덤 뒤편으로 몸을 던져 납작 엎드렸어. 순간, 익수 씨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어. 그게 뭐였을까?

"그래도 내가 인솔자로 갔고 사람들이 있는데. (나때문에) 뒷자리로 가서 미안한 그게 좀 있는데… 그래서 이제 비행기 터지지 전에 사람들이라도 데리고 와야겠다 싶어서. 제가 다시 비행기에 올라간 거예요."

-설익수, 비행기 탑승객, 여행사 직원

익수 씨는 다시 비행기를 향해 뛰었어. 비행기 주변을 돌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

"비행기 터져요! 어서 내려가세요! 빨리요! 비행기 폭발해요!"

이 소리에 비행기 주변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비행기를 빠져나오려는 사람이 보이면 익수 씨는 손을 잡아서 당겨 꺼내줬어.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뺨을 때려서 깨워. 익수 씨는 그렇게 20여 명을 구했어.

사람들을 피신시키고 익수 씨가 다시 비행기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손을 탁 잡더래. 그리고 "이제 가면 안 될 것 같아요. 가지 말아요"라고 말해. 잠시 후, 비행기 잔해에서 쾅!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려. 익수 씨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대.

"제가 비행기 돌 때만 해도 사람들 신음소리가 들렸다고. '살려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 다음에 쿵 하는 소리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아예 없었어요. 그냥 불타는 소리만 나고 연기만 화재 연기만 나고, 소리가 없어요."

-설익수, 비행기 탑승객, 여행사 직원

비가 오는 상황임에도 불길은 이글이글 타올라. 산 어딘가에 처박혀 버린 비행기. 여기가 어딘지 알 수도 없어. 그럼, 설익수 씨랑 함께 이동한 사람들 빼고 더 이상 생존자가 없는 걸까? 추락할 때, 비행기 밖으로 튕겨 나간 사람들이 있었어. 그리고, 여기 저기 흩어진 비행기 동체에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잖아. 빠른 수색과 구조가 필요해. 정말 한시가 급한 상황이야.

▲ 생사의 갈림길

119 최초 신고는 11시 22분에 이뤄졌어. 사고가 난지 1분만에 접수가 된 거야. 목격자가 신고한 거야. 한 아파트의 관리사무소 직원이었어.

직원이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쉭~하는 소리가 나더래. 그래서 밖으로 나와 본 거지. 눈에 보인 건, 비행기의 거대한 날개가 15층 아파트를 덮을 듯 날고 있는 모습이야. "저러다 추락하겠는데?" 하는 순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래. 직원은 바로, 119와 파출소에 신고를 해. 신어산 쪽에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그 뒤, 119에는 신고전화가 빗발쳐.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이 많았거든. 문자를 받은 고등학교 학생들 기억나지? 사고현장 근처에 다니는 다른 학교 친구가 사고를 목격하고 문자를 보낸 거였어. 신고 중에는 목격자가 아닌 사람에게서 온 전화도 있었어. 비행기에 탔던, 탑승객에게 온 전화야.

탑승객: 여보세요. 여기, 비행기가 추락했거든요. 비행기가 추락했다고...여기 어딘 줄 몰라요. 김해공항 다 와서 안개가 껴서 비행기가 추락했어요. 지금요.

소방서: 위치는 잘 모르시나요?

탑승객: 위치 모르고 비행기 폭발한 쪽에서 백 미터 밑쪽에 있습니다. 산 밑쪽으로요.

소방서: 부상자나 그런 분은?

탑승객: 부상자 많죠 지금. 임산부도 있어요. 폭발할까봐 비행기에서 떨어져서 모여 있습니다 지금.

소방서: 정확한 위치가 지금?

탑승객: 헬기 떠서 보면 비행기 폭발로 연기가 날 것 아닙니까.

- 탑승객 신고 전화 中

비행기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어서 구조대가 도착하길 기다렸어.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까진 어떻게든 버텨야 해. 사람들을 모아서 피신한 익수 씨는 급한 대로 부상자들 응급처치에 나서. 피가 나는 상처 부위는 담뱃갑 속 은박지를 이용해 부위를 막아. 허리띠를 풀어서 출혈을 막기 위해 동여매. 점퍼, 티셔츠 등 입고 있는 옷가지는 모두 벗어 추위에 떠는 부상자들을 덮어줘. 비가 와서 4월인데도 너무 추운 거야. 사람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돈으로 불까지 피웠다고 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 불을 피웠다는 거야. 그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야. 지금 이 곳은 일 분, 일 초에 생사가 갈릴 수 있어.

