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오징어 사라지고 대방어 잡힌다… 제주도 닮아가는 울릉도
“울릉도 일대가 오징어잡이배로 불야성이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제주도에서 낚던 대방어도 잡혀요.”
지난달 말 울릉도 한 횟집. 가게 입구에 1m 넘는 대방어를 들고 있는 주인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는 “지난겨울 울릉도 근해에서 잡은 것”이라고 했다. 수조에 있던 손바닥 한 뼘 크기 총알오징어는 한 마리에 2만원을 불렀다. 20년 전 장사할 땐 한 마리에 1000원 받았다. 동해 수온이 올라가면서 울릉도산 오징어의 씨가 마르며 비싸진 것이다. 대신 온대성 회유어종인 대방어가 올라오고 있다.
울릉도가 제주도를 닮아가고 있다. 온난화 여파로 여름과 겨울의 계절적 특성이 뚜렷했던 울릉도만의 특색이 사라지고 더운 남부 지방 날씨를 따라가는 것이다. 6일 본지가 기상청에 의뢰해 최근 10년(2014~2023년)과 과거 10년(1973~1982년)의 울릉도 일대 기상을 분석한 결과, 연평균 기온·습도·적설량 등 대부분 지표가 제주도와 비슷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기상청은 “해수면 온도와 기온이 오르면서 동해의 섬과 남해의 섬이 가지고 있던 각각의 기상적 특성과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했다.
울릉도는 우리나라에서 여름과 겨울의 계절적 특성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이 때문에 온난화로 인한 계절 패턴의 붕괴와 기후변화 양상도 뚜렷하게 보인다. 우리나라는 울릉도의 온도·습도 같은 기상을 관측하기만 하다가 2014년 기후변화감시소를 열어 이산화탄소·메탄 등 동해 일대의 온실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작년에 이곳을 ‘지구대기감시소(GAW)’로 지정해 전 지구적 기후변화를 살피는 주요 거점으로 삼았다.
과거와 현재 울릉도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적설량의 감소다. 울릉도 날씨로 상징됐던 ‘눈 많은 겨울’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전국에 기상 관측망이 설치된 1973년부터 10년간 울릉도는 연평균 적설량이 310.2㎝였다. 그런데 최근 10년간은 248.4㎝가 내려 61.8㎝ 줄었다. 과거 울릉도에선 한 번 눈이 내릴 때 100㎝ 이상 쌓일 때가 많았는데 2018년 이후에는 이런 광경도 사라졌다. 같은 기간 연평균 기온은 12.1도에서 13.4도로 1.3도 올랐고, 연평균 강수량은 1266.6㎜에서 1484.5㎜로 늘었다. 눈이 비로 바뀌어 내린 것이다.
겨울철 적설량이 줄고 있다는 것은 겨울과 봄이 가물어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겨우내 눈이 많이 쌓이면 봄까지 눈이 천천히 녹으면서 땅에 꾸준히 수분을 공급해 준다. 반면 눈이 비로 바뀌어 내리면 짧은 시간 동안만 땅을 적시고 흘러 나가버린다. 겨울·봄이 건조해지면서 울릉도의 최근 10년간 연평균 습도는 70.3%로 과거 10년(73.8%)보다 3.5%포인트 줄었다. 전반적으론 습도 수치가 낮아졌지만, 여름철엔 높아진 기온과 늘어난 강수량 탓에 체감 습도가 과거보다 높아졌다. 울릉도 한 주민은 “땅이 가물다 보니 명이, 부지깽이, 삼나물(눈개승마) 농사가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여름에는 선풍기만 틀고도 지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에어컨 없이는 버티기 힘들다”고 했다.
바다도 뜨거워지면서 현재 동해 해수면 온도는 과거 남해와 비슷해졌다. 최근 10년간 동해는 17.7도를 기록해 남해의 과거 10년(18.4도)과 0.7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이는 울릉도 일대에서 잡히는 어종(魚種)의 변화로도 이어졌다. 강원 동해안 일대에선 오징어 어획량이 2003년 23만3254t에서 작년에 1456t으로 줄었다. 반면 방어는 426t에서 4186t으로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한 어민은 “오징어 대신 방어를 잡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어종에 따라 잡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당장은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울릉도의 온실가스 농도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온실가스는 해수면 온도와 기온 상승을 견인한다. 울릉도가 앞으로 더 뜨거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2014년 울릉도의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402.2ppm이었다. 그런데 매년 더 짙어지더니 작년에는 425.6ppm으로 증가했다. 메탄도 10년간 1941ppt에서 2010ppt로 늘어났다. 최남원 울릉도기후변화감시소 소장은 “이대로 가면 울릉도가 ‘추운 겨울’이 사라지고 제주도 같은 더운 섬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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