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에 내몰려 상처입은… 거부와 빈민이 많은 ‘早老의 도시’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옛 이름은 ‘좋은 항구’ 봄베이
자긍심 높이려 뭄바이로 개명
포르투갈·영국 식민지 거치며
인도양 무역 거점으로 급성장
키플링 “도시들의 어머니” 찬양
캐서린 부 “우린 똥 같은 존재”
극단의 불평등·빈부차 속에서
언젠가 다가올 희망 품고 살아
“나는 기쁨과 슬픔을 감싸안은 뭄바이처럼 커 갔다. 제대로 계획할 틈도 없이 그저 커져만 갔다. 경험과 실수와 동년배들로부터 뭔가 배우기 위해 잠시 멈춰 설 틈도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라곤 없었다. 그러니 내가 혼란 그 자체 말고 또 무엇이 될 수 있었겠는가.”
‘무어의 마지막 한숨’에서 살만 루슈디는 말한다. 이 작품은 무어 조호비라는 한 인물의 삶을 통해 근대 이후 인도 역사를 압축해 보여준다. 무어는 유능한 사업가인 아버지 아브라함 조호비와 뛰어난 예술가인 어머니 오로라 다가마 사이에서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무어의 외가는 포르투갈 정복자 바스쿠 다가마에 뿌리를 둔 무역상 집안으로, 대대로 향신료 무역을 통해 커다란 부를 축적했다. 무어의 친가 조호비는 ‘불운한 보압딜’이란 뜻이다. 이는 한때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했던 이슬람 제국의 술탄 보압딜의 후예임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이란 아버지 이름이 보여주듯, 그의 집안엔 유대인 피도 짙게 섞여 있다.
무어는 가톨릭에, 이슬람에, 유대교까지 뒤섞인 혼종적 인간이다. 루슈디는 잡종 인간 무어가 인도 현대사의 격류 속에서 몰락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그를 육체적, 정신적 기형으로 몰아간 것은 남보다 두 배 빨리 늙는 조로증이다. “난 내가 살아야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시간 속을 달려왔다.” 무어의 조로는 제국주의가 닦달하는 가속적 근대화에 내몰린 뭄바이, 더 나아가 인도의 처지를 암시한다. 스스로 삶의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채 떠밀리는 삶, 잠시 멈추어 서서 경험과 실수로부터 배울 틈도 없는 삶, 제대로 앞날을 계획하거나 생각할 여지도 없는 삶은 결국 거대한 혼란을 부를 뿐이다.
이렇듯 몰아치는 변화에 자아가 찢기고 부서지면서 고통받는 걸 루슈디는 ‘가혹한 단절’이라고 부른다. “인생은 무방비 상태인 우리 머리통을 나무꾼의 도끼처럼 내리찍는 가혹한 단절의 연속이 아니겠소?” 찢긴 자아, 부서진 마음으로는 누구도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없다. 무어의 도시 뭄바이도 제국주의 식민의 유산이 남긴 거대한 단층선, 즉 극단적 불평등, 불균형, 차별 탓에 고통받는 중이다.
인도 서부 해안에 자리 잡은 뭄바이는 인구 약 2300만의 메가시티로, 인도 최대의 무역항이자 금융 도시이다. 옛 이름은 봄베이(Bombay), 포르투갈어로 ‘좋은 항구’라는 뜻이다. 1995년 식민 유산을 청산하고 민족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인도 신화에 나오는 여신 이름을 따서 뭄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5세기까지 뭄바이는 해안가에 옹기종기 모인 일곱 섬에 자리한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1534년 뭄바이 지역의 지배자였던 구자라트 왕국은 무굴제국의 압박을 벗어나려고 포르투갈과 조약을 맺고 이 섬들을 넘겨주었다. 포르투갈은 이곳에 성채를 쌓고 항구를 건설해 인도양 무역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았다.
1661년 뭄바이는 포르투갈 공주의 지참금으로 영국으로 넘어갔다. 영국은 다시 이를 동인도회사에 임대했다. 1687년 영국은 뭄바이를 중심지 삼아 서서히 주변 지역을 정복해 갔다. 구자라트 지역 상인 집단으로,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인 파르시(Parsi)는 영국에 협력해 무굴제국과 중계무역에 종사하면서 뭄바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타타그룹이 세운 타지마할 호텔, 조장(鳥葬) 풍습을 위한 침묵의 탑 등은 이들의 유산이다.
