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업계 최대 화제, 오메가X스와치 협업 탄생 이끈 남자
“파괴적 혁신을 위해선 내부 직원부터 설득해야… 변화 없이 그냥 얻어지는 건 없다”
지난 2022년 시계 업계 최대 행사이자 글로벌 시계박람회인 워치스&원더스(3.30~4.5)가 열리는 스위스 제네바. 코로나 기간 온라인으로 전환했다가, 처음으로 제 모습을 갖춘 오프라인 행사였다. 박람회에 참석한 수 백개의 브랜드들은 연간 매출을 좌우할 신제품을 대거 들고 나왔고, 유럽·미국 등지를 중심으로 각지에서 몰려든 기자들과 바이어 역시 온종일 부스를 돌며 눈길을 끄는 제품 탐색에 나섰다.
각종 복잡시계들과 온갖 미학적 코드를 접목한 시계들이 줄을 이었지만, 정작 현장에 있던 이들의 입을 바쁘게 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바이오 세라믹 문스와치(일명 문스와치·MoonSwatch). 워치스&원더스에 참석하지도 않는 스와치 그룹 내 브랜드인 오메가와 스와치가 손잡고 선보인 제품이었다. 박람회가 열리기 고작 나흘 전인 3월 26일 발표된 이 제품은 전 세계 시계 팬들을 들썩이며 연일 뉴스를 장식했다. 박람회 현장에선 “반갑다”에 앞서 “문스와치 봤어?”가 안부 인사를 대신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화제가 된 협업 프로젝트를 꼽으라면 단연 문스와치를 비롯한 스와치 그룹의 스와치 협업 시리즈다. 2022년 오메가 문워치와 스와치가 손을 잡은 바이오세라믹 문스와치는 한정판이 아님에도 오픈 전부터 전 세계 매장 밖에 수백 미터 줄을 설 정도로 화제였다. 업계에 따르면 첫해 문스와치 제품만 100만 개 이상을 팔았다고 한다.
기존에 없던 협업을 기획한 이는 스와치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닉 하이예크(70) CEO. 누나 등 가족과 함께 회사의 최대 주주이기도 한 그는 마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처럼 각종 아이디어로 업계를 들썩였다. ‘고정관념을 파괴하라’는 기치를 내걸고 스위스 시계 산업의 구세주가 된 그의 아버지 니콜라스 G. 하이예크 선대 회장의 가르침에 걸맞게 그는 모든 보통의 개념을 무너뜨리며 시장을 들썩였다. 니트에 얇은 패딩 베스트 점퍼 등 매번 비슷한 캐주얼 차림인 그를 스위스 비엘 스와치 그룹 새로운 본사에서 만났다. 본사 그의 사무실에서 국내 기자를 맞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신의 상징인 양쪽 손목시계를 인사처럼 선보였다.
◇대통령이든 유명 가수든 누구든 평등하게 줄을 서야 한다.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주효했다. 하지만 우리 회사가 더욱 특별한 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부에서 부품부터 제작까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깜짝 놀래킬 만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우리는 겉치레에 돈을 쓰는 게 아니다. 보통은 마케팅 투자로 판매를 올리고, 대리석이나 금으로 된 아름다운 매장에 많은 돈을 써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한다. 우리는 요란한 지위를 내세워 감동을 주려는 게 아니라, 물건을 만드는 공장에 먼저(putting first money) 투자한다.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궁극적으로 경쟁력을 갖게 되는 건 결국은 제품 그 자체의 훌륭함이다. 우리는 그걸 실행하는 사람이다.”
문스와치 성공 이후 스와치와 블랑팡이 손잡은 블랑팡 X 스와치 바이오세라믹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 역시 성공을 거뒀다. 올해는 문스와치 컬렉션 2주년을 기념해 오메가와 스와치가 함께 만든 일명 문스와치 스누피 에디션인 ‘미션 투더 문페이즈’로 또 한 번 대중을 놀래켰다.
