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꽃피운, 멋진 어색함 [사람IN]

이상원 기자 2024. 6. 7.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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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탁 작가(28·오른쪽)는 회색 정장을 입고 검정 중절모를 쓰고 왔다.

오한숙희 이사장(65)은 웃으며 "승탁씨가 서울에서 정장핏을 보여주기 위해 몸무게를 10㎏ 넘게 줄였다"라고 말했다.

오한숙희 이사장 말에 따르면 강승탁씨가 처음 그린 용은 지렁이처럼 가늘었다.

강승탁 작가는 "앞으로 평생 그림을 그려서 작품을 판매할 거다. 소설도 써서 인기를 얻고, 돈을 많이 벌면 집을 살 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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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오한숙희 이사장과 강승탁 작가(오른쪽). ⓒ시사IN 조남진

강승탁 작가(28·오른쪽)는 회색 정장을 입고 검정 중절모를 쓰고 왔다. 오한숙희 이사장(65)은 웃으며 “승탁씨가 서울에서 정장핏을 보여주기 위해 몸무게를 10㎏ 넘게 줄였다”라고 말했다. 굳어 있던 강 작가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벽면에는 그가 그린 형형색색의 맹수 그림이 다른 두 작가의 작품과 함께 걸려 있었다. 5월21일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 갤러리M에서 열린 발달장애 창작자 3인의 〈멋진 어색함〉 전시 모습이다.

여성학자인 오한숙희 비영리 사단법인 ‘누구나’ 이사장은 작가와 방송인으로 활동했다. 삶의 전반기가 “공중전”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토대로 ‘이건 아닙니다. 이렇게 가야 합니다’라고 사회에 ‘삐라’를 뿌렸다.” 지금은 ‘보병’이다. “평등한 삶이란 무엇인지, 그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주장했던 바를 삶으로 관철하려 한다.”

‘평등’과 ‘미술’의 결합에는 개인사가 얽혀 있다. 오한숙희 이사장은 2014년 중증 발달장애인 딸 장희나씨와 함께 제주도로 이주했다. 서귀포에는 장애인 부모회가 만든 야간돌봄교실이 있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강승탁씨를 거기서 만났다. “야간돌봄교실에 아이를 데려다줄 때마다 강승탁씨와 다른 몇 명이 볼펜으로 뭔가 그리고 있더라. 그림에 이렇게 진심인 사람들이 재능을 발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발달장애인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재미진학교’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제주도의 미술작가들이 발달장애인들의 멘토가 되었다. 새로운 미술 재료와 멘토를 만난 이들은 부쩍 성장했다. 장희나씨는 ‘색 쌓기’라 부르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래숙씨는 50대임에도 재능을 발견해 세밀한 회화 작품을 그려냈다. 강승탁씨는 사자, 호랑이, 용 등 동물 그림을 꾸준히 그리고 있다.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그림은 점점 변했다. 기교를 익혀서만이 아니라 자신감을 키우면서였다. 오한숙희 이사장 말에 따르면 강승탁씨가 처음 그린 용은 지렁이처럼 가늘었다. 전시를 열고 작가라고 불리면서,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그의 화폭에는 점점 크고 위압적인 맹수가 등장했다. 강승탁 작가는 “앞으로 평생 그림을 그려서 작품을 판매할 거다. 소설도 써서 인기를 얻고, 돈을 많이 벌면 집을 살 거다”라고 말했다. 젊은 작가의 당찬 포부를 들으며 오한숙희 이사장은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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