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CEO의 자진 사임이 던진 메시지는... SK증권 가분수 조직구조 바뀔까
마지막 증권가 장수 최고경영자(CEO)였던 김신 SK증권 대표가 새로운 먹거리를 찾겠다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신 전 대표는 직업이 ‘증권사 사장’이라고 할 정도로 오랜 기간 CEO로만 일한 인물이다. 2010년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부사장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KB증권 전신인 현대증권에서 대표이사직을 역임했고, 2014년 SK증권으로 적을 옮겨 10년간 사장직을 이어갔다. 증권사 대표 경력만 24년이다.
표면적으로는 ‘월급쟁이 사장’이지만, 최대주주인 사모펀드에 출자도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오너로 인식하는 직원이 많았다. 그의 깜짝 사임과 관련해 회사 안팎에서 많은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김 전 대표가 회사에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자 사표를 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김 전 대표는 오랜 기간 여의도에서 일하면서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많은 후배를 영입했다. 일부는 사모펀드에 출자해 김 전 대표와 한배를 탔다.
하지만 김 전 대표가 집중 공략하고자 했던 투자은행(IB), 자산관리(WM) 등 굵직한 부문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이들은 큰 짐이 됐다. SK증권은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239억원, 당기순손실 194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임원진들은 쇄신을 다짐하며 지난해 12월 한 달 치 급여의 30~100%를 반납했지만, 올해 1분기에도 적자를 지속했다. (관련기사☞ [단독] 실적 악화 예고된 SK증권, 임원진 급여 자진반납)
7일 SK증권에 따르면 김신 전 대표는 지난달 20일 자로 SK증권 부회장직을 사임했다. 지난 3월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직을 내려놨고, 부회장직도 사임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김 전 대표는 자회사 SKS 프라이빗에쿼티(PE)의 미등기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김 전 대표는 지난 3월 대표이사에서 물러날 당시에도 직급이 사장이었다. 이를 보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서 부회장 승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에서는 김 전 대표 퇴진으로 가분수 형태의 조직이 바뀔 수 있을지 주목한다. SK증권은 국내 증권사 중 임원 수가 많은 것으로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지난해 12월 기준 SK증권 직원 수는 891명인데, 임원 수가 101명에 달했다. 전체 직원 중 11.5%가 임원이다. SK증권 자기자본의 20배 정도인 미래에셋증권 임원 수(139명)와 비슷하지만, 미래에셋증권의 직원 수 대비 임원 비중은 4.0%에 그친다.
다른 증권사들과 비교해도 임원 비중이 높다. 키움증권(5.45%), 한양증권(4.01%), 상상인증권(3.85%), 메리츠증권(3.27%), 신한투자증권(2.29%), KB증권(2.13%), 한국투자증권(1.94%), 삼성증권(1.24%) 등과 비교해도 SK증권이 두드러진다.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쥔 후 임원단이 비대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당시 채택한 전략 때문이다. 지난 2018년 SK증권 최대주주가 SK그룹에서 사모펀드인 J&W파트너스로 바뀌는 과정에서 일부 임원이 최대주주 사모펀드에 자금을 출자했다. 임원들은 고용이 보장돼 좋았고, J&W파트너스는 임원진이 본인의 지분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앞두고 금융당국으로부터 고용 보장 부문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양측이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이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실적이 마이너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SK증권의 1분기 연결기준 영업손실은 13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적자를 기록했다. 당기순손실도 59억원에 달해 적자 전환했다. 회사 측은 부동산PF 관련 충당금을 쌓은 영향이라고 밝혔지만, 그 외에도 너무 많은 고정비 부담, 수익성 저하도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시가총액은 2700억원 정도로, 최대주주 변경 당시와 비교하면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우발부채도 풀기 어려운 문제다. 지난해 말 기준 SK증권의 우발채무는 3864억원으로, 자기자본(6115억원) 대비 63.2%에 달한다. 우발채무는 현재 부채는 아니지만 언제든 빚으로 돌변할 수 있는 채무를 의미한다.
특히 우발채무 중 부동산PF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2800억원 정도다. 토지매입 단계 해당하는 브릿지론 비중(43%)이 높고, 변제순위상 중·후순위 비중(71%)이 높은 게 특징이다. 즉 아직 삽도 못 뜬 사업장 대출이 절반 정도고, 문제가 생길 경우 대금 수령에서 밀리는 채권이 전체의 70% 이상이라는 뜻이다.
PF시장 침체가 길어지면 부실 위험이 전이돼 자산건전성이 빠르게 나빠질 수 있다. SK증권은 1분기 대손충당금을 152억원을 추가 적립해 총 934억원으로 쌓아뒀지만, 충분하진 않다는 지적이다. 올해 만기도래하는 브릿지론 규모를 감안하면, 추가 대손 부담이 예상된다고 한국기업평가는 분석했다.
실적을 갉아먹는 와중에도 SK증권 최대주주는 사모펀드가 최대주주라는 특성상 높은 현금 배당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충당금 적립에 허덕이면서도 배당 성향 40%를 유지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SK증권이 높은 배당성향을 유지하고 있어 자본 확충이 제한적이라고 우려했다.
직원들은 김 전 대표가 사실상 경영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만큼, 구조조정 후속조치가 잇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원진 연봉이 너무 높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SK증권이 지난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130억원가량이다. 그러나 임원 102명에게 지급된 연간급여 총액은 275억원으로, 벌어들인 돈의 두 배가 넘는다. 김 전 대표가 16억9700만원, 이강모 감사가 9억5300만원, 박태형 사장이 6억9100만원, 전우종 대표가 5억9100만원을 수령했다.
SK증권 측은 펀드에 출자했던 임원들이 모두 지분을 정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한 회사 관계자는 “2018년 경영권 변경 당시 임원들이 출자한 지분은 1% 내외로 알고 있으며, 2021년쯤 임원 지분은 이자 정도만 정산하고 모두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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