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찻길 옆에서 찾은 시간을 낭비하는 자유 [책&생각]

한겨레 2024. 6. 7. 05: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서점 리스본'은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소통을 꿈꾸며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방송 스튜디오에서 매일 같은 시간, 이야기와 음악을 나누다가 서점을 열고는 가장 한가운데 책을 보태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쯤 동그랗게 모여 앉아 소리 없이 책을 읽었고, 차별의 언어 없이 공격의 걱정 없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람을 16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내게 잘 맞는 책은 무엇일까' 궁금했던 사람들이 자주 그 앞에 멈춰 섭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 책방은요서점 리스본
서점 리스본의 2층 내부 모습.

‘서점 리스본’은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소통을 꿈꾸며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서점을 만든 사람은 라디오 작가로 오래 일했습니다. 방송 스튜디오에서 매일 같은 시간, 이야기와 음악을 나누다가 서점을 열고는 가장 한가운데 책을 보태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쯤 동그랗게 모여 앉아 소리 없이 책을 읽었고, 차별의 언어 없이 공격의 걱정 없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입니다.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주는 두어 시간이 있어 우리는 바깥세상의 날카로움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별명으로 ‘우리들의 낭만’이 있습니다. 단골이 작은 카드에 적어준 여섯 글자가 오래 남았습니다. 낭만이란 무엇일까, 내내 질문하고 있었는데 글쓰기 클럽 멤버의 글에서 문장 하나를 만났습니다. “청춘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마음껏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자유이다”. 낭만도 닮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잊는 것. 실제로 모여 앉은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자주 잊었습니다. 같이 있는 동안 모두가 청춘이었고 모두에게 낭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점 리스본의 1층 내부 모습.

서점 리스본은 2015년 12월에 문을 열었는데 공간을 만드는 데 여러 문구와 문장이 필요했습니다. ‘취향의 공동체’라는 말은 어느 매거진의 편집장님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실제로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지난주에 본 영화가 같아서 기뻤고, 주말에 다녀온 공연이 같아서 놀랐고, 오는 길에 들었던 음악이 똑같아 웃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해서 시간을 잊었고, 그러나 그 너머의 새로움과 다름에 기꺼이 물이 드느라 또 시간을 잊었습니다. 책은 점점 더 커다란 중력을 갖게 되었고 우리는 그 힘을 믿었습니다. 성장하는 서로를 마음껏 응원하던 날들이 쌓여서 지금의 서점 리스본이 되었습니다.

서점 리스본의 비밀책.

‘비밀책’은 2016년에, ‘생일책’은 2017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열두 달의 정기구독도 2017년부터였습니다. 굳이 책에 비밀이라든가 생일이라든가 이름을 붙인 것은 멀리 있던 사람들을 부르기 위해서였습니다. 진입로 혹은 연결고리라고 하면 될까요. 그러나 궁극으로 원하는 것은 각자가 자신에게 잘 맞는 책을 스스로 찾아 읽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엠비티아이(MBTI)별 맞춤책이 인기입니다. 사람을 16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내게 잘 맞는 책은 무엇일까’ 궁금했던 사람들이 자주 그 앞에 멈춰 섭니다. 손이 닿으면 한결 친밀해집니다. 손 닿은 책을 들고 서점을 나갈 확률이 높아집니다.

서점 리스본의 내부.
서점 리스본 외관.

서점 리스본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역시 ‘리스본’이라는 이름이겠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책과 영화에 기대어 있습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지루한 인생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우연히 만난 책 한 권 때문에 난생 처음 마음을 따라갑니다. 책 속 인물들은 혁명의 시간을 살았습니다. 불길이 주인공에게 옮겨붙었습니다. 난생처음 마음을 따라갑니다. 훌쩍 떠난 리스본에서 만난 것은 다른 시선과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지루한 그를 두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는 웃었습니다.

서점 리스본은 연남동 경의선 숲길가에 있습니다. 본래는 기찻길이었다가 이제는 공원이 되었는데 여전히 곳곳에 선로가 남아 있습니다. 우거진 나무 사이를 따라 숲길 공원 맨 끝에 다다르면 3층짜리 하얗고 좁고 긴 건물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흔히 등대를 닮았다고들 합니다. 거기 노란 불빛을 켜놓고 서 있습니다. 책이 가진 힘을 여전히 믿으며 오래된 서점으로 여기 있고 싶습니다. 오가는 길에 들러주시면 반갑게 맞이하겠습니다.

글·사진 정현주 서점 리스본 책방지기

서점 리스본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23길 60

instagram.com/bookshoplisbon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