신고접수를 받자마자, 119 구조대원들이 급히 신어산 쪽으로 출동을 했어. 산 근처까지는 차로 이동이 가능했지만 사고현장에 가기 위해선 가파른 산길을 뛰어야 해. 장비와 들것을 짊어지고 비가 와서 질퍽거리는 산길을 뛰어올라가.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르고, 미끄러져서 퍽퍽 넘어지기도 해.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해.

정확한 사고현장은 신어산 자락에 있는 돗대산이었어. 도착한 사고현장은 베테랑 소방관들마저도 멈칫하게 만들었어.

"제가 올라갈 때 저 현장이라 하면 이 정도 오니까 폭발이 났어요. 기억이 생생하게 납니다. 또 다시 폭발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우려도 있었고. 비행기가 추락한다고 해서 비행기 안에만 사상자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온 데 튕겨 나오고 있고 이러니까. 글자 그대로 뭐 보면 그 엉망 아닙니까. 사람 시신 탄 냄새, 불이 나 가지고. 냄새도 말도 못 했어요. 현장에는 많이 다녔어도, 너무 산이고 좀 외진 곳이고 또 큰 사고다 보니까. 무엇부터 해야 될지 좀 막막한 그런 게 좀 있었습니다."

- 오세준, 당시 김해소방서 119구조대

빗줄기와 짙은 안개 사이로 여기저기서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구조요청 소리가 들려. 비행기는 화염에 휩싸인 채 불기둥이 무려 20미터 높이로 치솟고 있어.

"시커먼 연기와 불길이 치솟는 사고 현장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처참한 비행기 잔해와 시체들 사이로 생존자들의 절규가 이어집니다. 고통과 공포에 넋을 잃은 사람, 붕대로 감고 있는 가족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 목과 팔을 다친 두 여자 승객은 구조 중에도 고통을 참아내기 힘듭니다."

"피범벅이 된 이 남자 승객을 보면 사고 현장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생존자들은 들것에 실리거나 구조대에 업혀 악몽 같은 현장을 벗어납니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다른 생존자를 위해 스스로 산을 내려옵니다. 그러나 등산로조차 하나 없는 데다 비에 젖어 미끄럽고 가파른 산길. 나뭇가지를 헤치고 땅을 짚어가며 겨우 빠져나옵니다. 사지에서 기적같이 살아남은 이 여자 승객은 가족들이 살아있기를 기원하 듯 꼭 쥔 두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소방관에 이어, 경찰, 군인까지 동원돼서 불길을 잡고 생존자들을 구조해. 사고 위치도, 날씨도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차나 중장비가 들어올 수 없어서 모두 사람의 힘으로 해야 하는 거야.

근데, 영상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 낯익은 사람 있어. 바로, 설익수 씨야.

비행기를 빠져나올 때 얼굴에 상처를 입었는데도 모르고 있었대. 입고 있는 옷도 구조하는 분들이 벗어준 옷들이야.

설익수 씨 뒷좌석에 앉았던 부부는 어떻게 됐을까? 그들의 소식도 알려줄게.

"바로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임신 7개월의 우즈베키스탄 부인인데요. 하늘의 도움으로 태아도 산모도 모두 무사했습니다."

-당시 보도 中

"우선적으로 걱정했던 건 태아 상태였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태아 상태가 양호하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정말 개인적으로는 천운이 따랐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내와 함께 비행기에 탑승한 남편

다행히 산모도 아기, 남편도 모두 무사했어. 이번 사고는 비행기 뒷좌석 쪽이 생존자가 많았다고 해. 만약, 그때 아내가 담배연기 때문에 자리를 옮겼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몰라.

