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 만했던 ‘거대 익룡’ 0.6초 만에 하늘로 슝~ 어찌 날아올랐을까[멸종열전]
천상의 위대한 창조주 오메테오틀에게는 아들이 넷 있었다. 이들 가운데 대지의 세계를 다스리는 테스카틀리포카와 바람의 세계를 다스리는 케찰코아틀은 엎치락뒤치락 싸우면서 서로의 세계를 멸망시켰다. 모두 망치고 난 다음에야 두 형제는 마침내 화해하여 치고받고 싸우기를 멈추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로 한다. 지상에!
케찰코아틀은 저승의 신 믹틀란테쿠틀리에게 얻은 죽은 인간의 뼈에 자신의 피를 흘려 새로운 인류를 창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옥수수 씨앗과 용설란을 주었다. 아즈텍 신 가운데 가장 인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신이 바로 케찰코아틀이다. 그는 바람과 비의 신이면서 책과 달력의 발명가이며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다.
케찰코아틀은 마치 인간에게 불과 고기를 선사한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다. 아즈텍 문명은 케찰코아틀을 자신들의 달력 안에 보존하고 섬긴다. 아즈텍인들은 케찰코아틀을 깃털 달린 뱀으로 그려 기록했다. 케찰코아틀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담은 것이다.
하늘을 나는 파충류
깃털 달린 뱀, 하늘을 나는 파충류라니…. 얼토당토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 하늘을 나는 파충류가 2억2800만년 전 지구에 등장했다. 공룡 시대의 하늘을 날았던 익룡이 바로 그들이다.
1780년대 프테로닥틸루스 화석이 발견되었을 때만 해도 이 파충류는 심해에 사는 동물이라고 추측했다. 앞다리를 지느러미로 착각한 것이다. 1882년 앞발가락 끝에서 몸통으로 이어진 얇은 피부막 흔적이 발견된 다음에야 하늘을 나는 동물이라는 게 밝혀졌고 프테로사우르(pterosaur)로 불리게 되었다. ‘날개(翼)도마뱀’이라는 뜻이다.
악어, 공룡, 익룡은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 익룡에게 어쩌다가 날개가 생겼을까? 익룡은 파충류치고 뒷다리가 굉장히 길다. 아마도 익룡의 조상은 뒷다리로 껑충껑충 뛰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곤충을 사냥하기도 하고 나무에도 올랐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무 사이를 활공하게끔 앞다리가 날개로 변했다.
익룡이 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익룡의 날개는 새의 날개와는 다르다. 오히려 박쥐의 날개와 비슷하다. 박쥐의 날개는 길어진 네 개의 앞발가락 사이에 만들어진 날개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반해 익룡은 네 번째 발가락만 길어졌고 여기와 몸통 옆면이 연결된 날개막으로 하늘을 난다.
날개만 있다고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날지 못하는 새들도 있지 않은가. 익룡이 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가볍기 때문이다. 익룡은 새처럼 뼛속이 비어 있으며, 그 안에 공기주머니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몸이 가볍다. 가벼운 몸은 비행에 결정적인 요소다. 익룡은 매우 가볍다. 제비만 한 익룡은 5g에 불과하고, 큰 부엉이 정도의 익룡도 1㎏밖에 나가지 않았으며, 날개폭이 7m나 되는 거대한 익룡도 10㎏ 정도였을 뿐이다. (인간에게 날개가 돋는다고 해도 우리는 날지 못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겁기 때문이다.)
중생대 백악기 북아메리카에서 서식
‘80㎏ 달한 몸무게’ 비행 악조건 속
강한 위앞다리뼈 힘으로 도약해 날아
F-16 전투기에 견줄만큼 넓은 날개폭
하늘에서 유유히 활공할 수 있었지만
민첩하게 날진 못해 땅에서 먹이 찾아
긴 목·주둥이로 악어·작은 공룡 삼켜
독수리처럼 ‘시체 청소부’ 역할도
중생대 백악기 마지막 시대인, 지금부터 7000만~6600만년 전 북아메리카 하늘에는 케찰코아틀루스가 날고 있었다. 하늘을 지배했던 익룡이다. 아즈텍 신화의 케찰코아틀의 이름을 딴 것만 보아도 이 익룡의 규모가 만만치 않았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케찰코아틀루스는 지금까지 두 종류가 발견되었는데 큰 종류는 날개폭이 12m에 달했다. 똑바로 서 있으면 키가 기린과 맞먹었다.
