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KHAITE)는 어떻게 ‘미국 패션의 미래’로 불리게 됐을까.

최보윤 기자 2024. 6. 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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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말 국내 상륙, 첫 오프라인 행사 마쳐
디자이너 캐서린 홀스타인이 선보인지 5년만에 미국 디자이너상 휩쓸어
자연스럽게 새어나오는 관능미… ‘뉴욕의 경쾌함’ 품위를 입다
지난 4월 25일 서울 성수동 레이어 스튜디오 27에서 진행된 프레젠테이션 현장. 올해 2월 뉴욕패션위크 기간에 선보였던 케이트의 2024 가을-겨울 컬렉션 주요 상품을 국내에 가장 먼저 공개하는 자리였다. /코오롱FnC 제공

‘모두가 케이트에 대해 이야기해.(Everybody’s talking about Khaite)’

미국의 하이틴 영화 제목 같은 이 문장은 최근 몇 년 사이 패션계에 ‘실재(實在)’하는 일을 한 줄로 압축한 것이다. 말 그대로다. 특히 미국 패션계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케이트’에 대해 적어도 한 번쯤은 거론했을 법하다. 아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뿐, ‘케이트’를 봤거나 ‘케이트’에 대해 한마디 했던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아니라고? 전혀 머릿속에 없는 단어라고? 케이트(Kate)는 들어봤어도 케이트(Khaite)는 생소하다고?

그렇다면 이 장면은 어떨지. 수년 전 할리우드 배우 케이티 홈즈가 회색 캐시미어 카디건에 브라탑 차림으로 뉴욕 거리에서 포착된 장면 말이다. 편안해 보이면서도 섹시한 차림은 케이티 홈즈를 다시금 핫(hot)한 ‘패셔니스타’로 격상시키며 전세계를 들썩였다. 파파라치 사진이 온라인에 오른 뒤 한 시간도 채 안 돼 카디건과 브라탑은 마치 ‘세트’처럼 품절됐다. 당시 케이티가 고른 브랜드가 바로 케이트(Khaite)다. 이후 할리우드 스타 헤일리 비버·다코타 존슨, 톱 모델 켄달 제너·카이아 거버, 모델 겸 패션디자이너 알렉사 청 등도 케이트를 선택하며 패션에 좀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케이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케이트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이스트점 입구.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뜨는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히는 케이트가 얼마 전 서울 한복판을 들썩였다. 지난 4월 25일 서울 성수동 레이어 스튜디오 27에서 진행된 프레젠테이션에서다. 국내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이하 코오롱FnC)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식 수입을 전개하면서 처음으로 선보인 오프라인 행사다. 또 올 2월 뉴욕패션위크 기간에 선보였던 케이트의 2024 가을-겨울 컬렉션 주요 상품을 국내에 가장 먼저 공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패션계에 ‘신흥 강자’라는 말이 더는 통용되지 않는 듯한 순간, 마치 영화 ‘토르’처럼 나타나 패션계 지각 변동을 일으킨 케이트. 케이트는 어떻게 전세계 마니아 팬들을 사로잡았을까.

◇뉴욕패션위크를 다시 핫하게 만든 케이트

‘케이트’는 밀레니얼 세대 대표 디자이너 캐서린 홀스타인(40)이 2016년 선보인 브랜드다. 미국 뉴욕에서 은행가 아버지와 까르띠에에서 일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뒤 태양빛이 작열하는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와 창의성이 콧바람처럼 흐르는 런던 등에서 자랐다. 미국 파슨스 디자인 대학 재학시절 디자인한 의상이 미국 바니스 뉴욕에서 판매되면서 ‘겨우’ 스물두 살 때 미국 백화점 바이어들이 주목하는 신예 디자이너가 됐다.

그녀의 브랜드명인 케이트는 ‘길고 흐르는 머리카락’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따왔다. 모험적인 자유의 상태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 강인함과 부드러움, 구조와 유동성, 클래식과 모던함 등 상반되는 개념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뉴요커의 상징적인 모습을 세련되게 나타냈다. 케이트가 선보이는 여성 의류, 액세서리, 이브닝웨어 등은 뉴욕하면 떠오르는 경쾌함과 함께 이탈리아 장인들의 손바느질 느낌의 고급스러움까지 더해지면서 품위를 입었다. 몸에 흐르는 듯이 부드러운 느낌이 마냥 편안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새어나오는 관능미가 시선을 끌 만했다.

할리우드 스타를 사로잡으며 ‘완판 행렬’을 일으킨 케이트는 뉴욕패션위크에서도 뉴욕을 다시 패션계 궤도의 중심에 올린 주역으로 꼽히기도 한다. 한때 가장 촉망받는 디자이너들이 몰리는 곳이었으나, 파리와 밀라노에 밀려 그 이름이 예전같지 못했던 뉴욕이 오랜만에 패션 마니아들로 활기를 띠었다. ‘케이트’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트렌드에 앞서고, 패션계 차세대 스타의 맥을 짚을 줄 아는 전문가 대접을 받았다.