18세기 중반, 영국은 제방 공사를 통해 뭄바이 일곱 섬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저지대 침수를 방지한 후, 1845년까지 바다를 메워서 뭄바이 섬을 하나의 넓은 대지로 만들었다. 1818년 영국은 주변 마라타족을 정복하여 인도 전역에서 확고한 패권을 얻었다. 이때부터 뭄바이는 영국 제국주의 지배의 중심이 되었다. 인도는 셰익스피어에 견줄 만한 영국인의 자부가 되었다. 대규모 반영 폭동인 세포이 반란이 진압된 직후, 뭄바이에서 태어난 러디어드 키플링은 그 찬란함을 노래했다. “도시들의 어머니, 내가 그 문에서 태어났기에, 야자수와 바다 사이, 세계 끝으로 가는 증기선이 기다리는 곳.”
1869년 수에즈운하가 개통되면서 뭄바이는 영국 식민 지배의 인도양 거점으로 자리 잡고, 대규모 면직 공장이 들어서면서 폭풍 성장을 했다. 무역과 산업의 발달에 따른 넘치는 부와 기회를 좇아 사람들이 몰려들자, 도시가 걷잡을 수 없이 팽창했다. 1891년엔 인구가 82만 명에 이르렀다. 뭄바이가 빅토리아풍의 거대한 건물들로, 인도나 영국에 가까운 도시란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무렵이다.
환상적인 돔, 높은 첨탑, 뾰족한 아치, 장미 모양 스테인드글라스로 이루어진 빅토리아역(현재 차트라파티시바지역)은 그 시대 유산을 잘 보여준다.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기차가 떠나고 도착할 때 이 역엔 온 세상 사람이 모두 모인 듯했다.” 하루 수십만 명이 희망을 품고 이 역에 내렸다가, 가난과 차별을 못 이기고 절망해서 떠나갔다.
19세기 중반부터 뭄바이는 인도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베다로 돌아가자’란 깃발 아래 종교 개혁 운동을 일으켜 고유문화를 북돋우고 민족의식을 고취했으며, 교육 운동을 전개해 민중을 계몽했다. 벵골과 함께 뭄바이는 스와데시(국산품 사용)와 보이콧(영국 상품 배척)을 이끌었다. 물레를 든 전사 마하트마 간디가 앞장섰다. “비폭력은 진정으로 용감한 자의 무기이며, 가장 힘 있는 사람이 타고난 것이다. 비폭력을 통하지 않고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간디는 비폭력, 비협조, 불복종을 무기로 저항하는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앞세워 영국을 곤란에 빠뜨렸다.
1947년 독립과 함께 뭄바이는 인도의 경제 수도이자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아름다운 해안가를 따라 즐비한 고층 건물은 아시아에서 억만장자가 가장 많은 이 도시의 눈부신 번영을 보여준다. 그러나 휘황한 금융가 곁엔 아시아 최대의 빈민가로, 약 2.6㎢ 땅에 100만 명이 몰려 사는 다라비가 존재한다. ‘안나와디의 아이들’에서 캐서린 부는 세 해 동안의 취재를 거쳐 이곳의 삶을 충격적으로 그려낸다. “호텔에서 무단 점거촌을 내려다보면 우아한 현대 시설 틈바구니로 웬 마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압둘의 동생 미르치는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주변은 온통 장미꽃밭이죠. 우리는 그사이에 있는 똥 같은 존재고.’”
사람들을 똥 같은 존재로 만든 건 극단적 불평등 탓이다. 아룬다티 로이는 말한다. “인도에선 부유한 100명이 국내총생산 4분의 1에 맞먹는 자산을 소유한 반면, 국민 80%는 하루 50센트도 안 되는 푼돈으로 삽니다. 농민 25만 명이 죽음의 악순환에 끌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발전이라고 부릅니다.” 정녕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어둡고 복잡한 골목길, 악취 넘치는 공기, 오염된 식수 등 끔찍한 삶의 여건이 그 자체로 절망만은 아니다. 놀랍게도 이곳 사람들은 언젠가 찾아올 밝은 날을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이야 항상 있죠. 우리의 절망에 균형을 맞출 만큼 충분한 희망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끝장이죠.” ‘적절한 균형’에서 로힌턴 미스트리는 밑바닥 삶에서 일어서려 분투하는 네 청년을 통해 더 나은 삶을 향한 씨앗을 건넨다. 언어로 이루어진 희망이 있는 한, 현실의 절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출판평론가
■ 용어설명 - 세포이 반란
1857년 영국 동인도회사에 속한 인도인 용병(세포이)이 일으킨 반란으로, 1차 인도 독립 전쟁으로도 불린다. 반란의 계기는 소총 탄창에 대한 불만이었다.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에게 금기인 돼지와 소의 지방으로 이를 기름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배후엔 무차별 영토 병합, 가혹한 토지세 등 동인도회사의 강압적 통치가 있었다. 반란은 잔혹한 학살 끝에 2년 만에 진압됐다. 이를 계기로 영국 왕실의 직접 통치가 인도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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