구조작업이 한창인 시각, 김해소방서로 한 통의 전화가 와. 기자였어. 사고현장에서 소방관이 사망한 거 아니냐는 연락이야. 누구냐고 하니까 오세준 소방관이라는 거야. 오세준 소방관은 아까 '꼬꼬무' 인터뷰를 해준 분이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완전히 나체로 한 분이 튕겨 나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위에 옷을 벗어 가지고 그 사람 들것에 이송하는데 덮어줬거든요. 소방서 옷을... 그런데 김해 병원에 이제 이송하고 나니까, 그 사람이 사망을 했어요. 기자분이 제가 죽은 줄 알고. 김해소방서에 소방교 오세준 씨가 있느냐고 물었대요."

-오세준, 당시 김해소방서 119구조대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고 혼란스러웠겠어. 그러니까 이런 오해까지 생긴 거야.

▲ 나의 딸, 나의 언니

구조작업이 진행되면서 사상자에 대한 소식이 탑승객 가족들에게도 전해져. 부산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 진영 씨도 이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아. 언니의 친한 친구에게 온 전화야. 언니 친구가 이렇게 말을 해. "네 언니가 비행기를 탔대"라고.

진영 씨 언니는, 치과의사인 진경 씨야. 진경 씨 소식이 가족에게 전해진 거야. 진영 씨는 이 소식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언니부부가 중국을 간지도 몰랐고, 심지어 사고소식도 모르고 있었거든. 진영 씨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어. 진영 씨에게 언니 진경 씨는 너무나 특별한 존재였거든.

6남매 중 넷째가 진경 씨고 막내가 진영 씨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바쁜 어머니 대신 진영 씨를 업어 키우다시피 한 언니래. 학생 때부터 언니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동생 수학여행비, 외식, 옷이며 신발까지, 해준 게 끝이 없어. 그리고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도 과외 한 번 안 받고 치과의사가 됐어. 집안의 자랑이자, 기둥 같은 언니야.

"아버지란 존재가 부재한 상태에서 저희를 붙잡아주는 존재. 엄마도 힘을 나게 하고, 엄마의 흥을 돋우게 하는 존재. 우리도 빗나가지 않고 옆길로 새지 않고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옳은 길로 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런 존재."

- 양진영, 탑승객 양진경 씨 동생

언니 뿐만 아니라 형부까지 비행기 사고를 당했대.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사망을 했다는 거야. 진영 씨 심정이 어땠을까? 그런데, 충격적인 소식은 이게 다가 아니었어.

"언니의 친구가 말하기를 첫 단어는 '진경이가 비행기를 탔어'였고. 그 다음 말이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애들까지 다 같이 갔대. 어떡하니 진영아. 어떡하니' 이러면서, 전화로 저하고 계속 이름만 부르면서 서로 이름만 부르면서 울고 있었어요. '언니 어떡해요' 이러고 언니는 저보고 '진영아 어떡해. 우리 진경이 어떡하니' 이러면서 한 10분을 그렇게 울고…"

- 양진영, 탑승객 양진경 씨 동생

비행기 안에는 언니와 형부만 있었던 게 아니야. 언니의 시부모님과 7살, 5살인 어린 조카들까지. 무려 6명이 함께 비행기를 탄 거야. 그리고 이들이 모두 사망을 했다는 거야. 일가족이 모두 죽음을 맞았다는 연락. 진영 씨는 머릿속이 멍해졌어. 우선, 가족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어.

가장 큰 걱정은 이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하는 거였어. 진경 씨의 꿈은 원래 의사가 아니었대. 성한 곳 없는 어머니 이를 싹 고쳐 드릴 거라며 치대를 간 거래. 그런 어머니한테 어떻게 언니 소식을 전해. 특히 더 걱정되는 이유는,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어머니의 모습 때문이야.

진경 씨가 처음으로 치과 개업을 했을 때야. 조그마한 상가 2층에 병원을 개업했는데 어머니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셨어. 그리고 틈만 나면 병원에 가시는 거야. 가셔서 하는 일이 있으셨대.

