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부터 ‘北 압도’ 시작…“고마웠어요” F-4 팬텀이 떠났다 [박수찬의 軍]
한국 공군은 물론 세계 밀리터리 역사에 기록될 만한 행사가 7일 열렸다. 공군에서 55년 동안 활약하며 영공을 지켰던 F-4팬텀(유령)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행사다.
너무도 낡아서 더는 사용할 수 없어 기체를 떠나보내는 행사지만, 오래전부터 국내외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공군도 마지막 실사격과 고별비행 등을 진행하며 F-4를 떠나보낼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해 왔다. 그만큼 F-4가 공군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는 의미다.
◆한반도 냉전의 게임체인저, F-4
1969년 처음 한국에 도입되어 187대가 쓰인 F-4는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당시 한반도 정세를 바꾼 ‘게임체인저’(어떤 일에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한 중요한 인물, 사건, 제품)였다.
F-4 도입 직전이었던 1968년 한반도는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 근처까지 침투한 사건과 미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 피랍 등으로 일촉즉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장 우려스러웠던 것은 공군력이었다. 한국 공군은 6·25전쟁 당시 사용됐던 F-86 전투기를 1955년부터 들여왔고, 1960년대부터는 미국에서 F-5A/B 전투기를 지원받았다.
한계는 여전했다. F-86은 구형 기체가 되면서 유지보수 등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었다.
북한 공군이 옛소련에서 IL-28 경폭격기를 도입한 것에 맞서 레이더와 공대공 로켓으로 무장한 F-86D를 들여왔지만, 한국 공군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하진 못했다.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하면 현대전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점을 6·25전쟁에서 절감했던 한국은 첨단 전투기 도입을 지속적으로 시도했고, 그 결과 F-4를 얻을 수 있었다.
F-4는 한국 공군에 있어 처음으로 확보한 현대식 전투기였다.
6·25전쟁에서 사용한 미국산 F-51D는 프로펠러 전투기였고, 그나마도 지상공격에 주로 쓰였다. F-86은 제트엔진을 사용했으나 음속을 넘지 못하는 속도를 지녔고, 탑재된 장비도 근접공중전이나 지상공격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반면 F-4는 다른 기종과 달리 야간 및 전천후 작전 능력을 지녔다. 전장 환경에 관계 없이 비행에 나서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셈이다.
F-4는 개발 당시 마하 2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고 6t이 넘는 무장과 3시간 이상의 항속능력을 갖춘 것으로 구상이 됐다.
2차 대전 때 미군이 쓰던 B-17 중폭격기가 단거리 폭격 임무 시 적정 폭장량이 4t이 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혁신적인 구상이다. 레이더로 적기를 포착해 미사일로 제압하는 능력도 갖췄다.
멀리 날아가서 먼 거리에서 미사일로 먼저 공격하는 초음속 전투기. 당대 인식을 넘어선 개념과 기술이 반영된 기종. 그것이 F-4였다.
이같은 성능을 지닌 F-4를 세계 네 번째, 동아시아에선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한반도 제공권은 한국이 우위에 서게 됐다.
F-4는 야간작전을 비롯해서 한반도 유사시 대북 보복능력을 제공하는 것과 관련된 임무를 수행했고, 카디즈(KADIZ·한국방공식별구역) 수호 등에도 참여했다.
1999년 도입된 AGM-142 팝아이 중거리 공대지미사일은 F-4에 전략적 타격능력을 추가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오랜 기간 사용하는 데 따른 노후화는 피할 수 없었다. F-4는 생산 당시 설계수명이 4000시간이었다.
2003년에는 수명을 9600시간으로 늘려서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것도 부품 확보 문제로 F-4D는 2010년 퇴역했다.
F-4E는 일선에 계속 남아 팝아이 미사일 플랫폼 역할을 수행했으나 전투기 노후화로 퇴역이 결정됐다. 첫 도입 55년 만이다.
조종사와 정비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노후한 기체를 오랜 기간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지만 운용상 제약이 커지는 것은 불가피한 부분이다. 기체를 오래 사용할수록 비행과정에서 기체가 감당할 수 있는 중력 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복잡한 기동보다는 뜨고 내리는 수준의 비행 위주로 운용하게 되고, 수행 가능한 임무 범위도 줄어들게 된다.
