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하세요?

서울문화사 2024. 6. 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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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섹스하는지 말해주면 어떤 사람인지 알려줄 수 있다는 섹스 칼럼니스트의 깨달음.

섹스를 어디서 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몇 안 된다. 내 집, 네 집, 숙박업소. 이 셋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양한 건 이유다. 죽어도 자기 집에서 해야 하는 여자가 있는 반면, 집에서는 절대 하기 싫어하는 여자도 있다. 어떤 여자는 상대 남자의 집에서만 하기를 원하기도 했다. 완벽한 섹스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집이 최선이라고 하는 남자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게 뭐든 이유가 자세했으나, ‘내가 좋아하는 섹스 장소’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섹스 세계관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았다.

“집 아니면 어디서 해?” 요가 강사 최혜지에게 섹스를 어디서 하냐는 질문은 할 필요가 없었다. “마음 편한 게 최고야. 그게 요가를 배운 이유이기도 하고.” 최혜지에게 최고의 가치는 편안함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섹스도 편안한 게 제일 중요했다. 하지만 최혜지가 집에서의 섹스로 정착하기까지는 나름 과정이 필요했다. “어렸을 땐 5성급 값비싼 호텔에 가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지. 근데 더 불편했어. 비싸 보이는 스탠드 조명이 떨어지면 어쩌나.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새하얀 이불에 묻은 내 체액을 남자가 보고 어떤 생각을 하려나. 그래서 옷은 다 벗었지만 섹스하지 않은 날도 있었어.”

“나는 하얀 조명 아래 있으면 못생겨 보여. 그래서 우리 집에는 내가 제일 예뻐 보이는 노란 조명만 켜져 있어.” 최혜지는 걱정이 많아 보였다. 조명에 대한 말도 그랬고, “창문이 크면 어디서 누군가 볼 것 같아서 무서워. 창문이 하나도 없는 방에서 하는 게 좋아” 같은 말을 들어도 그랬다. 집 밖에서 할 수밖에 없다면? “그런 상황을 안 만들어. 우선 남자를 집에 데려온 후에 결정해. 얘랑 섹스할지 말지. 밖에선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예 안 들어.” 역시 그는 마음이 편해야 뭐든 할 수 있었다. 남자의 허벅지를 만지고, 입을 맞추고, 그 후 옷을 벗으려는 결심도. 낯선 상황에서 느끼는 야릇한 기분은 최혜지에겐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요가 하는 여자에 대한 환상이 있나 봐.” 그리고 요가가 있었다. 최혜지는 요가를 좋아했고, 남자들은 최혜지가 요가를 해서 더 좋아했다. 마치 편안히 명상할 곳을 찾는 사람처럼 집이라는 섹스 스폿을 정해두었지만, 그때부터 그는 뭐든 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만 편하면 뭘 못하겠어. 남자가 원하는 거의 모든 자세를 해줄 수 있어.” 이건 섹스를 대하는 태도이자 최혜지의 특기였다. 그나저나 ‘남자가 원하는 거의 모든 자세’라니, 요가 하는 여자에 대한 환상이 더 커지는 답이었다.

최혜지는 한결같았다. 걱정이 많은 동시에 마음만 편해지면 적극적이었다. 그는 ‘어디서 하냐’는 주제로 얼마나 다양한 대답을 적을 수 있겠냐며 걱정했다. 일단 마음이 편해지자 “나 말고 물어볼 여자 없어? 없으면 소개해줄까?” 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의 뜻을 표하기도 하고, “그래도 집에 온 남자들이랑은 거의 하는 편이야”라며 마음 편히 알려주기도 했고, 그 말 뒤에 나에게 “시간 되면 한 번 놀러 오라”는 농담까지 했다. 말하자면 그는 홈구장에서 특히 타율이 높은 5번 타자 같은 면이 있었다. 반면 나는 수줍어서 그녀의 홈런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농담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전 집에서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섹스의 범위가 넓거든요. 침대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옷장, 책상, 부엌까지. 가리는 공간이 없어요.” 22세 철학 전공 대학생 이조현은 최혜지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집에서 했다가는 모든 물건이 부서질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호텔도 싫어요. 호텔 물건은 다 비싸잖아요. 저는 모텔만 가요. 부서져도 부담 없는 것들이 있는 곳.” 그는 책도 좋아한다. 마광수의 책을 인용하며 여자가 섹스할 때의 심리를 종종 알려주는 식이다.

