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바이든, 노트에 의존해 대화"…직무 수행 '빨간 불'?
1942년생으로 올해 81살인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인지력을 놓고 또 한 번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기밀문서 유출 의혹을 수사한 로버트 허 전 특검이 지난 2월, 바이든을 "측은하고 선의를 가졌지만, 기억력이 나쁜 노인"이라고 보고서에 적은 게 알려지면서 정쟁으로 번진 지 넉 달 만입니다. 당시 허 특검은 '처벌 불가' 결론을 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기억력 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WSJ "바이든, 비공개석상 인지력 저하 뚜렷"
이번에 인지력 문제를 제기한 건 언론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 참석했던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 인사 등 45명 이상을 수개월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근거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WSJ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 통과 설득하기 위해 마이크 존슨 의장 등 의회 인사들과 만났을 때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당시 참석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너무 맥없이 희미하게 이야기해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바이든이 핵심 내용을 적은 노트에 의존해 대화를 이어갔고 중간중간 제법 긴 시간 동안 말을 멈췄다고 전했습니다. 가끔은 듣고 있는지 의문일 정도로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는가 하면 질문을 받고 답변을 참모에게 맡겼다고도 했습니다. 신체적 능력 저하도 언급됐습니다. 당시 회의실에서 여야 의원 20여 명과 만났는데 바이든이 이들과 인사하면서 너무 천천히 움직여 회의 시작이 10분가량 지연됐다고 말했습니다.
웅얼거리던 말투…3월 의회연설 기점 달라져
바이든 대통령의 인지력과 건강 저하 관련 증언은 주로 야당인 공화당 측 인사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WSJ도 이런 점을 부연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백악관 측은 당파성과 정치적 동기가 깔린 주장이라며 하나하나 반박했습니다. 또 바이든이 명민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앤드루 베이츠 백악관 부대변인은 의회 공화당원들과 외국 지도자들, 당파성이 없는 국가안보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입법 분야에서 깊은 성취의 기록을 갖고 있는, 식견과 능력을 갖춘 지도자임을 그들의 입으로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인지력과 건강 저하 발언이 단순히 대선을 앞둔 야당 인사들의 정치 공세인지, (조금 과장이 있더라도) 사실에 부합한 것인지 외부에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고령인 데다 공개행사에서 말실수를 한 적도 있어 단순히 흠집내기라고 치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실제로 지난달 유대계 미국인 관련 행사가 백악관에서 열렸을 때 바이든이 가자지구에 억류됐던 미국인 인질이 게스트 중에 포함됐다고 말했다가 정정했고, 그 하루 전 디트로이트 선거 유세에서는 코로나19가 확산했을 때 자신이 부통령이었다고 잘못 말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워싱턴 특파원들 사이에서도 바이든의 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많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도 특파원 부임 직후인 2022년 여름, 바이든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부통령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전만 못하다고 했지만) 당시 물리적으로 그의 말을 알아듣기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음성을 활자화해주는 소프트웨어조차 그의 웅얼거리는 말투에 오류를 낼 만큼 알아듣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던 그의 목소리는 '불 같았다' 평가를 받은 3월 의회연설을 기점으로 달라졌습니다. 하원 본회의장에 들어서며 인사하는 몸놀림까지 활기차고 힘이 넘쳤던 건 아니지만 연설만은 열정적이었습니다. (인신공격적 의도가 느껴지긴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TV토론에 합의하면서 토론 전 약물 검사를 하자고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입니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으로 재선에 도전하는 만큼 이런 논란은 어찌 보면 피하기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나이가 나이이니 20대 같은 인지력이나 기억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젊음이 다가 아닙니다. 오랜 정치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과 노련함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인지력 저하가 자체가 아니라 그 저하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인지 여부입니다. 오는 28일 예정된 TV 토론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가 될 전망입니다.
(사진=AP, 연합뉴스)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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