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사당화’ 민주당 당원권 강화로 완성…대선 가도 장애물 다 제거

박나영 기자 2024. 6. 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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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호위무사’ 자처하는 개딸 요구에 당헌·당규 원칙 없이 변경
李, ‘절대적 권력’에 독주…대선 잇따라 패배한 이회창 전철 떠올리게 해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4·10 총선 압승 후 불과 열흘 만에 더불어민주당에서 심각한 탈당 사태가 벌어졌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면서 2만 명 넘게 '탈당 러시'가 이어진 것이다. 강성 당원 사이에서 지지가 높았던 추 의원이 의원들만 투표하는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데 따른 당원들의 분노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떠날 결심을 한 오랜 동지들께 보내는 편지'를 올려 황급히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는 당 운영과 당내 선거, 공천,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당원의 역할과 책임을 확대·강화하는 방안을 약속했다. 그리고 실제 그 약속은 빠른 속도로 하나씩 현실화하고 있다. 

이 대표를 강하게 지지하는 열성 지지층을 일컫는 '개딸(개혁의 딸)'이 이제는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 대표를 움직이게 하는 양상이다. '당심'을 거스른 추 의원의 패배를 용납할 수 없었던 강성 지지층은 당내 선거는 물론 주요 정책 결정에까지 깊숙하게 개입하겠다고 나섰다. 민주당의 원로그룹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추 의원의 의장 경선 패배는 당심과 민심 사이 괴리를 확인하고 회복하라는 결정적 신호였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대표는 오히려 그 괴리를 심화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재명이 움직이던 팬덤, 이젠 이재명을 움직여

"탈당자 총수가 2만 명을 넘어서는 것도 문제지만, 탈당자 중에는 민주당과 함께 수십 년 풍파를 견뎌오신 백전노장들이 많아 당혹스럽다." 이 대표가 5월23일 페이스북을 통해 당원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당혹감과 동시에 긴박감이 묻어난다. 이는 집단 탈당과 반발에 이어 당 지지율까지 하락하는 상황에 당원들의 마음을 되돌릴 조처가 시급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곧이어 '당심'과의 신뢰관계 회복이라는 명분하에 당원권 강화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 대표의 편지가 공개된 지 엿새 만인 5월29일 민주당 당헌·당규 개정 태스크포스(TF·단장 장경태 최고위원)는 당 최고위원회에 국회의장 후보, 원내대표 경선에 권리당원 투표 20%를 반영하는 내용을 담은 당헌·당규 개정 시안을 보고했다. 기존에는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선거에 의원들만 투표권이 있었으나 '당심'도 20% 반영하기로 한 것이다. 

시안에는 당의 시도당 위원장을 선출할 때 현재 '60대 1' 수준인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비중을 '20대 1' 미만으로 조정해 권리당원의 표값 비중을 높이는 안도 담겼다. 사무총장 산하에 '당원주권국'(가칭)을 신설해 당원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정했다. '전국대의원대회'는 '전국당원대회로' 명칭을 바꾼다. 이 대표가 내세운 '당원 중심 대중정당'이라는 목표에 한층 더 가까워진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장 경선 결과로 인한 집단 탈당이 있은 지 불과 2주 만에 나온 '당원권 강화 방안'을 두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의원은 현재 민주당 내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당원권 강화 움직임과 관련해 "지금은 모두 합심해서 윤석열 정부의 일방독주를 멈춰 세우는 게 우선인데, 자칫 (당원권 강화 시점과 내용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내적 갈등으로 비춰질까 우려하는 마음이 대부분의 의원들에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생을 위해 단일대오가 필요한 상황에 당원권 강화를 위한 단일대오 형태를 갖추는 것에 대한 불편한 기색이 읽힌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정성호, 우원식 의원과 추미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하남갑 당선자 등 참석자들이 4월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총선 평가 및 조직 전망 논의 간담회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모두가 이재명의 호위무사"…연임 꽃가마 태우나

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당원 민주주의의 당원이 누구인지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해야 한다"면서 "문자 그대로 순수한 당원과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인 당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원이 당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맹목적인 다수가 과다 반영될 경우 진정한 의미에서의 당원 권리가 무시되거나 영향력이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지금까지 민주당이 보인 행보는 진정한 의미에서 당원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당화 논란을 더 확대시킬 뿐이며 대선 전략에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선은 '기승전 중도'가 핵심이다. 중도층으로의 확장성 여부에 승패가 달렸는데 강성 당원 의견을 더 많이 들어 '축소 지향적'으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31명의 당선자를 배출해 민주당 내 최대 의원 모임으로 부상한 '더민주전국혁신회의'(혁신회의)는 '당원권 강화' 흐름에 힘을 싣고 있다. 6월2일 열린 '2기 출범식 및 전국대회'에는 1000여 명의 당원이 참석했고, 박찬대 원내대표와 정청래·장경태 최고위원 등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당초 강성 친명 원외 인사들이 주축이었던 혁신회의는 지난해 6월 출범한 이후 각종 현안마다 이 대표의 의견을 뒷받침하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최근 당내에서 이 대표의 연임론이 제기되는 시점과 맞물려 혁신회의가 세력을 넓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쏠린다. 

당 안팎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이 대표의 대권 가도를 넓히기 위해 '사당화'의 가속페달을 밟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눈초리도 많다. 민주당은 '당대표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경우 대선 1년 전 대표직을 사임해야 한다'는 당헌도 수정하기로 했다. 오는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가 당대표를 연임하면 임기가 2026년 8월까지다. 현행 당헌으로는 2026년 3월까지 당대표직을 사퇴해야 2027년 3월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2026년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지방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당대표를 새로 선출하거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야 한다. 이를 두고 이 대표의 당대표 연임에 이은 대선 출마를 위해 당헌까지 미리 손보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 내에서는 '여의도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4년 내내 당을 주도하다가 다음 대선을 치른다면 과거 제왕적 총재로 군림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길을 걷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던 이 전 총재는 김영삼 정부 말기의 IMF 구제금융 사태에 대한 한나라당 책임론이 부각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원내 과반 의석을 보유한 제1당인 점을 이용해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햇볕정책과 김종필 총리 임명안 및 각종 정책들에 대해 반대로 일관했다.

5월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찬대 원내대표의 발언을 이재명 대표가 경청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중도층 확장 아니라 강성 지지층에 포위되는 것은 문제"

이후 여론이 점점 악화되면서 한나라당은 199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영남과 강원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참패했다. 30여 년 만에 야당의 위치가 된 한나라당에서 이 전 총재는 단순한 대선후보 경험자를 넘어 절대적 권력을 가진 총재로 부상했다. 그는 민주당 내에서도 무명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1997년 대선 때부터 실질적인 한나라당의 지도자였고 다음 대선후보로 이미 내정된 상태였지만 결국 16대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패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정치학)는 "과거 제왕적 총재 체제 시절에도 당내 다른 계파는 항상 존재했지만 지금은 당내 비주류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내 다른 목소리가 없다"며 "과거 소수 강성 당료파들이 비주류에 대해 린치를 가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이재명의 호위무사"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총선에서 민주당에 200석을 주지 않은 이유가 있다. 민심은 탄핵하라는 것도 아니고 개헌하라는 것도 아닌 것이다. 현 정부의 독선과 고집불통을 견제해 민생경제를 앞세우라는 것이지 개딸을 앞세우라는 것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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