"치과 병원을 가면 2층이라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계단 끝에 보면 황동으로 된 미끄럼 방지판이 있잖아요. 그 판이 좀 까맣게 녹이 슬었었는데 그걸 맨날 가가지고 청소하고 녹 닦고 광을 내고 이러시는 거예요. 딸이 개업하는데 잘 되라는 그런 생각에서 이렇게. 그걸 닦고 이러시는 모습이 하지말라고 말할 수 없는 게. 자기가 딸을 위해서 좋아서 하는 거니까…"

- 故 양진경 씨 오빠

어머니가 충격을 받으실 걸 알지만, 사고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는 없어. 어머니는 '비행기'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아이고" 하면서 손으로 바닥을 내리치셨어. 뉴스를 통해 사고소식을 이미 알고 계셨던 거야. 하지만, 가족들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 직접 눈으로 본 게 아니니까. 좌석을 바꿔 앉았을 수도 있고, 뭔가 착오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일주일 전에 우리랑 밥 먹었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된다는 걸 상상도 못 하죠."

- 양진영, 양진경 씨 동생

"희망이 있었죠. (밝혀진) 생존자 외에 또 우리 가족은 숲에 이렇게 다른데 이렇게 기절해 있을 수도 있고. 혹시나 살아있지는 않을까…"

- 故 양진경 씨 오빠

▲ 필사의 구조 작업

사고현장에선 수색이 계속되고 있어. 그리고 그 현장에는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고등학생들이 있어. 김해 고등학교 학생들.

"처음에는 생존자가 걸어 내려오셨는데, 이후에는 들것이 이렇게 계속 내려오는데 온전한 들것이 많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원래 들것에 실리게 되면 뭔가 사람의 형체가 있거나 한데, 사실 그런 들것들이 아니었거든요. 누구 하나 고민하지 않고 바로 그냥 주저 없이 바로 도와드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상욱, 당시 김해고등학교 학생회장

학생들은 모두가 한 마음이었어. "조금이라도 도와드리자", "우리가 할 일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었어. 학생들은 비가 와서 질척하고 미끄러운 산길에 톱밥을 깔아 미끄러지지 않게 작업을 해. 또 산길을 뛰어다니느라 지친 구조대에게 물을 나눠주고, 구조장비 나르는 걸 도와드려. 사상자들이 이송되는 병원으로 가서 일손을 돕는 학생도 있었어. 교복은 온통 흙투성이가 되고,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등 쪽에서 연기가 나. 그래도 바람은 오직 하나야. '한 분이라도 더 사셨으면 좋겠다'는 것.

이 학생들뿐만이 아니야. 사고를 목격하거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 둘, 수십 명씩 사고현장으로 달려왔어. 따뜻한 커피를 나눠주고, 밥을 짓고, 구급차가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게 교통정리를 하고. 제발 탑승객들이 무사하길 바라며 작은 손이라도 보태려는 거야. 모두의 소망을 담은 필사의 구조작업은 밤까지 이어지고 있어.

"중장비가 현장까지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인력을 통해서만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정말 위험한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구조자들 정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위험에 불구하고도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사람 힘으로 해야 되기 때문에 더욱 더딘 구조작업이었습니다."

"곳곳에 흩어진 유품들이 이 당시의 상황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한참 지났지만 아직까지 사고 현장에서 이렇게 열기와 연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비는 현장에 내리고 있고 발굴자들은 한 구의 시신과 한 명의 생존자라도 더 찾기 위해서 불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잔해들 사이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생존자를 수색하고 사망자의 유해를 수습했어.

▲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다음날이 밝았어. 사고대책본부로 탑승객 가족들이 모였어. 언니 가족의 사망 연락을 받은 진영 씨와 형제들, 어머니까지 애끓는 심정으로 사태파악을 위해 애쓰고 있어.

그리고 그날 저녁, 시신 사진과 유류품 사진이 가족들에게 공개가 돼. 왜 실제 시신이 아닌 사진으로만 보여줬을까? 사실, 시신들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어. 추락으로 훼손되고 화재로 인해 전소되면서 신원확인이 어려운 시신들이 많은 거야. 현재까지 구조된 생존자 37명을 제외한 나머지 탑승객은 사망자로 간주된 상황이야.

커다란 회의실에 여기저기 사진과 함께 설명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어. 진영 씨 가족들은 100여 장의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봐.

"언니 거는 제가 거의 아는데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아기 가방 같은 게 하나 보이는데 '이게 우리 조카 건가?' 할 정도의 흔적. '이게 우리 아기 건가?' 이 정도? 그 정도만 남아 있더라고요."

