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경영 참여 의지 내비친 노소영, 반격 준비 나선 최태원
최태원 “SK 역사 부정…바로잡겠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 모락모락?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다. 역대 이혼소송 재산분할 중 최대 규모인 '1조3808억원 지급'이라는 결과 때문이다. 역대급 항소심 결과에 재계에선 경영권 분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노 관장이 "SK그룹의 경영이 바로잡혀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주변에 내비친 것으로 알려져서다. 1심과 정반대 결과에 최 회장은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특히 정경유착으로 그룹이 성장했다는 법원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노태우 비자금'이 바꾼 항소심 결과
5월30일 서울고법 가사2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산분할 규모와 위자료 액수 모두 사법 사상 최대 규모로, 1심과 비교했을 때 각각 20배 늘어났다. 앞서 2022년 12월 1심 재판부는 위자료 1억원에 재산분할 665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1심과 항소심 판결의 가장 큰 차이점은 SK㈜ 주식에 대한 특유재산 판단이다. 특유재산은 부부 일방이 혼인 전부터 보유했던 고유재산이나 혼인 중 본인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의미한다.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SK㈜ 주식에 대해 노 관장이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없는 '특유재산'으로 판단해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SK그룹의 가치 증가나 경영활동의 기여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최 회장의 재산은 모두 분할 대상"이라고 결정했다. SK㈜ 주식도 분할 대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의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여억원이 SK로 흘러들어가 성장에 기여했다는 노 관장의 주장을 받아들인 판결이다. 노 관장은 재판 과정에서 1990년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중 343억원이 최 전 회장 등에게 전달됐으며 1992년 태평양증권 인수, 1994년 대한텔레콤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재판부는 노 관장과 부친인 노 전 대통령이 SK그룹의 형성과 성장 과정에 기여했다고 보고, 부부 공동 재산으로 판단한 셈이다.
항소심 판결 이후 침묵을 지키던 최 회장은 나흘 만인 6월3일 작심발언을 내놓았다. 이날 SK그룹 최고협의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임시회의에 참석한 그는 "개인적인 일로 SK 구성원과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며 상고의 뜻을 밝혔다. 정경유착이 그룹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재판부 판결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판결 나흘 만에 입 연 최태원 "SK 역사 부정당해"
같은 날 사내망에 올린 '구성원에 전하는 편지'에선 더 강한 어조로 유감을 표명했다. 최 회장은 "지난 71년간 쌓아온 SK 브랜드 가치, 그 가치를 만들어온 구성원의 명예와 자부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며 "우리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해온 역사가 정면으로 부정당한 것에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동통신사업 특혜설에 대해선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사돈기업 특혜 논란'을 이유로 사업권 포기를 요구했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남아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1994년 이동통신사업 진출을 "정경유착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와 실력으로 이뤄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이 이 같은 반응을 내놓은 배경엔 그룹의 가치와 역사가 훼손됐다는 판단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1998년 최 회장 취임 당시 32조8000억원이던 SK그룹 자산은 지난해 기준 327조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배와 9.4배 증가했다.
지배구조 등 기업 운영 측면에서도 SK는 앞서 나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회장은 2007년 지주사 체제 전환을 결정했다. 상대적으로 빨리 순환출자 고리를 끊은 것이다. 2016년엔 사회적 가치 창출을 강조했는데, 이는 향후 재계의 화두가 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회장 취임 이후 재계 순위 5위에서 2위로 끌어올린 자신의 성과까지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을 것"이라며 "대법원 상고심에서 비자금 유입은 물론 특혜도 없었음을 입증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계에선 노 관장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항소심 이후 노 관장 측 법률대리인은 일부 언론을 통해 'SK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SK㈜의 우호 지분으로 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또 다른 노 관장 측 법률대리인은 "노 관장 대리인 가운데 한 변호사가 개인 의견을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선을 그었다. 노 관장을 대리하는 변호인은 로펌 4곳에 11명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혼선을 빚고 있는 모양새다.
노 관장의 경영 참여 의지가 작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그는 이혼소송과 관련해 "돈이 문제가 아니다. SK그룹의 경영이 바로잡혀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주변에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당초 노 관장이 재산분할 대상으로 SK㈜ 주식을 요구했다는 점은 경영 참여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 관장은 1심에서 최 회장의 SK㈜ 주식 가운데 50%(649만여 주)를 요구한 바 있다.
1심 패소 이후인 2023년 1월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상급심에서 저의 기여만큼 정당하게 SK 주식을 분할받으면 SK가 더 발전하고 성장하도록 적극 협조할 생각"이라며 "주주로서 역할을 잘할 것이다. 저는 당연히 SK가 더 좋은 회사가 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는 사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SK㈜ 지분 확보에 관심이 있다는 점을 드러낸 대목이다. 대법원에서 현금 지급 판결이 유지되더라도 해당 자금을 토대로 SK㈜ 지분을 확보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다.
재산분할 재원 어떻게 마련할까
다급한 쪽은 최 회장이다.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파기환송 하지 않으면 최 회장은 1조원이 넘는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율은 17.73%로 그 가치는 2조2000억원 이상이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최 회장 측 SK㈜ 지분율은 25.57%다.
시장에선 SK㈜ 지분 매각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지분이 줄어들면 당장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어서다. 주식담보대출도 여의치 않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SK㈜ 주식 5.45%를 담보로 4895억원을 대출받은 바 있다. 추가로 담보대출을 받는다면 이자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에 비상장 주식인 SK실트론 지분(29.4%)을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가치를 7500억원으로 봤다. 하지만 SK실트론이 SK그룹 반도체 밸류체인 내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맡고 있고, 꾸준히 기업 가치가 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최 회장 지분이 시장에 나온다면 가격은 더 뛸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주요 IB와 로펌들은 벌써부터 SK 관련 딜 제안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최 회장이 재산분할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그룹에 대한 지배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그룹 내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겸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부회장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 의장은 고(故) 최종건 창업주의 3남이자 최 회장과는 사촌 관계다. 지난해 12월 수펙스 의장에 선임된 그는 현재 그룹 전반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하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의 지분 조정까지 염두에 둔 사업 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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