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확대가 정말 획기적인 저출생 대책이 되려면?
【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저출생 문제 해결에 다소 과격한 용어들이 많이 쓰인다.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대책', '국가 역량 총동원'이라는 말은 물론이고, 심지어 경상북도는 아예 '저출산과의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저출생 문제는 때려 잡아야 할 범죄도 아니고, 전쟁처럼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총동원'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뭐가 좀 '획기적'이고 '파격적'으로 바뀌긴 바뀌어야 나아질 것 같기도 하다. 뭐가 획기적이고 파격적으로 바뀌어야 사람들이 아이를 낳겠다고 생각을 바꿀까.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저출생 대책 중 하나로 육아휴직 확대가 주로 언급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육아휴직 기간이 결코 짧지 않다. 우리나라 육아휴직 기간은 여성과 남성의 출산휴가, 육아휴직 완전 유급 기간을 합산하면 59.2주다. OECD 38개국 중 5위고, 일본을 제외한 G5국가, 스웨덴보다도 길게 보장한다.
이렇게나 길게 보장해주는데 문제는 생각보다 많이들 못 쓴다. 왜 못 쓸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육아휴직을 했을 때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크다. OECD 국가 평균 육아휴직 소득대체율은 70% 이상인데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 44.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육아휴직 급여는 150만원 상한인데, 150만원을 다 주는 것도 아니고 사후지급금 일부를 공제하고 지급하기 때문에 들어오는 돈은 112만 5000원. 아이를 낳으면 입이 하나 더 늘면 늘었지 줄어드는 것은 아닌데 육아휴직 하면 소득이 반토막이 나버린다(2022년 기준 우리나라 임금근로자 평균 중위소득은 267만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별 간 임금격차가 심각한 우리 나라에서는 부모 둘 중 임금이 더 적은 여성이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로 자리잡았다. 남성 육아휴직자도 늘어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2023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은 14.1%, 여성은 85.9%.
육아휴직 급여를 많이 주면, 육아휴직 사용이, 특히 남성 육아휴직이 늘어날까? 늘어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2년 발간한 '육아휴직 소득대체율의 효과: 남성육아휴직 사용의 조건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자의 비율이 2014년 1.2%p 증가했는데 이 시기는 통상임금의 100%(상한 150만원)로 상향조정한 아빠의 달이 도입된 해다. 상한액이 200만원으로 인상된 2017년 남성육아휴직 사용율은 4.9%p, 250만원으로 인상된 2018년에는 4.4%p의 증가율을 보였다. 아빠의 달은 '같은 자녀에 대해 부모가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 두 번째 사용한 사람(남성)의 육아휴직 3개월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 지급(상한 250만원)'한다는 내용이다.
돈의 문제만도 아니다. 육아휴직을 편하게 다녀올 수 없는 문화적 배경이 우리나라에 있다. 우리에게는 육아휴직과 관련한 으스스한 괴담이 있지 않은가. "육아휴직자는 책상 빠진다" "산간 오지로 전근보낸다" "승진 누락된다" 같은 말들, 사실 괴담이라고는 했지만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일들이다. 실제로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를 다녀와 근무상 불이익을 받은 근로자들이 많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들도 생겨났지만 현장에선 육아휴직을 포기하거나, 아예 퇴사하는 일들도 많았다. 여성의 경우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복직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제 100일 된 아기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출근하는 첫 날, 눈물이 앞을 가린다'로 시작하는 사연들은 아직도 많다.
육아휴직에 획기적이라는 말을 붙이려면 무한정 사용기간을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육아휴직 중 임금근로자의 소득을 어느정도는 보장해줘야 하고, 동료들 눈치 보지 않고, 책상 빠질 걱정 없이 단 석 달이라도 맘 편하게 다녀올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육아휴직이 동료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그에게도 적절한 보상이 뒤따라야 덜 미안한데, 지난 총선에서야 국민의힘이 총선공약으로 육아휴직자 동료에게 수당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서울시에서도 최근 육아휴직자 대체인력으로 우수한 경력단절여성을 인턴십으로 채용하고 그 비용을 지원하는데, 채용을 못했을 경우 육아휴직자의 동료에게 월 30만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인센티브를 준다한들 그게 완벽한 대안이 되겠는가. 월 30만원은 누군가에겐 나의 노력에 비해 터무니없는 돈으로 여겨질 수 있다. 대체인력 채용이 필요함에도 채용하지 않는 구실로도 작용될 수 있다. 우리가 눈치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갈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려면 지긋지긋하게 긴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지 오래인데도 아직도 멕시코보다 137시간 더 많이 일하고, OECD 평균 근로시간인 1601시간보다 314시간 더 오래 일한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 평균 근로시간은 1915시간으로 OECD 가입국 중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 1위다. 이렇게 오래 일해선 결혼도 육아에 용기를 낼 수 없고, 아이를 낳는다 한들 100만원 겨우 넘는 육아휴직 급여로는 입에 풀칠조차 할 수 없다. 임금삭감없는 주4일제가 유자녀 무자녀 할 것 없이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될 때 눈치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쓰고, 육아기간 단축근로제를 쓸 수 있다.
한편 근로시간 단축으로 육아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경기도와 충청남도에서 유자녀 공무원에게 주 1일의 재택근무를 보장하기로 했다. 이 내용은 간혹 '주4일제 근무'라는 타이틀로 보도되기도 했는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주4일 출근과 주1일의 재택근무이므로 이 형태는 주4일 근무가 아닌 주5일제 근무다. 재택근무를 한다는 건 일을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한다는 뜻이다. 아이는 그 시간에 아프지 않다면 어린이집에 가고, 부모는 집에서 일한다. 그렇다면 재택근무가 어떤 의미가 있나. 원래대로라면 평소 퇴근해 저녁 7~8시에 집에 돌아왔다면, 그리고 그 시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왔다면 재택근무하는 날만큼은 평소보다 빨리 아이를 하원시킬 수 있고, 놀이터에 데려가 그네를 밀어줄 수 있고,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먹을 수 있고, 식사 후에 함께 동네를 산책할 수 있고, 잠들기 전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는 의미다.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아껴서 부모가 아이를 직접 입히고, 씻기고, 먹이는 육아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보장하는 것, 재택근무는 그런 의미다. 재택근무는 일이 주는 성취감과 육아의 기쁨과 효능감,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기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제도다. 일을 안한다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한다는 것뿐인데, 이 제도에 굳이 박하게 굴 필요 있나. 재택근무 확대가 근로시간 단축, 주4일제 보장과 함께 이뤄지길 바란다.
조금 더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해 보자면,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겠다는 여성들에 대한 출산과 양육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지난 1년간 우리나라 저출생 현상을 깊게 취재한 영국의 BBC는 출산 의지가 강한 레즈비언 커플을 만나 인터뷰 한 뒤 "이들은 한국의 불안정한 인구 상황을 고려할 때 엄마가 되고 싶은 일부 여성들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한다(The friends point out the irony, given Korea's precarious demographic situation, that some women who want to be mothers are not allowed to be)"고 언급한 바 있다. 아이와 부모로 구성된 이른바 '완전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제도로 수용해야 낳겠다는 사람들도 마음 편히 낳을 수 있다. 출산율이 1.8까지 올라간 프랑스의 혼외출산 비율은 56.7%, 스웨덴은 54.6%, 네덜란드 48.7% 등 OECD 가입국 혼외출산 비율은 평균 40%지만 우리나라에서 집계되는 혼외 출산 비율은 2.2%에 불과하다. 아이 하나가 귀한데 낳겠다는데, 대한민국이 곧 사라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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