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익 前한전 사장 “송전망, 8차선 중 4차선만 쓰는 격”
“송배전망 건설 문제는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로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송전탑 건설을 두고 지역 주민과 한전, 정부가 몇 년 동안 온 국민의 관심 속에 갈등을 빚은 뒤로 보상 요구는 더 커졌고, 건설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송배전망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가운데 한국전력 사장으로서 밀양 송전탑 사태를 처리하며 경험했던 조환익 전 한전 사장을 6일 인터뷰했다. 밀양 송전탑 사태는 동해안 신고리 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경남 창녕의 변전소로 옮기기 위한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며 갈등을 빚은 일을 말한다.
조 전 사장은 2012년 12월 한전 사장에 취임해 2014년 9월 완공 때까지 밀양 송전탑 건설을 총지휘하는 역할을 했다.
-밀양 송전탑 사태는 송배전망 건설의 어려움을 보여준 첫 사례였다.
“사장이 되고 1년 반 정도 되는 기간 동안 밀양에 마흔두 번 내려갔다. 마지막에는 결국 공권력이 동원되기는 했지만, 이미 주민 90% 이상의 동의를 받은 상태였다. 주민들과 함께 툇마루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설득했다. 저부터 말단 직원들까지 누구 할머니 생신, 어느 집 제사 등 다 챙기면서 주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매달렸다.”
-송전탑 공사 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아쉬웠나?
“반핵 단체 등이 참여하며 조직적으로 반발 움직임이 생겼지만, 한전이 혼자서 해결하려다 때를 놓친 느낌이 강했다. 처음부터 한전에만 맡겨놓지 말고 정부가 범부처 차원에서 도와줬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지역 공무원, 경찰 등이 중간에서 주민들 의견도 전달해 주고, 우리 입장도 전해 주면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 앞으로도 송배전망 문제는 한전에만 맡겨 놓을 게 아니라 중앙 정부와 지자체, 경우에 따라선 민간까지 모두 달려들어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지금도 송배전망이 문제다. 최근 상황을 어떻게 보나?
“AI(인공지능)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송배전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됐다. 반도체는 1년만 늦어도 대만과 같은 경쟁국에 다 따라잡힌다. 송배전망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류 국가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하지만 밀양 송전탑 사태를 겪으면서 지자체장들은 민원과 표를 의식해 협조를 하지 않기 시작했고, 주민들도 보상하기 전에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식이 됐다. 송배전망의 중요성은 더 커졌는데 건설은 밀양 송전탑 사태를 거치며 훨씬 어려워졌다.”
-동해안에서는 원전과 석탄발전이 송전선이 없어 돌아가며 멈추고 있다.
“밀양 송전탑 건설에 그렇게 절박하게 매달렸던 이유가 당시 건설 중이던 신고리 원전 때문이었다. 비싼 돈을 들여 만든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선이 없어 못 보낸다는 건 송배전을 책임진 한전 입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지난 몇 년간 대규모 적자를 내는 등 한전이 큰 어려움을 겪는 건 알지만, 그때처럼 절박하게 송배전망 건설에 전력을 다했다면 지금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송배전망 문제가 밀양 송전탑 사태를 겪고서 한층 좋아졌어야 하는데 나아지지 못했다.”
-송배전망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일각에서 주장하는 전자파 영향은 과학적으로 확인된 바 없지만, 송전선 때문에 주민들의 재산권이 침해받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적이고 공정한 보상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서 합리적인 보상을 확실히 하고, 갈등을 줄여 건설에 속도를 내야 한다. 송배전망 건설 기간을 단축하려면 무엇보다 갈등 관리가 중요하다.”
-당장 시급하게 적용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나?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송전 용량 증량’을 검토할 때가 됐다. 우리나라는 하나의 선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바로 다른 선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용량의 50% 이하로 송전선을 운용하고 있다. 산불 같은 재해나 사고로 송전선이 끊어지더라도 다른 선으로 바로 전기를 보내 정전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비 선로를 하나씩 더 두고 있는 것이다.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인데, 8차선 고속도로를 건설해서 자동차는 4차선만 다니는 것과 같다. 다른 나라보다 송전 용량을 낮게 운용하는 측면이 있다. 다만, 우리나라가 용량을 늘렸을 때 정전 위험성이 얼마나 커지는지, 어느 정도까지 감내할 수 있는지 등을 최대한 기술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AI·전기화 시대에 경제적·사회적 득실을 따져서 특정 시간에 한해 송전 용량을 늘리는 등 운용의 묘를 찾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밀양 송전탑 사태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경남 창녕의 변전소로 옮기기 위한 765kV 초고압 송전선과 송전탑 건설을 밀양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며 갈등을 빚은 사태. 2008년부터 수 년간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며 공사의 중지와 재개가 반복되다가 2014년에야 건설이 끝났다. 국내에서 발생한 송배전 관련 최대 갈등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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