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명품 공간에서 명품 소리를…국내 최대 빈티지 오디오 박물관 ‘오디움’ 가보니

임석규 기자 2024. 6. 7.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빈티지 오디오 박물관 ‘오디움’
쿠마 켄고 설계-5일부터 무료 공개
웨스턴 일렉트릭 오디오 최대 컬렉션
1932년 생산된 웨스턴 일렉트릭 혼 스피커 ‘16-A’ 스피커가 설치된 오디움 전시실. 서전문화재단 제공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구룡산 남쪽 자락에 접어들면 하얀 깃털을 두른 것처럼 반짝이는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면 늘씬하게 솟은 5층 건물의 외부를 수많은 알루미늄 파이프가 수직으로 감싸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을 만든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가 설계한 오디오 박물관 ‘오디움(Audeum)’은 길이가 최대 40m에 이르는 2만여개의 파이프를 외투처럼 걸치고 있다.

지난 5일부터 무료로 일반 공개를 시작한 오디움은 지하 2층, 지상 5층에 연면적 22만4246㎡ 규모. 지하철 ‘청계산입구역’에서 1㎞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이곳에 도착하면 입구나 통로를 찾기 어려워 헤매기 쉽다. 특이하게도 출입구가 지하 2층에 있어서 기다란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입구를 통과하면 편백 향기가 물씬 풍기는데, 시각, 후각, 청각 순으로 감각을 일깨우려는 건축 의도가 엿보인다. 목재를 즐겨 사용하는 건축가 쿠마 켄고는 “건축물을 먼저 체험해 마음의 준비를 한 뒤에 소리에 도달하도록 설계했다”며 “이곳의 특별한 질감과 빛과 바람, 향기 모두를 느끼고 청각을 통해 치유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영상물에서 설명했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쿠마 켄고가 설계한 오디오 박물관 ‘오디움’은 5층 건물 외부를 2만개의 알루미늄 파이프로 둘렀다. 서전문화재단 제공

오디움은 방대한 빈티지 오디오 컬렉션을 자랑한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축음기와 뮤직박스, 1920~1960년대에 생산된 스피커와 앰프 등 100여년에 걸친 오디오 발전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특히 1920~1940년대 극장용 음향시스템으로 널리 보급된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WE) 기기는 음색이 자연스러워 애호가들에게 ‘꿈의 명기’로 불린다. 정몽진(64) 케이씨씨(KCC) 회장과 오디오 전문가 고 최봉식씨가 40여년 동안 마니아의 열정으로 발품 들여 수집한 웨스턴 일렉트릭 컬렉션은 질과 양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시실은 대형 스피커가 뿜어내는 음향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도록 층고를 9m로 높게 설계했다. 목재를 써서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전시실은 각종 흡음재와 음향판 외에 목재 벽에도 단차를 둬 흡음력을 끌어올렸다. 방문객들은 지하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1~4전시실)으로 올라가 2층(5~7전시실)과 1층(1~2 특별전시실, 엑시트 갤러리)을 거쳐, 10만여장의 엘피(LP) 레코드가 전시된 지하 2층 라운지 순서로 둘러볼 수 있다.

1935년 생산된 웨스턴 일렉트릭의 대표적 명기 ‘미러포닉’이 전시된 오디움 제5전시실. 서전문화재단 제공

제1 전시실에 들어서면 먼저 매킨토시, 마란츠, 제이비엘(JBL), 알텍랜싱 등 일반 애호가들에게도 친숙한 앰프와 스피커들을 만나게 된다. 2~7전시실은 웨스턴 일렉트릭 제품들을 집중적으로 전시했고, 극장용 음향 시스템의 양대 산맥을 이루던 독일 클랑필름 제품들도 만날 수 있다. 웨스턴 일렉트릭의 대표적 명기인 ‘미러포닉’과 ‘12-A+13-A’ 조합 스피커가 설치된 5·7 전시실은 특히 인기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기들로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에 나오는 아리아 ‘잔혹한 운명이여’(O don fatale)를 들어보니, 왜곡이 없는 자연스러운 고음에 쭉 뻗어 나가는 소리가 청신하게 울려 퍼졌다. 프랑스 작곡가 레날도 안의 ‘클로리스에게’(A chloris) 도입부에 나오는 피아노 반주도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가 직접 연주하는 자연음처럼 생생했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에 삽입된 현악기 소리 또한 바로 옆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분리되어 들렸다.

제1특별전시실엔 1500여대의 카메라를 전시했고, 제2특별전시실에선 건축가 쿠마 켄고와 설립자 정몽진 회장이 각각 건축과 전시품을 소개하는 영상물을 상영한다. 1층 엑시트 갤러리에선 다양한 종류의 뮤직박스를 전시한다. ‘미러포닉’의 또 다른 시리즈와 거대한 오르골이 전시된 지하 2층 라운지는 입체적 음향을 위해 패브릭을 소재로 꽃 형태의 공간을 연출했는데, 관람객들이 여유 있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웨스턴 일렉트릭의 대표적 명기 ‘미러포닉’과 거대한 오르골, 10만여장의 엘피(LP) 레코드가 전시된 오디움 지하 2층 라운지. 서전문화재단 제공

방문객들이 단순히 기기들을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오디오 시스템들이 내는 소리를 직접 체험하고 비교할 수 있다는 게 이 박물관의 특장점이다. 당분간 매주 목~토요일 3일 동안 문을 열고, 나머지 4일은 전시품 정비를 위해 휴관한다. 관람은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예약해야 하며, 20명씩 5차례에 걸쳐 하루 100명의 방문객만 받는다. 전문 도슨트들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오디움 관계자는 “오래된 빈티지 오디오 제품들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운영 시간에 제한을 뒀다”고 설명했다.

오디움을 운용하는 서전문화재단은 2021년 작고한 정상영 케이씨씨 명예회장의 회사 지분(3%) 등 시가 1400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탁받았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인 정상영 명예회장은 1958년 창업해 케이씨씨 그룹을 일궜다. 정몽진 현 회장은 “여러 제약 요인으로 지금은 관람 인원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지만 여건이 개선돼 좀 더 많은 사람이 좋은 소리를 체험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