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적제재 논란…마녀사냥에 무고한 시민까지 피해

유튜버 간 신상공개 경쟁에 제보 독려
무관한 사람들도 지목되며 피해 입어

5일 경북 청도군 한 식당 내부가 텅 비어 있다. 이 식당은 20년 전 경남 밀양 지역에서 발생한 밀양 집단 성폭행 가해자가 근무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청도군은 이 식당에 불법건축물 철거 명령 등 법적 조처를 내렸고, 현재는 영업정지 처분 상태다. 연합뉴스

최근 일부 유튜버들이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가해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신상을 공개하며 무분별한 신상털이가 전개돼 ‘사적 제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유튜버의 돈벌이와 네티즌들의 군중 심리 속에서 사건과 무관한 인물들까지 가해자로 지목되며 "마녀사냥을 멈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7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일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를 시작으로 온라인 상에 사건의 가해자나 주변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이름, 나이, 거주 지역, 직장, 주변인 관계 등을 상세히 담은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사건이 화제를 모으자 다른 유튜버까지 가해자 폭로에 가세했다. 유튜버들은 서로 ‘신상 까기’ 경쟁에 열을 올리며 네티즌들의 ‘제보’를 독려하고 있다.

피해자 측은 이처럼 사건이 재조명되는 데 대해 피해자의 동의조차 없었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밀양 성폭행 사건 피해자 지원단체 중 하나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5일 "피해자 측은 나락보관소가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에 대해 첫 영상을 게시하기 전까지 해당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사전 동의를 질문받은 바도 없다"며 "영상이 업로드된 후 영상 삭제 요청을 했다. 피해자와 가족 측은 향후 (가해자) 44명 모두 공개하는 방향에 동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유튜버들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나락보관소’는 "피해자 가족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달라서 충돌 있다는 걸 아냐"며 영상 게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삭제했다.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이 주동자와 주동자의 주변 인물로 지목되며 피해를 보기도 했다. 가해자의 연인으로 잘못 지목된 한 네일샵 원장은 영업 피해를 호소하며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튜버는 "(그 사람을 지목한) 전후 사정이 어떻든 잘못한 부분에 대해 저 또한 공격 받고 나락으로 가려고 한다" "제가 정신 차릴 수 있게 마구 욕 부탁한다"며 가벼운 사과로 끝마쳤다. 또 유튜버가 주동자의 일터로 지목한 식당은 폐업 수순을 밟게 됐는데, 식당 주인의 아들이자 가해자의 사촌이라는 이는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형을 채용했다"며 "사건 당시 사촌네와 왕래조차 없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유튜버의 돈벌이 경쟁과 네티즌들의 군중 심리 속에서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은 여전히 계속되는 추세다. 네티즌들은 유튜버 측에 2000원에서 50만 원까지 후원금을 보내며 가해자 신상에 대해 더 공개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나락보관소’는 영상 공개 후 5일 만에 약 45만 명의 구독자를 추가 확보했다.

김린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