- 양진영, 탑승객 양진경 씨 동생

얼마나 훼손이 심한지 사진을 봐도 신원확인이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야. 사진에 남은 흔적을 알아본 가족들도, 사진을 봐도 알 수 없는 가족들도... 회의실 안은 울음바다가 돼.

탑승객 가족들은 사고 현장까지 갔어. 진영 씨 가족들도 어머니를 부축하고 산길을 올랐어.

"졸지에 큰딸을 잃은 노모는 가슴을 치며 울부짖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딸은 다하지 못한 효도가 한으로 남습니다."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는 흔적도 없는 딸의 모습을 그리며 작별을 고합니다."

"유가족들은 사고 현장의 참혹한 모습에 한가닥 남았던 희망마저 접어야 했습니다. 행여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처참하게 일그러진 여객기 잔해 사이를 이리저리 헤맵니다."

"일가친척 여덟 명을 잃은 ㅇㅇㅇ씨는 기적적으로 흙 속에서 어머니의 유품인 자수정 목걸이 알갱이를 발견하고는 통곡을 터뜨립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사고 현장에 올라간 가족들은 나무 밑을 보고, 바위 뒤도 보고, 돌을 뒤집어 보고, 수풀을 파헤쳐 보고... 혹시나 내 가족이 어디 쓰러져 있지 않을까, 놓지 못한 한 가닥 희망으로 가족의 흔적을 찾아다녔어. 내 가족이 죽었다는데,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어. 사고현장을 수습했던 구조대원도 이 부분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고 해. 사고 현장을 붓으로 구석구석 쓸며 작은 뼛조각 하나까지 찾기 위해 애썼다고 해.

"붓으로 뼛조각 한 조각이라도 찾아서 DNA 검사를 하면 그 사람 한 사람의 시신으로 또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을 많이 했죠."

-오세준, 당시 김해소방서 119구조대

신원확인을 위해 유전자 검사도 진행돼. 탑승객 가족들의 채혈이 이뤄졌어. 유전자가 맞길 바라야 할까? 안 맞길 바라야 할까?

그리고 얼마 후, 시신들의 신원확인이 이뤄졌어. 근데, 바로 가족들에게 시신을 확인시켜줄 수 없대. 훼손이 심했다고 했잖아. 한 사람의 시신이 여러 병원에 있었거든. 몸통 부위가 안치된 병원으로 신체 부분, 부분을 후송해야만 했어.

이렇게 어렵고 힘든 시간이 지나고, 시신 확인이 진행돼. 진영 씨 가족들도 연락을 받고 모두 병원으로 향했어. 오빠가 대표로 확인을 했는데, 확인 후 나온 오빠가 아무 말이 없어. 한참 후 한마디를 내뱉어. "진경이... 확인했어요"라고.

"표현을 못 하겠는데 굳이 표현을 해라 하면, 형체가 거의 없어요. 맨살은 하나도 안 보이고. 거의 숯 정도로 이렇게 보이는 상태였으니까. 사람 형체가 없는 거였고, 이렇게 덩어리 덩어리 돼 있는 그런 걸 보니까. DNA 일치해서 진경이가 맞다하니까 맞는 걸 알지, 제 눈으로서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 상황입니다. 막 불이 붙고 이러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만약에 기절했을 때 그렇게 탔으면 그래도 좀 덜하겠지만, 기절 안하고 묶여 있는 상태고 어디에 뭐 의자나 틈에 끼어 있는 상태에서 불이 불고 타 들어가고 있었다고 생각을 해보면. 이거는 너무나 힘든 순간이었을 것 같다…"

-故양진경 씨 오빠

어떤 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 다만 고통 없었길 바랄 뿐이야.

에어차이나 129편 항공기에는 조종사와 승무원 11명, 승객 155명, 모두 166명이 탄 상태였어. 그 중 129명이 사망했고, 한국인 사망자는 111명이야. 추락한 비행기는 시신조차 온전하게 돌려주지 않았어. 유전자 검사로도 신원확인이 안 될 정도로 훼손이 심한 시신들이 있었어. 그런 시신들은 한꺼번에 화장을 하고 유골함에 나눠 담아야 했어.

대체 왜 이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 걸까? 대체 비행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금부터 그날 비행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보여줄게.

▲ 김해공항 착륙에 무슨 일이?