-이그나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회담에 앞서 문스와치 제품을 선물하길 원했다는 기사를 봤다. 당신은 예외 없이 ‘줄을 서서 구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상관없다. 갖고 싶으면 줄을 서야 한다. 공짜라는 건 없다. 우리 이사회 멤버이자 초콜릿 제조업체 린트의 회장인 에른스트 태너도 날 보면 항상 두 세 개 구할 수 없느냐고 묻는다. 안된다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은 우리가 보통 아는 럭셔리 산업과는 대조적이다. 한정판도 아니고, 너무 비싼 독점상품도 아닌데 사람들이 서로 가지려 줄을 선다.”
스타들에게 제공했던 ‘협찬’이나 ‘선물’도 없었다. 유명 시계 컬렉터로 알려진 가수 에드 시런도 제공받지 않고 구매했으며, 가수 알리시아 키스 역시 매장 앞에서 줄 선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규칙을 깨고 있다.
“다른 브랜드들은 이전에 물건을 구매했는지를 묻는다. 예약을 해야만 입장 가능하다고도 한다. 웃긴다. 치과에 가려거든 미리 약속을 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상점에 가는데, 왜 예약이 필요한가. 물건을 사러 갔는데 제대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영업 사원과 약속을 잡으셨냐’는 말을 듣는 건 끔찍하다. 사람들을 배제한다는 메시지다. 우리는 매우 공정하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한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제공하고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게임을 하고 싶었다. 문 앞에서 배제되는 건 충분히 부유하지 않거나 매장에 어울리는 특권층이 아니라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이커머스도 열지 않았다.
“이커머스에선 클릭 하나로 제품을 받은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14일 후에 반송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불만을 제기한다. 만약 누군가 무엇을 원한다면, 노력해야만 한다. 매장을 방문해야만 한다. 이는 차별이 아니다. 유통 방식에 대한 선택일 뿐이다.”
닉 하이예크 스와치 그룹 CEO의 이러한 파괴적 혁신은 그룹 매출에도 날개를 달아줬다. 스위스시계산업 협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그룹 전체 매출은 불변 환율 기준, 전년 대비 12.6%(또는 현재 환율 기준 5.2%) 증가한 78억8800만 스위스프랑(약 12조1600억원)을 기록했다. 문스와치의 성공에 힘입어 스와치는 60%이상의 기록적인 성장을 보였다.
◇ 나는 인쇄물의 힘을 믿는다.
-지면 티저 광고도 화제였다. 럭셔리 업계에도 디지털 우선주의가 팽배한 데 의외였고, 신선했다.
“나는 인쇄물을 믿는다. 제대로만 한다면 전통적인 인쇄물도 상당한 효과를 지닐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스와치는 소비자와 직접 대화하는 브랜드다. 모든 이의 언어로, 감성적인 언어로, 보편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카테고리-인쇄물, 소셜미디어, 매장-등 전체를 아울러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들이 잘 맞물려 결국 성공했다.”
-조선일보를 포함해 전 세계 일부 매체(호딩키에 따르면 41개 매체라고 했다)를 선택했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기자들의 자질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 닛케이, 조선일보 등 좀 더 전통적이지만 양질의 신문을 선택해서 온라인 소셜미디어와 대조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부분의 기사는 지적이고, 두뇌 중심적이며, 숫자와 분석, 더 많은 배경 지식을 담고 있다. 우리가 내놓는 상품은 감성적이고 색다르다. 이것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로고 하나 없이 광활한 지면에 작은 글자, 혹은 스누피 발자국이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듯 디자인되기도 했다.
“로고 없이는 광고를 실을 수 없다고 해서 일부 신문사와 싸우기도 했다.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모두 받아들였다. 소비자가 로고 없이도 이 지면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다면? 이는 강렬한 브랜드의 힘을 말해준다. 예를 들어 한 일본의 방송국은 뉴스를 통해 신문에 나온 발자국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 비싼 지면에 로고 하나 없이 광고를 한다면 보통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 방송 뉴스의 결론은 로고가 없으니 스와치가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왜 스와치라고 생각했을까?”
