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배터리·탄소국경제·디지털여권…전문가 3인이 말하는 유럽發 규제 中企 대응 전략

장우정 기자 2024. 6.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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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견제하나… 유럽, 배터리부터 정조준
정부, 유럽 수출 1억 이상 위주 컨설팅 지원
탄소배출 데이터 측정·관리 소프트웨어도

유럽연합(EU) 배터리 규제가 내년 하반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작년 8월 발효된 EU 배터리법은 배터리 생산·소비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의미하는 탄소발자국 신고와 폐배터리 수거·공급망 실사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도 2026년 1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전환 기간에 들어간 상태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6개 품목을 수출하는 기업이 생산시설에서 발생한 직간접 실질 탄소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면 이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두 규제는 EU로 들어오는 모든 제품의 생산-유통-판매-사용-재활용 등 전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로 수집, 저장, 공유하도록 하는 디지털제품여권(Digital Product Passport·DPP)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는 유럽은 3년 뒤인 2027년부터 DPP 시행을 예고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배출하는 탄소량과 흡수·제거하는 탄소량을 같게 함으로써 실질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래픽=손민균

조선비즈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김우순 기술혁신정책관과 국내 CBAM 전문가로 꼽히는 신서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기업들에 탄소 배출 데이터 관리 설루션을 제공 중인 글래스돔코리아의 함진기 대표를 만나 쏟아지는 유럽발(發) 규제 대응법을 들어봤다.

① EU 배터리법이 유럽발 규제의 첫 타자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함진기 “내년 6~7월부터 배터리 수출 업체들은 총 탄소 배출량이 얼마인지 제시해야 한다. 그다음 해부터는 EU에서 에너지 배출량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특정 등급 이하는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방향이 될 것이다. 이전까지 완성차 업체들은 부품 발주 시 ‘원가’, ‘품질’ 두 가지만 평가했다. 이제는 탄소발자국 수치가 입찰 요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유럽의 최종 목표는 DPP 도입이다. 디지털 여권에는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원재료·부품에서부터 최종 조립 단계까지 총 얼마만큼의 탄소를 배출했는지 수치를 담아야 한다. 배터리 원재료인 코발트, 리튬, 납, 니켈 등의 재활용 비율을 의무화하며, 원산지 이력 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내년 하반기 가장 먼저 시작될 EU 배터리법을 표본으로 나머지 규제의 방향성도 잡힐 것으로 본다. 전문가들이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다.”

② 유럽이 빡빡한 ‘녹색 장벽’을 세우는 근본적 이유는

신서린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 때문에 주요국들이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이런 정책이 코로나19나 전쟁 등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와 결합하면서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국 산업을 위한 보호무역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함진기 “전문가들은 중국 견제를 큰 이유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배터리의 최종 산출물은 자동차인데, 자동차가 아닌 배터리부터 규제하는 것이다. EU에 배터리 제조사는 없고, 메이저 완성차 업체들은 많다.”

그래픽=손민균

③ 수출 중소기업들은 이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신서린 “CBAM의 경우 6종 대상 기업뿐만 아니라 여기에 나사나 볼트 같은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까지도 전부 탄소 배출량을 산정해야 한다. 철강 등을 이용해 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나 수출하는 무역업종도 포함이다. 우선 제도 대상인지 확인부터 해야 한다. 또 제도를 이해하고, 관련 정보를 측정해 원청업체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관세를 줄이려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저감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이를 전문적으로 맡을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④ 정부는 어떻게 지원하나

김우순 “지난해 기준 EU 수출 중소기업은 1358개다. 이 중 수출액 1억원 이상 기업은 355개 수준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탄소 배출량 측정, 검증보고서 발급 등을 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지원할 예정이다. 1억원 이하 기업도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을 투입한다.

이와 별개로 1억원 이하 수출기업에 대해서는 EU 측에 CBAM 대상 면제도 타진해 볼 예정이다. 수지타산이 안 맞을 경우 유럽 수출 자체를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업체 등과 협업해 탄소 배출량을 측정·보고·검증(MRV)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계획이다. 수출 기업들은 합리적인 비용에 검증된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며, 다양한 형식의 규제에 맞게 이를 변형, 적용할 수 있다. 모든 규제가 다 다르고, 원재료 비율 등 기업의 영업기밀도 올라가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 일괄적으로 단일 플랫폼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⑤ 미국, 중국 등 주요 수출국 규제 분위기는 어떠한가

신서린 “영국은 CBAM과 유사한 제도를 2027년 1월 전환 기간 없이 도입한다. 철강,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수소, 유리, 세라믹 등 품목에 관세를 부과한다. 미국, 캐나다, 호주에서도 유사한 제도 도입을 이미 선언했다.”

함진기 “EU가 규제를 만들면 3~4년 후 글로벌 시장에서 표준화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도 이미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중심으로 (2026년부터 기업 규모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하도록 하는 등) 유사한 규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크게 달라지지 않을 트렌드다. 중국조차도 제공하는 수치 정확도가 올라갈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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