“저 ‘씹프피(MBTI 중 INFP를 비하하는 말)’ 같아요. 저도 인정해요. 싫은 걸 싫다 말 못 하고, 좋은 걸 좋다고 하지도 못해요. 내가 리드하는 것보다 끌려가는 게 좋아요.” 인간의 개성도 다양하다. 이조현은 부서져도 부담 없는 곳들이 좋다면서도 소극적이었다. 이조현은 회피하는 성향이라 과한 친밀감을 내보이는 남자를 부담스러워했다. 남자가 자신을 집으로 초대하면 거절하지 못하지만, 그 이후로 그 남자의 연락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 가면 사귀어야 될 것 같아요. 나는 섹스만 하고 싶은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녀가 말하는 ‘씹프피’의 정의를 알 듯 모를 듯했다.

“저는 비일상적인 순간이 좋아요. 특히 모텔에 처음 들어갔을 때 갑자기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낀 것 같은, 밖에서 잘만 이야기하다가 방 안으로 들어오면 둘 다 말이 없어지는 순간. 그게 좋아요. 집에는 그런 게 없잖아요” 같은 말을 보면 이조현은 섹스의 찰나를 읽는 젊은 철학자 같았다. 그는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간 바닷가 여관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처음 보는 곳이었어요. 문 앞엔 낡은 방충망이 위태롭게 설치되어 있고, 누런 장판 바닥에 핑크색 이불과 더 진한 핑크색 베개가 깔려 있고. 그런 것들을 베고, 덮고 자는 게 묘하게 야릇했어요. 매일은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싸구려 섹스를 해도 될 것 같았거든요.” 싸구려 섹스가 뭔지는 덮어두고, 싸구려 섹스라는 걸 하고 싶었던 걸까? “그날은 그래 보고 싶었어요. 더럽게 한다기보다는, 기존의 방식을 타파할 원동력을 얻는 거죠.”

“섹스가 귀찮아졌어요.” 올해 서른이 된 권오진은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는데 섹스가 귀찮아진 것도 걱정 중 하나였다. 그는 최근 시작한 사업과 섹스에 대해 고민했다. 그나저나 섹스가 귀찮다? “섹스 자체는 즐겁죠. 그 전후 과정이 귀찮아요.”

이조현과의 문답이 이어졌다. 애인이 생겨도 모텔을 고집할 건가요? “당장은 대학생이라 돈이 없으니, 연애하면 집으로 가야죠. 제가10년 뒤에도 이럴지는 모르겠어요. 내 집이 생겼을 때의 섹스면 또 다르겠죠. 아직은 그래요. 모텔이 편해요. 내 것을 보여주기가 두렵나 봐요.”

“저는 제 집에서는 안 해요. 내 취향을 죽어도 알려주기 싫어. 나에 대한 하나의 힌트도 용납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무조건 남자의 집으로 가요.” 공기업에 다니는 김서정은 이조현과는 다른 방향으로 분명했다. “남자가 무슨 향을 쓰는지,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가구를 어떻게 배치했는지를 알면 남자의 섹스 스타일도 대충 유추할 수 있어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정리정돈을 잘하는 남자는 예민하고 섬세해서 섹스에도 충실했죠. 반대로 집이 더러운 남자는 아직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무턱대고 넣으려고만 했죠. 그런 느낌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정리가 잘된 남자의 집을 보면 더 하고 싶어져요. 단순히 ‘섹스를 하고 싶다’기보다 ‘내 예상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거죠.” 내 정보를 알리긴 싫고, 남의 정보만 알고 싶어서 상대의 집에서 한다는 걸까? “그 이유만은 아니에요. 저는 숙박업소 느낌이 싫어요. 호텔이나 모텔이나 ‘어서 섹스하세요’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요. 내가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김서정이 섹스에 대해 하는 말들은 대체로 거침없었다. 그는 내게 틴더에서 섹스할 수 있는 첫 멘트를 알려주었다(이 답변의 끝은 ‘잘생기면 된다’였다). 셋이서 섹스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이것도 틴더에서 만났다). “최근에 연락 온 전 파트너의 집에 갔어요. 역시 잘 꾸며져 있었어요. 왜 말도 없이 연락 끊었냐고 화내려고 갔는데, 들어가자마자 키스했어요. 그렇게 세 번을 하고 왜 연락이 끊겼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고, 나올 때가 돼서 나왔어요. 남자는 다시 연락이 끊겼지만요.”