디자이너 캐서린 홀스타인은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로부터 2019년 올해의 디자이너 후보로 빠르게 선정된 뒤 2021년에는 CFDA(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 여성복 디자이너 후보에 올랐으며, 2022년에 마침내 수상의 주인공이 됐다. 또 케이트는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패스트 라이브즈’ 등을 선보인 영화 제작·배급사 A24 등에 투자한 자산 규모 65억 달러(약 8조 9300억원)의 글로벌 사모펀드 회사 스트라입스(Stripes)에 자본을 지원받아 매장을 확장하고 있다. 설립된 지 10년도 안 된 ‘신흥 브랜드’가 뉴욕 패션계의 ‘왕좌’에 오른 셈이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대담한 디자인…아메리칸 럭셔리의 진수

캐서린 홀스타인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이야기는 그의 디자인 철학을 압축한다.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간결한 재단으로 셀린느를 가장 핫하게 만들었던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 시절)를 사랑하고 즐겨찾았지만, 어느 순간 너무 귀하게만 여겼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마치 예술품처럼 말이죠. 저는 아침에 입으면, 일주일에 세 번은 입을 수 있는 옷을 원했어요. 그러면서도 1990년대에 파리에서 산 언니의 캐시미어 스웨터, 어머니의 켈리 백, 오래된 리바이스 청바지… 이 모든 아이템의 스타일과 품격을 간직하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브랜드가 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케이트는 화려한 로고를 내세우기보다 드러내지 않아도 풍겨 나오는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추구한다. 최소한의 단순한 요소들을 조합하고, 장식을 최소화한 절제된 실루엣과 색채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가 패션계를 강타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됐다.

눈여겨볼 또 하나의 특징은 ‘소재’다. 케이트의 모든 제품은 이탈리아 최고급 제조업체에서 생산되어 로로피아나, 샤넬, 알라이아 같은 최고급 브랜드의 실과 동일한 품질을 보장한다. ‘가치 소비 (Value Consumption)’, 즉 고품질 소재와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옷을 선호하는 트렌드는 케이트의 브랜드 정신과 일치한다.

케이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캐서린 홀스타인은 한 인터뷰에서 “케이트의 옷을 만들 때 놓치고 싶지 않은 감정을 자아내는 것들에 영감을 받았다”라며 “어머니의 옷장에 있는 물건들을 떠올리며,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옷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디렉터의 가치관처럼, 케이트는 완벽한 데님과 캐시미어 스웨터부터 크리스탈이 박힌 이브닝 가운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아이템과 로로피아나, 브루넬로 쿠치넬리와 같은 최상의 퀄리티의 캐시미어 스웨터 등 단순한 유행을 따르는 룩보다는 유행을 따르지 않고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옷을 선보인다.

케이트를 입는 이들의 특별한 기억 속 한편에 살아 숨쉬는 옷으로, 가문의 긴 세월 유지해 온 가치관과 함께 어머니부터 딸의 옷장에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할 것이다. 이처럼 케이트는 상반된 개념 사이에서 아름다운 균형을 찾아내는 뚜렷한 개성을 가진 브랜드로서 현대 여성 패션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대담한 조화와 혁신적인 디자인은 아메리칸 럭셔리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뉴욕 맨해튼 소호에서 영감받은 서울 갤러리아 명품관 매장

케이트는 패션계에서만 화제인 것도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뜨는 건축 트렌드인 브루탈리즘(brutalism·가공하지 않은 재료, 특히 노출 콘크리트의 과감한 사용과 비정형적인 건축 스타일)을 적용한 매장 디자인으로도 화제였다. 미국 맨해튼 소호에 연 플래그십 스토어는 미니멀하면서도 흙손(trowelled·시멘트 바르는 도구)으로 깎아 질감을 살린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했다.

국내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이스트점 3층에 선보인 첫 정식 매장 역시 이러한 느낌을 최대한 자아내 산업적인 느낌과 창조적인 유산을 담아냈다. 공간은 핸드 크래프트 콘크리트 마감으로 조각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여기에 미국 스타일의 편안함과 변형 가능한 디테일을 인테리어 곳곳에 녹였다.

성수동에서 선보인 케이트의 2024 가을-겨울 시즌은 긴 기장의 나그랑 코트, 카라가 달린 망토, 턱시도 재킷 등 세대를 아우르는 클래식한 실루엣을 반영한 다양한 외투로 가득했다. 제품 전반에 케이트의 시그니처인 스터드(금속 징) 장식을 적용해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각을 더했다. 비스코스, 최상급 메리노 울 소재의 니트와 실크 제품도 돋보였다. 이탈리아 장인 정신으로 제작된 액세서리를 비롯해 건축적 디자인이 인상적인 오픈토 슈즈, 브랜드 대표 핸드백인 엘레나(Elena) 가방, 미국 글라스웨어 ‘올리버 피플스’와 협업한 선글라스 등 다양했다. 케이트 관계자는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케이트만이 구현할 수 있는 모험적이고 자유로운 디테일의 컬렉션을 기다렸던 한국 고객이 많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며 “다가오는 가을, 겨울 시즌에도 케이트의 가치를 반영해 럭셔리 패션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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