-그래도 신문을 택한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신문을 사면 최소 24시간이 주어진다(24시간 동안 하나의 신문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것). 인터넷에선 5분 뒤에 모든 내용이 바뀌곤 한다. 한 페이지를 보다가 다 읽지 못해서 다시 들어가 보면 그 페이지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종류의 리듬도 필요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숨을 쉬어야 한다.”
◇파괴적 혁신, 내부의 생각까지도 바꿔야 한다.
스와치 그룹에 합류하기 전에 영화감독으로 일하며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닉 하이예크 CEO의 사무실엔 각종 미술품이 배치돼 있었다. 무엇보다 회사 직원들 얼굴을 모자이크처럼 액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직원들 사진이 건물 입구나 사무실 벽에 걸린 건 본 적 있지만, 사장님 방에 걸린 직원들 사진이라니! 애사심을 넘어 ‘애직원심’이라 표현해야 할까. 수천 명의 직원들 얼굴이 모인 그 사진은 마치 시계가 튀어나오는 듯 디자인됐다. 시계와 직원들에 대한 닉 하이예크 CEO의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극비리에 이뤄졌다고 들었다.
“제품을 만드는 것부터 배포, 유통에 이어 광고 캠페인까지 모두 우리 손으로 했다. 소수의 팀원(small team)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조합했다. 예를 들어 스누피 에디션(바이오세라믹 문스와치 미션 투더 문페이즈-풀문 블랙·화이트 모델)을 보고 흑·백의 촛불 두 개가 꽂힌 케이크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다. 나는 가끔 스토리보드에 스누피 에디션에 대해 디자인한 뒤 그걸 미국 스누피 회사에 보내, 그들이 우리를 위해 애니메이션화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노트를 보여줬다. 광고 촬영장에서 볼 수 있는 스토리보드였다. 그는 일일이 스케치해서 마치 네컷 만화처럼 세로로 스토리보드를 작성하며 다양한 의견을 적어놓았다. 그는 “새로운 또 재밌는 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스토리보드북 뒤쪽 페이지를 슬쩍 보여줬다. 정말 살짝 보여줘서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흘린체의 그림과 빼곡한 글자를 보면 무언가 새로 개발 중인 건 확실했다.
-오메가 회장이 처음엔 그 협업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기사를 봤다.
“우리가 만든 시계를 보여줬더니, 그는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브랜드에 해가 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스와치와 오메가가 같은 회사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그들 눈에는 마치 ‘가짜 시계’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우리는 예를 들어 스피드마스터 제품을 고객들이 수리를 맡겼을 때, 고객 서비스 시계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오메가 회장도 조금 침착해지는 모습이었다. 오메가 직원들도 바이오세라믹 문스와치를 통해 젊은 고객들과 소통할 엄청난 기회라는 걸 점차 깨달았다. 실제로 문스와치를 보면서 오메가에 흥미를 얻게 됐다는 고객들도 상당했다. 오메가 문워치의 탄생 기원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까지도 이제 문스와치를 통해 문워치의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블랑팡도 마찬가지다. 블랑팡에 대해 모르던 이들도, 스와치 협업 제품을 통해 블랑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스와치 그룹은 지난해 재무 보고에서 “문스와치 열풍의 여파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컬렉션 전체, 예를 들어 문워치 모델도 크게 증가한 관심으로 이익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브레게와 오메가 같은 그룹 내 하이엔드 제품끼리 협업할 수도 있는가.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룹 외부 회사인) 롤렉스와 오메가의 콜라보레이션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롤렉스가 정말 높은 품질과 혁신적인 무브먼트를 원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오메가는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다.(웃음) 롤렉스가 원할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니, 언젠가는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꿈이 이루어지는 그 모든 순간에 함께하고 싶다.
