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17.6조 시장서 중국 힘 빠진다…K-배터리 '풀액셀' 밟을 기회

박미리 기자, 최경민 기자 2024. 6. 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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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아메리칸 배터리 드림 (下)
[편집자주] 북미는 전기차 잠재 수요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역으로 손꼽힌다. 여기에 보조금과 관세를 통한 '노 차이나 존'까지 더해졌다. 북미에 5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한 K-배터리는 이곳에서 '캐즘' 돌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노 차이나 존' 아메리카, K-배터리에 열린 기회의 땅
-중국 향해 쌓은 장벽, K-배터리 반사이익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제1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미국이 중국 배터리에 장벽을 두껍게 쌓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K-배터리 입장에서 북미에 만들어지고 있는 '노 차이나 존'이 놓칠 수 없는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 정부로부터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 43종 중 31종에 LG에너지솔루션(17종), 삼성SDI(12종), SK온(10종) 등 국내 배터리 3사 제품이 들어간다. 즉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의 72%가 한국산 배터리를 쓰는 것이다.

2024년 1분기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그래픽=이지혜


IRA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배터리·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한 정책이다. 특히 FEOC(해외우려집단) 지정을 통해 중국산 배터리나 소재를 사용한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규정했다.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여과없이 담았다. 이에 따라 올해 1월1일부터 중국산 배터리 부품은 IRA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국산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보조금 대상에서 배제된다.

관세까지 강화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중국산 전기차에 붙는 기존 25%의 추가 관세율을 100%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배터리 및 그 구성품, 관련 주요 광물에 대한 관세도 높이기로 했다.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는 올해부터, 비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는 2026년부터 관세가 7.5%에서 25%로 오른다. 배터리 부품 관세는 7.5%에서 25%로, 배터리 관련 주요 광물에 대한 관세율은 0%에서 25%로 올라간다. 현재 관세가 0%인 천연 흑연과 영구 자석도 2026년부터 25% 관세가 붙는다.

중국산 배터리 및 소재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보조금은 받지 못하는데, 관세로 인한 제품원가 부담은 커진 상황이다. 자연스레 중국과 경쟁해온 국내 배터리 3사와 일본 파나소닉과 같은 기업들이 북미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IRA 보조금 전기차의 72%가 K-배터리를 쓰고 있는 점은 이같은 구도를 극명히 보여준다. 배터리 3사가 미국에만 50조원 이상 쏟아부어 600GWh(기가와트시) 이상의 생산라인 확보를 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IRA, 관세 강화 등으로 미국 내 중국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에다 중국 배터리와 달리 한국 배터리는 북미 현지 조달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주목받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배터리 3사 공장의 장비 국산화율은 약 90%로 파악되고 있다"며 "장비를 만드는 국내 중소기업들에도 훈풍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미국 자동차 배터리 시장 규모 전망/그래픽=윤선정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북미 시장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프리도니아 그룹에 따르면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1년 71억달러(9조8000억원)에서 연평균 12% 성장해 2026년 128억달러(17조60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명실상부 글로벌 최대 규모여서 중국 기업 입장에서도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CATL의 경우 공장은 미국의 포드·GM이 소유하고, 자신들은 기술제공 명목으로 로열티를 받는 식의 '꼼수'까지 동원하며 진출을 노릴 정도다. BYD와 같은 기업은 '관세 장벽'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1만달러(약 1300만원) 수준의 초저가 전기차 등을 선보이고 있다.

결국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의 '노 차이나 존' 정책에 안주하지 말고 기술력, 가격 경쟁력을 모두 만족하는 제품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에서 중국을 막는 정책이 계속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비싼 전기차를 선호하진 않을 것"이라며 "전고체와 같은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빨리 해서, 한 번 충전하면 1000㎞를 갈 수 있게 만드는 등의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 기업들이 시장에 너무 세게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북미에서 한국 기업들이 제대로 비즈니스를 펼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IRA 폐지한다고? 배터리 공장 위치를 보라"
-트럼프 리스크에 대처하는 자세
(뉴욕 로이터=뉴스1) 박재하 기자 = 2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지방법원에서 열린 '성추문 입막음' 의혹 사건 재판 종료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4.05.29/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뉴욕 로이터=뉴스1) 박재하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고 해서 IRA(인플레이션방지법)를 폐지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배터리 업계에 팽배한 '트럼프 리스크'에 대해 이같은 평가를 내렸다. 유력 대선주자로 다시 한 번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IRA를 폐지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게 선거용 레토릭에 가깝다는 것이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실행한다면, 미국에 공장을 지은 국내 배터리 3사를 향한 수 조원 대의 AMPC(생산세액공제) 등의 혜택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업계는 긴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부회장은 트럼프 행정부 재출범 시 IRA 폐지 가능성에 거리를 두면서 "대미 배터리 투자가 공화당 우세지역에 집중돼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 국내 배터리 3사의 미국 생산라인은 미시간·오하이오·조지아·애리조나 등 스윙스테이트 혹은 공화당 우세 지역인 테네시·인디애나·캔터키 등에 밀집돼 있다.

미국 현지에서 아웃리치 활동을 하고 있는 제현정 한국무역협회(KITA) 워싱턴지부장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을 안 한 4년 동안 상황이 너무 급변했다"며 "공화당 우세주에 전기차 관련 산업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서, IRA를 폐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의회 권한이 강한 미국 정치 특성상 대통령이 모든 정책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측면도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IRA는 미 상·하원에서 투표로 통과된 법안으로, 이를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절차가 필요하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에 대한 우려는 과도하다"고 강조했다. 제 지부장 역시 "의회 의사결정 시스템만 봐도 IRA 폐지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미국에서도 IRA 폐지라는 표현은 현실성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공화당이 민주당의 정책인 IRA에 어떠한 방식이든 수정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의 분위기다. 박 부회장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미국 정부와 의회, 주(州)정부 등을 대상으로 대미사절단 파견 등 민·관 합동 통상협력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제 지부장은 "공화당은 기본적으로 IRA와 같은 보조금을 주는 스타일의 법을 선호하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나, 우리 기업이 진출한 주의 정부 및 의원들과 계속 교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이 미국에 많이 투자했고, 엄청나게 중요한 파트너라는 내용을 계속 주입시켜야 한다"고 힘을 줬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글로벌 트렌드이기 때문에 북미 배터리 시장에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임 연구위원은 "공화당 정부가 출범해도 연비규제가 아예 없어질 수는 없다"며 "배기가스 규제 역시 속도가 늦어진다는 것이지 과거로 돌린다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박 부회장은 "단기적 캐즘(chasm, 일시적 수요정체)으로 성장이 둔화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동차 전동화와 에너지 넷제로 등으로 배터리 산업이 지속 성장할 것"이라며 "(북미와 같은) 미래 시장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는 향후 우리 배터리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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