타조도 날지 못하는데 기린만 한 익룡이 과연 날 수 있었을까? 지금 살아 있는 날 수 있는 새 가운데 가장 무거운 새는 들칠면조라고도 불리는 겨울철새 느시(Tis tarda·천연기념물 206호)다. 몸길이 1m에 달하는 수컷의 몸무게는 최대 10㎏ 정도다. 새들도 더 이상 커지면 날 수 없다.
무거워도 날 수 있는 익룡의 비밀
케찰코아틀루스는 몸무게가 80㎏에 달했다. 덩치에 비해서는 매우 가볍지만 날기에는 지나치게 무겁다. 단지 날개폭이 크다는 것만으로 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게다가 케찰코아틀루스 뒷다리는 다른 익룡과 마찬가지로 매우 가늘다. 뒷다리 힘으로 힘차게 날아오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날지 못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날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거대한 날개가 있다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대한 케찰코아틀루스는 어떻게 하늘을 날았을까? 과학자들은 상상했다. 익룡은 걸어서 절벽 같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뛰어내려 활공을 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참나! 자신이 익룡이라고 생각해보자. 뭘 잡아먹으려면 일단 날아야 하는데, 그때마다 절벽같이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참으로 답답한 상상이었다.
2008년에야 문제가 해결되었다. 무릎 위에는 하나의 뼈, 넙다리뼈가 있다. 무릎 아래에는 두 개의 뼈가 있다. 앞쪽의 정강이뼈와 뒤쪽의 종아리뼈가 그것이다.
팔도 마찬가지다. 팔꿈치 위로는 한 개의 뼈가 있고 아래로는 두 개의 뼈가 있다. 익룡의 앞발 위쪽뼈를 위앞다리뼈라고 한다. 위앞다리뼈는 다른 뼈보다 튼튼하고 여기에는 크고 강한 근육들이 붙어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익룡은 가느다란 뒷다리로 박차고 날아오르는 게 아니라 위앞다리뼈로 땅을 박차고 힘차게 날갯짓을 하면서 날아오를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케찰코아틀루스가 날아오르는 장면을 시뮬레이션해봤다. 케찰코아틀루스는 초속 15m의 속력으로 단 0.6초 만에 날아오를 수 있었다. 현생 조류도 이렇게 빨리 날아오르지 못한다.
바로 여기에 케찰코아틀루스보다도 훨씬 작은 타조(날개폭 2m) 같은 새들이 날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오늘날 날아다니는 새 가운데 날개가 가장 큰 새는 나그네앨버트로스로 날개폭이 3.5m, 몸무게는 10㎏ 정도다. 날개폭이 케찰코아틀루스의 3~4분의 1에 불과하지만 몸무게 역시 8분의 1에 불과하다. 이게 날 수 있는 현생 조류의 최대 크기다.
현생 조류는 뒷다리로 걷고 뒷다리 힘으로 날아오른다. 새의 몸집이 커지면 뒷다리 근육도 커지고 체중도 늘어난다. 무거운 몸을 띄우기는 어렵다. 그런데 익룡은 뛰어오르고 날갯짓을 할 때 뒷다리가 아니라 앞다리 근육을 쓴다. 몸집이 커진다는 것은 앞다리 근육이 커진다는 것이고 이것은 곧 날개가 강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덩치가 커져도 날 수가 있다. 그래서 새는 몸집이 커지면 더 이상 날 수 없지만, 익룡은 몸집이 커져도 날 수 있는 것이다.
케찰코아틀루스가 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마치 날개폭이 9.8m에 달하는 F-16 전투기를 보는 것 같을 것이다. 케찰코아틀루스 날개 길이는 더 크지만 몸무게는 80㎏밖에 안 나가고 튼튼한 위앞다리뼈에 강한 근육이 붙어 있기 때문에 날 수 있었다.