김해공항은 이렇게 2개의 활주로가 있어. 사진 상, 왼쪽에 있는 활주로가 착륙 전용, 오른쪽이 이륙 전용 활주로야. 129편 항공기는 이 쪽 THREE SIX LEFT(36L) 활주로로 들어올 예정이었어. 남쪽에서 접근을 시작해서 북쪽으로 착륙을 하는 거야.

그런데 착륙 접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11시 9분. 활주로가 ONE EIGHT RIGHT(18R)로 변경됐어. 18R는 북쪽 접근해서 남쪽으로 착륙을 해야 하는 거야. 왜 활주로가 변경됐을까? 바람 방향 때문이야.

바람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면 36L 쪽에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불면 18R 쪽에서 착륙을 해야 해. 그 이유는, 맞바람을 맞으며 착륙하면 활주로 거리를 짧게 쓰고 안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기 때문이야. 항공기 진행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오면 항공기를 뒤에서 밀어서 착륙 활주거리가 길어지니까. 그래서 맞바람을 맞으며 착륙하는 거야.

에어차이나 129편 착륙 전 남서풍이 강하게 불고 있었어. 그래서 129편 항공기의 착륙활주로가 18R로 변경이 된 거야. 그럼, 경로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잡고 내리면 되잖아? 그런데 문제가 있어. 활주로 북쪽이 산악지형이야. 그 중, 381미터 높이의 돗대산도 있어. 그럼, 어떻게 착륙을 해야 할까?

노란색 점선으로 되어 있는 것이 항공기 경로야. 이건 항공사 조종사들이 참고하는 항적이야. 18R로 착륙하려면, 항공기가 산이 있는 곳에 가기 전, 180도 돌아서 착륙을 하는 거야. 이걸 '선회접근'이라고 해. 이 그림은 사고 당시 설정되었던 선회접근 방법이야.

타원을 그리고 있는 빨간색 선은 비행기가 안전하게 선회할 수 있는 범위야. 이 타원 내에서 선회를 하라는 거지.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선회접근 중에는 계기를 참조하며 반드시 활주로를 눈으로 계속 보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 이건 굉장히 중요한 원칙이야. 만약에 활주로를 시야에서 놓친다면, 무조건 '복행(復行, Go Around)' 해야해. 착륙을 포기하고 다시 떠올라서 안전한 고도와 지역으로 간 후에 다시 정해진 비행 절차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거야.

그럼, 129편 항공기는 어떻게 운항을 했을까? 실제로 129편 비행기가 이동한 항적이야.

빨간 타원 내에서 선회를 해야 한다고 했잖아. 근데, 이 구역을 벗어나 계속 직진을 하더니, 늦게 우측으로 선회를 시도한 거야. 착륙을 위해 고도도 낮췄겠지. 늦은 선회에 고도도 낮추니까 결국, 돗대산에 충돌을 한 거지.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그 비밀을 밝혀줄 블랙박스, 조종실 내 음성녹음 기록을 하나씩 들어볼 거야. 오디오는 녹음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어.

사고 1분 여 전부터 들어볼게. 조종실에는 기장과, 제1부조종사, 제2부조종사가 있었고, 조종은 제1부조종사가 하고 있었어.

제1부조종사: 바람이 너무 세요. 조종하기 힘듭니다.

기장: 내가 조종할게요. 우선회할게요.

제1부조종사: 너무 늦지 않도록 빨리 선회 하세요.

-129편 음성녹음 기록 中

제1부조종사가 조종의 어려움을 나타내. 그러자 기장이 조종을 하겠다고 해. 그리고, 우선회라고 하지? 1부조종사가 빨리 선회하라고 했어. 근데, 우선회를 하지 않았어. 왜 그런 걸까? 이어서 들어볼게.

가장: 활주로 찾는데 좀 도와주세요.

제1부조종사: 고도에 주의하시고요. 비행하기 힘들어지는데요. 고도에 주의하세요.