“저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답답해서 죽었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을 때 못 하잖아요” 김서정은 섹스가 항상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했다. 김서정은 나를 만났을 때도 그날 저녁에 만날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물었다. 그 남자와 연애할 건지. “그럴 수도 있죠. 우선 해보고.” 그럼 오늘도 그의 집으로 가는지? “그렇겠죠? 월세 아까워서라도 자기 집으로 어떻게든 부르겠죠. 나는 잘 따라가고. 나를 만나는 남자 너무 ‘개꿀’ 같아.”

“섹스가 귀찮아졌어요.” 올해 서른이 된 권오진은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는데 섹스가 귀찮아진 것도 걱정 중 하나였다. 그는 최근 시작한 사업과 섹스에 대해 고민했다. 그나저나 섹스가 귀찮다? “섹스 자체는 즐겁죠. 그 전후 과정이 귀찮아요.”

권오진의 사업 아이템은 패션 편집매장이다. 미감이 필요한 일이다. 직무처럼 그는 평소에도 예쁜 걸 중요하게 여겼다. A부터 Z까지 모두 예쁘고 흠이 없어야 했다. 섹스도 그랬다. “병적으로 완벽한 걸 추구해요. 섹스 전 함께 좋은 식사를 하고, 보송한 침구에서 섹스를 시작해서 마무리도 깔끔하게. 섹스 후의 대화까지 완벽하게 만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죠.” 무슨 뮤직비디오도 아니고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디 있냐 싶어지는 대답이었다. 권오진도 인정했다. “알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완벽을 따라가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제 집 아니면 잠도 잘 못 잡니다.” 완벽 추구남 권오진의 섹스 장소도 역시 집이었다. 제 집 아니면 잠도 못 잔다니 나이 서른의 소년 같은 이야기지만 그의 말이 이어졌다. “섹스는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섹스하고 나서 진짜 잠도 자야 하니까, 숙박업소는 가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합니다.” 그는 와인을 홀짝이며 말했다. “집에서 하게 되면 전날 밤부터 신경이 쓰이죠. 여자에게 해줄 음식을 생각합니다. 섹스 다음 날 아침에 해줄 샌드위치나 파스타 재료를 사두고, 섹스 때문에 빼앗길 시간을 위해 미리 일을 처리해두죠.” 그는 다정한 남자일까? “다정한 것 같기도 한데 이러니 섹스가 귀찮은 겁니다. 그게 귀찮은 걸 보면 완전히 다정한 것 같지도 않아요.” 샌드위치 재료가 없을 때는, 계획에 없는 섹스도 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을 땐 하지만 사후 처리의 스트레스가 더 커집니다.” 확실히 섹스는 개인의 철학이 드러나는 일이었다.

내 철학은 권오진과 달랐던 모양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서른 즈음엔 저렇게 될까 두려워졌다. 사랑뿐 아니라 섹스까지 ‘점점 멀어져갈’ 것 같아 답답해졌다. 지금 나는 당장 섹스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당사자의 입장을 다는 모르지만 권오진의 이야기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렸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섹스 필드’라는 게 있다면 그 안에 다양한 캐릭터가 있다. 하기는 싫지만 언제든 할 수 있는 사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 섹스 필드에는 당연히 후자가 더 많다. 그 사이에서 권오진은 강자도 약자도 아닌 깍두기였다. 혼자 산다. 능력 있다. 하지만 모든 섹스를 과업으로 느낀다. 그런 남자들은 자기 집에 있다.

Words : 백윤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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