-오메가의 오랜 앰버서더인 신디 크로포드와 인터뷰를 한 적 있는데, 그녀의 첫 번째 시계는 스와치 젤리 시계라고 했다. 그 이후부터 시계에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오메가의 앰버서더까지 하게 됐다고 했다. 당신의 첫 번째 시계는 무엇이었는가.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문워치)였다. 메탈 밴드가 달린 스피드마스터로 기억한다.”
-왜 스피드마스터였나.
“전 세계인이 그랬듯, 나도 어릴 때 달착륙 모습을 흑백 TV를 통해 봤다. 누나, 아버지, 어머니 가족 모두가 함께 그 장면을 숨죽여 지켜봤는데, 그 감정은 대단했다. 달착륙을 함께 한-감성적이며 역사 속 한 위대한 한 장면을 장식했고, 또 즐거운 행복감이 넘치는 그 순간-모든 꿈이 이뤄지는 순간을 담은-스피드마스터를 정말 갖고 싶었다. 이후 훨씬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스와치가 나왔고, 스와치는 세컨드워치라는 이름대로 사람들이 시계를 바꿔 차는 습관을 들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부터 스피드마스터에서 스와치로, 스와치에서 다른 브랜드로 바꾸기도 했다.”
-습관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렇다. 하지만 감성적이면서도, 즐겁고, 도발적인 접근을 가진 스와치 한 번 시계를 착용하기 시작하면 평소 습관까지 바꾸주며 새로운 기회를 열어 놓게 된다. 즉, 계속 착용하고, 다른 제품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감성적이든 기능적이든 어떤 요인에서 관심을 두든 말이다.”
그는 과거 애플 워치가 시계 산업에 위협이 되고 타격을 줄 것이란 전망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애플 워치든 무엇이 됐든, 시계를 착용하는 습관을 지속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애플 워치보다 더욱 강력한 건 ‘습관’이라는 설명이다.
-아버지는 스위스 시계 산업의 구세주라고 불렸다. 다음 세대에 어떤 수식어나 어떤 별명으로 불리고 싶은가.
“닉으로 불리고 싶다. 그게 내 이름이니까. 난 내 일을 즐기고 싶다. 그게 전부다.”
☞스와치 그룹
1983년 설립된 스위스 대표 시계 제조 회사 그룹. 1970년대 쿼츠 파동(배터리로 구동되는 쿼츠 시계의 등장으로 전통 기계식을 고수한 스위스 시계 브랜드가 연달아 도산한 사건)을 계기로 스위스 시계 업계가 부침을 겪자 레바논 출신 사업가 니콜라스 G. 하이예크(1928~2010)가 적극적인 인수 합병을 통해 업계를 재건했다. 현재 하이엔드 브랜드인 브레게, 해리 윈스턴, 블랑팡, 오메가, 글라슈테, 자케 드로를 비롯해 론진, 라도, 미도, 해밀턴, 티쏘, 스와치 등 현재 17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시계 외에 컴퓨터·전기차 부품 등에 사용되는 마이크로칩 등도 생산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매출 78억8000만 스위스프랑(약 12조 1750억원)
◆닉 하이예크 스와치 그룹 CEO
1954년 생. 니콜라스 G. 하이예크 창업자 맏아들. 스위스와 파리에서 공부한 뒤 영화 감독으로 먼저 데뷔했다. 배우 피터 폰다와 찍은 패밀리 익스프레스(1992)가 대표작. 이후 아버지의 권유에 1994년부터 그룹에 합류했으며, 2003년 그룹 CEO자리에 올랐다. 1996년 백남준(1932~2006) 작가와 스와치 시계의 협업을 주도하며 스와치와 아티스트 협업 시리즈를 주도한 바 있다.
◆문스와치 발표 이후 스와치 시계 매출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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