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뜻이 곧 민주주의 아니다…정치는 왜 더 나빠지고 있나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2024. 6. 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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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통치’ 말고도 ‘토론·숙고·다양성·존중’ 보장돼야 민주주의

(시사저널=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당원의 권리가 신장되는 것은 정당 민주주의 차원에서 볼 때 바람직한 일이다. 정당 민주주의는 정당 체제의 민주주의, 정당의 민주주의, 당원의 민주주의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당원 민주주의라는 취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정당 체제의 민주주의는 한 국가에서 정당들의 분포와 구성, 정당들 간 관계가 얼마나 민주적이냐 하는 차원이다. 여기서는 정당들이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을 골고루 잘 대표할 수 있도록 분포되어 있는지, 그들 간 경쟁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이뤄지는지가 쟁점이 된다. 예를 들어, 군사독재 시절처럼 정당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든지, 특정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 사실상 만들어질 수 없다든지, 혹은 정부가 여당을 비호하고 부정선거가 공공연히 일어난다면, 정당 체제의 민주주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월2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당원주권시대 더불어민주당 부산·울산·경남 컨퍼런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원민주주의는 민주주의에 항상 도움이 될까

정당의 민주주의는 개별 정당의 운영에 대한 문제다. 당의 지도부가 민주적으로 선출되느냐, 그 지도부가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느냐, 대통령·국회의원·지방선거 출마자들에 대한 공천은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느냐 등이 핵심적인 쟁점이다. 과거 민주화 이전에는 당의 대표를 총재라고 불렀는데, 여당에서는 대통령이 곧 총재였다. 총재는 당의 인사권, 재정권을 쥐고 당직 인사와 공천, 선거자금 배분까지 모든 것을 독점했다. 정당의 민주화는 민주화의 산물이었는데, 여기서 생겨난 '당정 분리' 원칙은 나중에 정당법에도 분명히 명시되기에 이른다. 이 외에 당의 근간을 이루는 시도당, 대의원, 중앙위원회 등 중요 조직들과 당 지도부, 당원들 간 관계가 견제와 균형, 소통 측면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당원 민주주의는 정당의 민주주의 중 하나의 요소에 해당한다.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에서 당원들의 권리 보장이 잘되어 있는지, 또 그것이 제대로 실천되는지가 주요한 평가 대상이 된다. 여기서는 당원들이 당 지도부와 공직 후보자들을 선출하는 데 얼마나 참여하는지, 당원들이 당의 의사결정에 투표 등의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 뿐만 아니라, 당원들 간 소통 방식은 얼마나 민주적인지, 당면한 정치적·정책적 사안에 대한 당원들 간 토론이 잘 이루어지는지도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권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무도 필요하다. 이 의무에는 일정 기간 당비를 냈다는 것만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은 최소한의 의무일 것이고, 정당 활동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는 물론, 당의 규범과 결정을 잘 존중하고 따르는지, 당의 선출직 공직자 및 주요 간부와 다른 당원들을 잘 존중하는지도 포함된다. 이런 사항들이 모두 폭넓게 잘 지켜지고 있다면, 그 정당에서는 당원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원 민주주의는 정당 민주주의의 한 부분을 이룬다. 그리고 정당 민주주의는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 발전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는 또한 각 민주주의 간 균형과 조화도 중요하다. 당원 민주주의가 잘 발전하더라도 그것이 정당 민주주의와는 별 관계가 없거나 되레 정당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개별 정당에서 당원들의 권리와 의무가 잘 지켜지는 것이 정당 체제 전체의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정당에서 당원들이 다수의 뜻으로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일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굳이 나치즘이나 파시즘의 예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현대 정치에서 종종 보게 되는 일이다. 당원들이 민주적으로 별로 민주적이지 않은 후보를 당의 지도부나 공직 후보자로 선출하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한 정당의 당원들이 자신들 주장이 절대적으로 선이라고 믿은 나머지, 다른 정당과 그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대화나 타협을 부정하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하는 일은 더욱 자주 벌어진다. 애당심이 지나쳐 당파성을 넘어 다른 국민들에게 적대감을 갖게 되는 일은 우리가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주요 선거에서 맞닥뜨렸던 사실이다.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3김 정치가 그랬고, 이후에는 주요한 양대 정당의 지지자와 당원들이 서로를 미워하기를 반복했다. 심지어 진보정당 당원들조차 당내의 다른 정파나 다른 정당의 당원들을 비난하고 무시하곤 했다.

다수가 하는 민주주의도 얼마든지 오류 가능

당심과 민심의 괴리는 최근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포퓰리즘과 팬덤정치의 영향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국민 다수에게는 높은 지지를 받는 정치인들이 자기 정당에서는 당원들에게 비난을 받고 당내 선거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기 일쑤다. 말 그대로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당원의 권리가 신장되고, 당원 민주주의는 확대되고 있는데 그 결과, 정치는 더욱 나빠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당원 민주주의가 강조되는 이유는 정당들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년 전에는 한국에서 당원 민주주의라는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의 정당은 1인 보스나 소수의 정치 세력이 말 그대로 지지자들을 일방적으로 동원하고 조직해 만들어낸 기구였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정당도 민주화의 길을 걸으면서 당비를 내는 당원들이 생겨났고, 그들에게 다양한 권리를 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지금은 당비를 내고 당원권을 행사하는 당원만 300만 명을 넘는다.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말도 자연스럽다. 당 지도부와 공직 선출자들은 당원의 선택을 받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다수 당원의 의견은 절대선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민주주의의 함정이 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오류 가능성(fallibility)에 있다. 인간은 오류를 저지르고 그 오류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인간이 하는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개별 인간도 오류를 저지르지만, 다수가 하는 민주주의에서도 얼마든지 오류가 발생한다.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나은 이유는 더 나은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 아니라, 틀린 결론을 수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민주주의 원칙은 당원 민주주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다수의 당원이 압도적으로 동의해 결정한 사안이라도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는 다수의 통치 말고도 표현의 자유, 토론과 숙고, 다양성 보장, 다른 시민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당원들의 민주적 표결 절차가 아무리 공정하고 투명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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