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으로 미국을 재편하고 있는 아마존 [책&생각]
노동·지역·공동체 파괴하는 거대기업의 실체
다양한 지역 가로지르며 담은 사람들 이야기
아마존 디스토피아
거대 플랫폼 기업이 지배하는 세상
알렉 맥길리스 지음, 김승진 옮김 l 사월의책 l 2만7000원
고객의 요구를 ‘충족했다’는 정도의 뜻으로 쓰이던 ‘풀필먼트’(fulfilment)란 말은 이제 입고·포장·배송 등 온라인 시장에서 이뤄지는 물류 서비스 전반을 가리키는 고유한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만든 주역은 미국의 초거대 기업 아마존이다. 1994년 인터넷에서 책을 파는 사업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1999년 다른 판매자들에게 일괄적으로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풀필먼트 서비스 개념을 처음 내놓으며 몸집을 키웠다. 이젠 세상 거의 모든 것을 판매·배송한다 할 정도로 온라인 시장을 장악했으며,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삼아 ‘전 세계의 컴퓨터’ 노릇까지 하는 등 ‘빅테크’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공룡이다.
아마존은 지나치게 큰 영향력에서 비롯하는 여러 문제점들로 비판을 받아왔다. 정치·언론을 좌지우지하는 로비 활동, 세금 회피, 지역 경제와 공동체를 말살하는 독점,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동조합 파괴 등 일관된 반노동 행위…. 미국의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의 선임 기자 알렉 맥길리스는 2021년 내놓은 ‘아마존 디스토피아’에서 다양한 지역과 사람들을 탐사하며 ‘아마존이 미국 사회에 드리우고 있는 그늘’(부제 ‘America in the Shadow of Amazon’)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선 초번영 도시와 쇠락한 도시, 지역 안에서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계급과 인종 등을 경계로 ‘격차’가 날로 확대되고 있는데, 지은이가 볼 때 “‘특정한 지역에’ 부가 집중되는 것과 동시에 수많은 산업에서 ‘특정한 기업’에 시장이 집중되는 현상이 함께 벌어졌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든 곳에 존재’하는 아마존은 이 ‘승자독식’, 곧 “승자와 패자를 분리하는 제로섬의 재편 과정에서 압도적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회사”다.
정보통신 경제는 “일단 혁신을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아주 적은 추가 자본만으로도 막대한 수익을 산출”할 수 있기에, 과거 산업 경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승자독식을 강화한다. 아마존은 물류센터를 앞세워 ‘프라임 배송’으로 온라인 트래픽을 늘리고, 다시 높은 트래픽으로 제3자 업체들이 자신들의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하도록 해 비용은 낮추고 판매는 더 늘리는 ‘플라이휠’(flywheel) 전략으로 성장했다. 제3자 판매에 높은 수수료를 징수하면서도, 판매세는 내지 않아도 된다는 구멍을 활용해 20% 가까운 이윤을 챙겼다. 자신들이 쥐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해 잘 팔리는 제품들은 직접 판매함으로써 제3자 업체들을 몰아내 독점을 강화했다. 독점적 지위에 전방위적 로비까지 동원해 지방·주 정부 조달 사업에까지 진출해 지역 업체들을 고사시켰다. 온라인 상거래에서의 물류센터처럼, 데이터센터는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아마존에 막대한 지대를 가져다주는 기반이다.
아마존은 세금을 회피하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지역 경제를 황폐화하는 등 격차를 만들고 확대한다. 애초 시애틀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유부터가 인구가 좀 더 적은 곳에 터 잡아 판매세를 적게 내기 위함이었다. 세금을 적게 내는 곳에만 물류센터를 지었고, 지을 때마다 일자리 창출을 구실로 지방 정부에 막대한 규모의 조세를 감면받고 현금 등 인센티브까지 챙겼다. 2014년 일리노이주에서 20억달러, 미주리주에서 10억달러어치의 상품을 판매했지만 두 주에서 한 명도 고용하지 않았다. 반면 세금 회피에는 철저해서, 2009~2018년 벌어들인 265억달러의 수익에 대해 부담한 실질적인 세율은 모두 합해 3% 정도에 불과했다. 돈만 좇는 ‘입지’ 전략은 한 지역 안에서도 세수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고 알짜배기 땅의 가격만 부풀려, 부자는 더욱 부유하게, 계급·인종 소수자들은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반발은 ‘돈의 힘’으로 찍어 누른다. 정보통신 업계는 워싱턴디시의 ‘영향력 산업’을 접수하여 미국에서 가장 큰 로비력을 갖췄고, 아마존 창업주 제프 베이조스는 ‘워싱턴포스트’까지 인수했다. 백악관에서 국가의 예산·조달을 맡았던 공무원이 아마존에 합류해 공공 부문 조달 사업을 폈고, 언론비서관이었던 자가 아마존 대변인을 맡았다. 2017년 오하이오주에서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는 계획이 지역 공동체의 반발에 부닥치자, 아마존은 송전로를 우회하는 대신 여기에 드는 비용을 모든 전력 사용자에게 전가했다. 역진적 세금 구조로 주거·교통 기반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시애틀에서 2018년 규모가 큰 사업체에 세금을 부담시키는 안을 내놓자, 아마존은 이를 반대하는 후보를 후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하이테크’를 자랑하는 아마존의 가혹한 노동조건은 특히나 문제다. 과거 볼티모어 지역 자동차부품공장에 다니던 노동자는 평균 시간당 27달러를 받고 여러 부가급부도 제공받았으나, 현재 같은 장소에 들어선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시간당 12~13달러만 지급받을 뿐이다. 오랜 투쟁의 결과로 예전에는 노동조합이 있었으나 아마존은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렸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노조 결성을 방해해, 2022년에야 뉴욕 스태튼아일랜드 물류창고에서 간신히 첫 노조가 만들어졌을 정도. 운송 로봇(‘키바’)의 도입 등 효율을 자랑하지만, 노동자들은 해열제를 먹어가며 늘어난 작업량을 감당해야 한다.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는 촘촘한 시스템은 조금이라도 뒤처진 이들을 찾아내어 ‘계약 종료’(해고)를 통고한다.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어난 중상 사고는 다른 물류창고에 견줘 두 배 이상 많다.
지은이는 아마존이 처음 터 잡아 ‘초번영 도시’가 된 시애틀부터 아마존 물류센터 건설에 목매는 오하이오주 데이턴, 정보통신 업계가 ‘영향력 산업’을 접수한 워싱턴디시, ‘존엄한 노동’이 사라진 과거의 제조업 중심지 볼티모어, 아마존에 공공 조달 사업을 빼앗긴 지역 소매상들이 분투하고 있는 텍사스주 엘패소 등 다양한 지역을 가로지르며, 아마존의 성공 신화에 짓눌린 노동자, 소상공인, 지역 공동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또 승자독식을 해체하기 위해선 노동자들의 조직된 행동뿐 아니라 정부의 구실이 절실하다고 짚는다. 미국에서는 아마존을 비롯한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반독점 소송’이 한창이다. 아마존을 모델로 삼은 거대기업의 폐해가 날로 커져가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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