전투기는 일반적으로 30년 정도 사용하고 대체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F-4를 혹사했다”는 지적과 더불어 대체 기종을 제때 마련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F-4는 한국 공군에 현대적인 항공전 개념을 전수하는 역할도 했다.
6·25 전쟁에서 유엔군과 공산군은 제트 전투기를 사용했지만, 항공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습과 유사했다. 미군 F-86은 기관총, 공산군 미그-15는 기관포로 상대방과 공중전을 벌였다.
F-86을 운용하던 한국 공군이 추가로 확보했던 F-5A/B는 레이더가 없었고, 무장도 AIM-9 단거리 공대공미사일과 폭탄 정도였다.
F-4는 달랐다. 전투기에 탑재하는 미사일의 사거리가 늘어나는 것이 해당 기종의 공격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한국 공군에 인식시켰다.
F-4는 가시거리 밖인 25㎞ 거리에 있는 적기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사용했다.
레이더로 적기를 먼저 발견해서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면 아군은 별다른 피해 없이 먼 거리에서 적기를 요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칼을 지닌 상대방을 먼 거리에서 활로 쏴서 무력화하는 것과 같다.
미사일이 적기에 명중하지 않을 경우에도 적기가 미사일을 회피하는 기동을 하도록 강요, 근접 공중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지금은 상식처럼 통용되는 ‘먼 거리에서 먼저 보고 타격한다’는 현대적 공중전 개념을 한국 공군에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 F-4인 셈이다.
F-15K와 KF-16에 AIM-120 암람을 장착하고, KF-21에는 암람보다 더 우수하고 사거리도 긴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사용하는 것의 시초가 F-4와 스패로우 미사일의 결합인 셈이다.
F-4 전력화 이후 북한 공군이 공중도발을 하지 못한 것도 F-4가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개념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지상 표적을 타격하는 장거리 공대지 능력을 처음 제공한 것도 F-4다. 한국은 1999년이스라엘산 팝아이 공대지미사일 도입을 결정했다.
사거리 100㎞ 이상인 팝아이는 지하벙커 출입구까지 찾아내서 부술 수 있다. 적 방공방에 포착될 위험성이 낮은 스탠드오프(stand-off) 방식으로 공격한다. 적 대공미사일 사정거리 밖에서 주요 시설을 타격한다.
기존에는 북한 내륙 지역 표적을 공격하기 위해선 저고도로 침투 비행을 하면서 방공망을 회피한 뒤 표적 인근에서 폭탄을 투하해야 했다. 이는 조종사와 기체의 생존성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었다.
팝아이는 중량이 1.4t에 달하는 무거운 미사일이었다. F-15K 도입 이전 상황에서 한국 공군에 가장 큰 전투기는 F-4였다. 따라서 F-4에 팝아이를 체계통합해서 운용하게 됐다.
F-4에 탑재한 상태에서 팝아이를 쏘면 1.4t의 무게가 일시에 엔진을 가동하며 떨어져나가게 된다. 비행기가 크게 흔들리는데,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미사일 명중률과 비행 등에 영향을 미친다.
팝아이는 노후화하던 F-4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북한 내륙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플랫폼 역할이다.
북한군도 이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팝아이 도입 직후 휴전선에 접근하던 북한 공군기는 F-4가 이륙하면 북쪽으로 돌아가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에 상당한 부담을 안겼던 팝아이는 F-4가 퇴역하면 일선에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팝아이 운용을 통해 한국 공군에 전수됐던 장거리 공대지 능력과 전략적 타격력·억제력의 의미는 꾸준히 계승되고 있다.
F-15K를 도입하면서 미국산 슬램 이알(SLAM-ER) 공대지미사일을 도입했고, 슬램 이알보다 사거리와 관통력 등이 더 우수한 독일산 타우러스 미사일을 구매해 체계통합했다. 중부지역에서 북한 내륙 타격 작전이 가능하다.
6·25 전쟁 전부터 북한 공군에 열세였던 한국 공군은 F-4를 도입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F-4를 통해 전수됐던 현대적인 항공작전 개념과 기술은 한국 공군을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게 했다. F-4는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F-4가 남긴 자취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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