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아이] 러시아 본토에 떨어지는 미제 무기, 우크라 전쟁의 미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이 제공한 무기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것을 허용했다. 비록 '일부 허용'이긴 하지만 중요한 정책 전환임에는 틀림 없다. 미국을 시작으로 자국이 지원한 무기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하는 서방 국가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결정이 우크라이나 전황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을 지, 국제정세 전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지가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다급해진 유럽, '레드라인' 넘나
미 의회는 지난 4월 608억 달러(약 83조3000억원) 상당의 우크라이나 추가원조 예산안을 뒤늦게 처리했다. 하지만 이미 숙련병 상당수를 잃은 우크라이나는 전선에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다급해진 우크라이나는 서방제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왜 우리는 그들이 모여드는 곳에 무기를 쓸 수 없느냐"면서 서방제 무기에 걸린 사용 제한을 풀어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 동맹국들은 '금기'를 깨야 한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서방 정상 가운데 우크라이나 지원 필요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전선에서 고전하는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할 수 있게끔 허용할 것을 제안했다.
유럽 동맹국과 나토의 입장에선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져서는 절대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니라 유럽과 러시아 간의 전쟁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서방 무기의 러시아 본토 타격을 허용하라고 미국을 압박했다.
◇미국 무기로 러시아 영토 공격 허용
그동안 미국은 핵보유국인 러시아와 서방의 정면 대결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할 것을 우려해 일찌감치 서방 무기의 러시아 본토 공격에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전황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불리해지고 나토와 유럽동맹국들의 압박도 커지자 미국은 자국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것을 일부 허용했다. 격전지인 동부 하르키우주(州)와 접한 러시아 영토만을 공격 대상으로 허용했다. 확전을 우려한 조치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허용한 무기는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중거리 유도 다연장 로켓 시스템(GMLRS), 야포 체계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본토 공격 제한이 풀리자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1일 저녁 러시아 내 목표물을 향해 정밀 유도 로켓인 하이마스를 발사했다. 최근 공개된 영상에는 하르키우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러시아 벨고로드 들판에 거대한 불길이 타오르는 모습이 담겨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하이마스가 벨고로드에 배치돼 있던 러시아군의 S-300 또는 S-400 방공시스템을 타격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 "심각한 후과" 경고
이제 러시아의 대응이 관심사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서방무기 사용은 묵인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 본토 타격에 서방 무기가 쓰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러시아는 심각한 후과를 경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세계 주요 뉴스통신사 대표 기자회견에서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재래식 미사일을 미국과 그 유럽 동맹국들의 타격권 내에 배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다시 핵카드를 꺼냈다. 그는 "만약 누군가의 행동이 우리의 주권과 영토를 위협한다면 우리는 우리 처분대로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러시아가 전장에서 쓸 수 있는 핵무기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사용했던 무기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세 역전까진 힘들 듯
미국이 결단을 내리자 유럽 동맹국들도 뒤를 따르고 있다.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F-16 전투기로 러시아 내 목표물을 공격하는 데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방제 무기의 러시아 본토 타격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왔던 독일까지 독일산 무기를 동원한 러시아 본토 공격을 일부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는 자국산 미라주 전투기를 지원할 방침이다.
파병론과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나토 내부적으로 이견이 팽팽하다. 오는 7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이 기존 군사지원 정책을 바꾼 것은 우크라이나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는 이미 최전선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너무 부족하고 너무 늦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젤렌스키 정부는 일부가 아닌 전면 허용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또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당면한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일부 허용'이라는 전술적 대안을 내놓았지만, 결국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지에 대한 원대한 전략적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서방 무기가 러시아 본토를 때리면 러시아의 '맞불'은 명백하다. 이에따라 군사적 긴장은 고조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우크라이나 전쟁은 휴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다만 미 대통령 선거가 변화를 가져올 수는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전쟁이 끝날 가능성은 있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슈에서 사라지고 우크라이나는 '희생양'이 된다. 냉혹한 국제정치의 논리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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