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불온사상’이 키운 토마스 신학의 자취를 찾아서 [책&생각]
토마스 아퀴나스
이성과 신앙을 조화시킨 스콜라 철학의 완성자
박승찬 지음 l 아르테 l 2만4000원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가 쓴 ‘토마스 아퀴나스’는 서양 중세 최고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삶과 사상을 살피는 여행기다. 아퀴나스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이탈리나 남부 로카세카 성에서 시작해 아퀴나스의 유해가 묻힌 프랑스 남부 툴루즈까지 답사한 기록이 담겼다.
부유한 귀족 란돌포 아퀴노의 아들로 태어난 아퀴나스는 15살에 나폴리대학에 입학하는데, 여기서 ‘토마스 신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만난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아랍 세계를 거쳐 막 유럽에 알려진 낯선 철학이었고, 플라톤 사상에 입각해 있던 전통 중세 신학과 어긋나는 지점이 많았다. 보수적인 가톨릭교회는 그 새로운 철학을 이단으로 몰아 배척했다. 하지만 그 시절 유럽 대학은 이 새로운 ‘불온사상’에 열광했다. 아퀴나스가 공부한 나폴리대학이 그런 곳 가운데 하나였다. 교황 세력과 대립하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의 영향권 안에 있던 나폴리대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지원했다. 아퀴나스는 이런 흐름을 타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이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더해 10대의 아퀴나스에게 지울 수 없는 영향을 준 것이 도미니코회였다. 도미니코회는 교회의 타락을 비판하고 수도자들의 청빈을 앞세운 탁발수도회였다. 아퀴나스는 도미니코회 수사들의 설교에 감동해 이 신생의 수도회에 입회했다. 고위 성직자가 되기를 바라던 부모는 아퀴나스의 선택을 되돌리려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아들의 뜻을 꺾지 못했다. 젊은 아퀴나스를 지적으로 감화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였다면, 도덕적으로 감화한 것은 도미니코회였다.
나폴리대학에 이어 아퀴나스의 탐구를 이끈 곳이 파리대학이었다. 파리대학은 당시 유럽 지성의 중심이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요람이었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미래의 신학체계를 쌓아 올릴 기둥을 찾아냈다. 파리대학이 아퀴나스에게 안긴 또 다른 행운은 저명한 신학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대알베르투스)와의 만남이었다. 파리대학 교수로 있던 알베르투스는 아퀴나스의 학문적 역량을 알아보고 가장 아끼는 제자로 삼았다. 알베르투스는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아퀴나스가 파리대학 교수가 되는 길도 열어주었다. 아퀴나스는 첫 번째 파리대학 재임(1256~1259) 이후 10년 뒤 한 번 더 파리대학 교수를 지냈다. 파리대학은 아퀴나스의 사상이 영근 곳이다.
아퀴나스는 49년의 짧은 생애 동안 400권에 이르는 저작을 남겼는데, 이 초인적인 작업의 결과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신학대전’이다. ‘신학대전’은 200쪽 분량의 책으로 50권에 이른다. 길지 않은 인생에 어떻게 그토록 방대한 저작을 쓸 수 있었을까? 비결은 ‘구술’이다. 아퀴나스는 3~4명의 비서에게 각기 다른 주제의 책을 동시에 구술했다. 해당 주제들에 대한 학문적 통달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비범한 집중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저술에 몰두하던 아퀴나스는 1273년 12월 나폴리의 산 도메니코 마조레 수도원에서 축일 미사를 봉헌하던 중 “갑자기 무엇엔가 얻어맞은 듯한” 상태에서 ‘신비한 체험’을 했고, 이후 모든 저술 활동을 중단했다. 아퀴나스는 비서에게 “이제껏 내가 쓴 모든 것은 지푸라기만도 못하게 여겨진다”는 말을 남기고 이듬해 3월 세상을 떠났다.
토마스 신학은 당대의 위험한 사상으로 통하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근간으로 삼아 구축된 것이었기에, 아퀴나스 생전에서 여러 차례 공격받았고 사후에도 토마스 신학의 여러 명제가 이단으로 단죄받았다. 그러나 아퀴나스의 영향력은 사후에 오히려 커졌다. 1323년 교황 요한 22세는 아퀴나스를 성인으로 선포했고 토마스 신학은 이단의 사슬에서 모두 풀려났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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