익룡이 차지한 틈새
익룡은 중생대 생태계에서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익룡은 현대의 새와 박쥐 비슷한 다양한 생태적 틈새(niche)를 차지할 수 있었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덕분에 많은 익룡은 물고기, 작은 척추동물, 곤충을 잡아먹는 공중 포식자였다. 아누로그나투스 같은 작은 익룡은 짧고 넓은 입과 민첩한 비행으로 곤충을 잡아먹었다. 독특한 강모 모양의 이빨이 있는 프테로다우스트로는 홍학처럼 물속에 사는 작은 갑각류를 걸러 먹었다. 프테라노돈은 이빨이 없는 긴 부리로 물속에서 물고기와 오징어를 낚아챘고, 드숭가립테루스는 주둥이 끝으로 갯벌에 숨어 있는 갑각류와 조개를 파낸 후 어금니로 으깨 먹었다.
케찰코아틀루스처럼 큰 익룡은 민첩하게 날지 못했다. 열과 기류를 이용해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공중에 머물기 위해 활공에 많이 의존해야 했다. 따라서 공중 포식자로 살 수는 없었다. 키가 큰 케찰코아틀루스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으면서 땅 위를 걸어다니는 악어나 작은 공룡을 쫓을 수 있었다.
그런데 땅에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서는 길어야 하는 게 하나 더 있다. 학을 생각해보자. 학은 걸어다니면서 먹이를 긴 목으로 집어 먹는다. 케찰코아틀루스는 키만 기린만큼 큰 게 아니었다. 목도 기린만큼 길었다. 긴 목으로 악어나 공룡을 집어삼켰다. 주둥이도 작은 공룡은 한 입에 삼킬 정도로 길었다. 케찰코아틀루스 같은 대형 익룡은 오늘날 독수리처럼 시체 청소부 역할도 했다.
익룡은 현생 바다새처럼 군집으로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익룡의 발자국 흔적은 익룡이 사회적으로 행동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사회적 행동의 증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볏이다. 기린 머리에 작은 뿔이 있는 것처럼 케찰코아틀루스 머리에도 (케라틴이 아니라 뼈로 되어 있어 화석으로 남을 수 있는) 볏이 있다. 대부분 익룡의 머리에는 화려한 볏이 솟아 있다. 용도는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비행 방향을 바꾸는 데 필요한 장치라고 생각했으며 또 다른 이들은 공기를 가르면서 빨리 날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렇다면 거의 비슷한 모습을 띠어야 한다. 그런데 많이 다르다.
볏의 용도는 초식 공룡이나 현생 초식 포유류를 떠올려보면 짐작할 수 있다. 육식 공룡들이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과 달린 초식 공룡은 매우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트리케라톱스와 스테고사우루스를 생각해보라. 육식 포유류들이 서로 비슷하게 생긴 것과 달리 초식 포유류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코끼리, 하마, 코뿔소, 얼룩말, 영양을 보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영역을 다퉈야 하는 육식 동물과 달리 풀을 먹는 동물들은 영역을 다투지 않고 같이 어울려 산다. 사냥을 하는 육식 동물들은 지능이 뛰어나야 한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풀과 나무를 먹는 초식 동물은 괜히 뇌를 키워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육식 동물처럼 비슷비슷하게 생겨가지고는 종을 구분하기 어렵다. 확실히 다른 모습을 가져야만 쉽게 자기 종을 찾아 짝을 지을 수 있다. 종마다 다른 익룡의 볏도 마찬가지로 종을 구분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볏의 크기와 화려함은 짝짓기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6600만년 전 케찰코아틀루스는 최후를 맞는다. 외계에서 지름 10㎞의 소행성이 지구를 침략했을 때다. 1521년 아즈텍 문명은 정복되었다. 1519년 에스파냐의 정복자 코르테스가 말을 타고 아즈텍 제국의 수도에 들이닥쳤을 때 아즈텍인들은 코르테스를 깃털 달린 뱀 케찰코아틀로 여겨 환대했지만, 코르테스는 계략을 부려 아즈텍 문명을 정복했다. 아즈텍 문명은 유럽인의 총, 균, 쇠를 감당하지 못했다.
■필자 이정모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이정모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프고 계속 커지는 켈로이드 흉터··· 구멍내고 얼리면 더 빨리 치료된다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검찰개혁 선봉’ 박은정, 혁신당 탄핵추진위 사임···왜?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3200억대 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조직 체포… 역대 최대 규모
- 머스크가 이끌 ‘정부효율부’는 무엇…정부 부처 아닌 자문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