-129편 음성녹음 기록 中

선회를 해야 하는 구역을 벗어나고 있는데 기장이 활주로 찾는데 도와달라고 해. 좌측 기장석에서는 활주로가 보이지 않아. 오른쪽 좌석에 앉아 있는 제1부조종사가 직접 눈으로 활주로를 보고 있어야 해. 근데 제1부조종사는 활주로 확인에 대한 답은 없이, 계속 고도 얘기만 해. 그리고 김해공항 기상 상태가 안 좋았잖아? 이때, 항공기가 구름 속에 진입했을 것으로 추정돼. 항적을 보면 우측으로 선회를 했지만, 원래 우선회를 하려는 시점에서 무려 15초나 더 비행을 한 후였어.

이제 마지막 조종실의 음성을 들어볼게.

기장: 활주로 봤어요?

제1부조종사: 아니요. 안 보이는데요. 복행하시죠. 당겨! 당겨!

-129편 음성녹음 기록 中

이 대화 끝엔 비행기 충돌소리가 담겼어. 기장이 다시 한 번 "활주로 봤어"라고 물어봤는데, 제1부조종사의 대답은 '안 보인다'야. 선회접근 시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지? 활주로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 그런데, 활주로를 놓친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즉시 복행을 해야 해. 착륙을 포기하고 비행기를 상승시켜야 해. 선회접근 시 활주로를 시야에서 놓쳤는데 그대로 비행을 하는 건, 아주 아주 아주 위험하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야. 심지어, 제1부조종사의 복행 권고에도 비행기는 바로 상승하지 않았어. 그리고 몇 초 후에 129편 항공기는 돗대산에 충돌해버려.

사고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 불과 6초 전에만 복행을 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해. 제1부조종사가 활주로가 안 보인다고 했을 때, 이때가 사고 7초 전이야. 그때 조종간을 당겼더라면, 이 모든 것이 달라졌을지 몰라.

조종사들은 왜 이렇게 비행을 한 걸까? 그 답을 직접 듣고 싶지? 사실 생존자 중에는, 기장도 있었어.

Q. 비행사로 일한 경력은 몇 년입니까?

기장: 1년입니다.

Q. 김해공항은 몇 번이나 와봤습니까?

기장: 몇 차례…

이후 기장에 대한 정식적인 조사가 이뤄졌어.

조사관: 180도 선회를 제 때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장: 선회 지점 접근 때 김해관제탑 관제사가 착륙허가를 내려, 이 허가에 관심을 기울이느라 시간측정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조사관: 활주로가 계속 확인이 됐습니까?

기장: 계기와 외부를 동시에 확인하느라 언제까지 활주로를 보았는지 정확하게 기억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조사관: 본인이 "활주로 봤어요?"라고 물었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기장: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조사관: 부기장의 "복행하시죠"라는 권고에 왜 바로 복행하지 않았습니까?

기장: 복행하시죠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관제탑 착륙허가를 듣느라 선회 지점을 놓쳤다, 활주로를 확인했는지 안했는지 기억이 안난다, 복행하라고 했던 부기장의 말 역시 기억이 안난다…. 129편 기장은 추락 사고에 대한 정확한 해명을 하지 않았어.

물론 김해공항 선회접근이 쉬운 건 아니야. 활주로 근처 산악지형이 착륙에 어려움을 주니까. 그래서 국내 조종사들도 시뮬레이션 훈련을 많이 한다고 해. 129편 기장은 비행시간 약 7000시간, 기장경력은 7개월 차였대. 당시 김해공항에 착륙경험은 있었지만, 선회접근은 이번이 처음이었어. 그리고 선회접근 훈련도 장애물이 적은 베이징 공항에서 했다고 해.

결국 에어차이나 129편 사고의 주요원인은 조종사 과실로 결론이 내려져. 그럼 기장은 어떻게 됐을까? 알 수가 없어. 다양한 항공관련 기관에 문의를 했지만, 기장이 중국으로 돌아간 이후의 상황은 알지 못한다는 답변을 받았어.

대부분 나라들의 항공법에 따르면, 사상자가 발생한 항공 사고에서 조종사 과실이 주요 원인인 경우, 해당 조종사가 형사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어. 다만, 항공 사고시 조종사도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 형사 처벌을 할 수 없는 거지. 그런데 이 경우는, 조종사가 생존했잖아. 처벌유무를 떠나, 후속처리에 대해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본국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됐는지? 중국에서는 그 조종사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 수도 없었고 연락 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故양진경 씨 오빠

▲ 사고 그 후

이렇게 사고 원인이 밝혀지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이건 '항공기 사고조사 보고서'야. 조사보고서 발표는 2005년 5월에 있었어. 3년 만에 결과가 나온 거야. 사고 당사국인 한국, 항공기 운영국인 중국, 항공기 제조국인 미국이 합동 조사를 한 거야. 이 결과를 탑승객과 유족들은 얼마나 기다렸을까.

