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은 스스로 판단하는 것… ‘구루’ 가르침 맹신마라[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4. 6. 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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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 대해 조언하는 구루에게서 도망쳐라, 너무 늦기 전에
토마시 비트코프스키 지음│남길영 옮김│바다출판사
스트레스를 피해야 좋은 삶?
마치 절대 진실처럼 재생산
문화에 녹아 있는 이념이자
과학으로 포장된 아집일 뿐
우리 사회 엉터리 구루 많아
자기계발이란 늪서 벗어나야
게티이미지뱅크

당신의 구루(Guru)는 누구인가? 성공한 기업의 CEO부터 위로의 말을 전하는 심리학자, 하물며 SNS의 인플루언서들까지 우리 삶에 동기를 부여해 주는 구루, 즉 정신적 스승들은 너무나 많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이들이 선별적으로 전달해 주는 삶의 지혜는 우리 인생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만 같고 행복한 삶은 눈앞에 다가온 듯하다. 현대사회에서 구루들에 대한 애정은 특히 서점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매주 새롭게 출간되고 베스트셀러 상단에 오르는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그 예다. 그럼에도 삶은 변하지 않고 행복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쏟아지는 인생 조언만을 따르는 것이 어딘가 잘못된 것 같지만,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많은 이에겐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폴란드 심리학자이자 과학적 회의론자를 자처하는 토마시 비트코프스키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누구보다 비판적인 사람이다. 많은 이가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고 느낀 것에 그쳤다면 그는 책을 통해 수차례 소셜미디어와 언론에서 말하는 ‘갓생’(부지런하고 생산적인 일상을 통해 성취감을 얻는 인생)이 진실이 아닌 “문화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에 가깝다고 말한다. 구루가 대중에게 하는 설득적인 조언이 사실은 관념적이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구루들이 수많은 과학적, 심리학적 근거를 인용하기 때문이라고 짚어낸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침대 길이에 맞춰 다리를 자르거나 늘이는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빗대어 과학으로 포장된 아집이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여러 주장에 너무나 익숙해진 결과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스트레스’에 대한 통념이다. 이를테면 “스트레스를 피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마치 절대적인 진실처럼 재생산되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일하는 법이나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비법에 대한 수많은 저서와 유튜브 영상이 여기서 탄생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 과학적 설명과 구루들의 규범적 판단이 섞인 결과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발견한 사실은 “스트레스라고 하는 지나치게 과도한 감정은 피하는 것이 더 나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해야 한다고 권장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 아닌 우리 문화에 녹아 있는 이데올로기다. 극한의 감정을 경험하며 전 세계를 항해한 사람의 삶이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며 일상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삶보다 더 나쁘다고 판단하는 과학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자기계발에 녹아 있는 문화적 요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현대의 구루 가운데 짧지만 굵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이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 문화가 장수하는 삶이 더 나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집중력’에 대해서도 우리는 사색이나 휴식,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비해 업무에 전념하고 몰두하는 것이 우월하다고 전제한다. 이 때문에 집중력이 부족한 경우를 해결해야 할 문제나 치료가 필요한 일종의 장애로 바라보기도 한다. 의학적 근거와 심리학적 연구는 모두 이같이 특정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보조하는 학문적 근거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전문 분야인 심리학을 중심으로 이를 설명한다. 학계에는 각각의 구루 혹은 이데올로기의 입맛에 맞는 이론과 연구 결과가 난립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를 많은 학자가 단정적인 명확함보다 모호한 우월함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례로 현재 심리학에는 우리 정신의 기능을 설명하는 45개의 이론 학파가 있고 심리 치료에는 600개가 넘는 서로 다른 양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45개 학파와 600개의 양식을 대표하는 이들은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이론과 양식에 대해 명확한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심리학 분야에서 더 큰 위험은 부정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묻어두는 ‘서랍 효과’에 있다. 1970년대를 시작으로 심리학 영역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심리학자가 데이터를 발표하지 않거나 부정하게 조작한 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과학과 자기계발에 대한 통념을 한 번에 뒤집는 주장을 펼치는 만큼 비트코프스키의 문장은 물론 설명 방식 또한 다소 날이 서 있다. 책의 사회 속 ‘자살’에 대해 다루는 부분에서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죽음을 분명하게 악으로 취급하고 사람들에게 살아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주장은 그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예시다.

정신적으로 소진되고 불안한 사회에서 의지할 곳을 찾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심리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자기계발서를 찾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심는다. “집중력을 키우고 싶다”고 결심하기 이전에 짚어야 할 “나는 왜 집중력을 키우고 싶지?”라는 작은 의문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질문에 붙은 주어다. 자기계발의 늪에서 빠져나왔을 때 우리가 마주할 구루는 단 한 사람, 바로 나 자신이다. 288쪽, 1만75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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