몇몇 유족은 중국 측과 합의를 했지만 많은 유족들이 배상을 위해 소송을 진행했어. 그렇게 또, 몇 년의 시간이 걸렸어. 유족들은 이 부분이 너무 힘들었다고 해. 그대로 포기하고 싶은 만큼...

"사고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돌아가신 분이 얼마 버는지 증명을 하시오, 그래야 돈 줄게, 이렇게 하니…"

-故양진경 씨 오빠

생존자 설익수 씨도 3개월 동안 입원을 해야 했고, 얼굴도 여러 차례 수술해야 했어. 익수 씨가 병원에 입원 중일 때 찾아 온 사람이 있었대. 도널드 매킨타이어라는 사람이야. 바로, 미국 타임지의 서울 지국장이야. 비행기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는 영웅적인 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타임지가 찾아왔다는 거야. 익수 씨는 뭐라고 했을까?

"제가 젊어서, 두 다리 멀쩡해서 한 거예요. 누구나 그 상황이라면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랬더니, 타임지 지국장이 이런 얘기를 했다는 거야. 자신도 경비행기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며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는 거야. 그리고, 타임지에 이 내용이 실렸어.

<아시아의 영웅들> 대한민국 설익수

비행기 추락 생존자가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듭니다.

120명 이상이 사망한 비행기 추락에서 탈출한 후, 설익수는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갔습니다.

우연한 구원자로서, 설익수는 아마도 가장 순수한 종류의 영웅일 것입니다.

-당시 타임지에 실린 설익수 씨 내용 中

사고 이후, 김해공항의 안전성 향상을 위해 몇 가지 바뀐 게 있어. 활주로 주변에만 있던 활주로유도등이 추가로 설치가 돼. 180도 선회를 하는 항적대로 설치가 된 거야. 그리고 주간 비행 때는 장애물의 존재를 알리는 주간장애표지판이란 것도 생겼어.

에어차이나 129편 추락사고 이후 김해공항에서 더 이상의 사고는 없었지만, 이 사고로 신공항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어. 20여 년간 무산과 재추진이 반복되다가 2021년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확정됐어. 하지만 건설반대 여론도 있는 실정이야.

어쨌든 우리 모두의 바람은 하나이지 않을까?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 곳곳에 있는 공항들이 모두 안전한 것. 사람이니만큼 조종사의 실수와 과실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반복되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 이 바람은 유족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설익수 씨는 사고 이후 오랜 시간을 트라우마에 시달렸어. 사고 순간의 기억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거야.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그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다고 해. 그리고 언니네 가족 모두를 잃은 진영 씨는 지금도 매주 일요일이 너무 힘들어.

"일요일. 언니가 일요일 낮에 가끔씩 말도 없이 부산을 훅 날려와요. 그리고는 '밥 먹으러 가자' 그래요. '예쁜 것도 사 입자, 같이' 이러는 거예요. 일요일 낮 되면 '아 언니 올 땐데…' 계절이 변하면 '언니 올 땐데…' 이런 생각 들어요."

-양진영, 故양진경 씨 동생

에어차이나 129편 추락사고 추모탑에는 가족들이 남긴 글이 쓰여 있어. 너무도 갑작스러운 이별에 못 다한 말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는 거야.

"먼 훗날 하늘에서 다시 만나요. 사랑해요. 영원히 사랑해요."

"아버지 어머니 살아생전에 효도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있을 너를 생각하며 엄마는 감사드린다. 사랑한다. 너는 내 생활이며, 일기였다."

오늘 이야기를 통해 '원칙'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거 같아. '선회접근 시 활주로를 시야에서 놓치면, 반드시 복행' 이게 원칙인 거잖아. 생각해 보면 원칙은 어렵거나 힘든 게 아니고, 지극히 상식적인 그야말로 기본이야. 이 원칙만 잘 지키면 많은 것들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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