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사건, 잡범보다 파렴치한 검찰권력의 민낯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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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는 인간의 성적 욕망이 거짓말을 자양분 삼아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 작업의 유일한 성과로 기대를 모은 김학의 사건 재수사는 오히려 김학의에게 확실한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았다. 권력기관중 유일하게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검찰에 더는 진상조사를 요구할 수 없게 됐고 검찰 개혁에 대한 검찰 기득권 세력의 반발도 더욱 거세졌다. () 이런 분위기는 문재인 정권 후반기에 검찰 개혁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가능하게 한 토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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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국가의 배신
김학의 사건이 예고한 파국, 검찰정권은 공정과 상식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이춘재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8000원
미국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는 인간의 성적 욕망이 거짓말을 자양분 삼아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그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영화에선 사인 간의 불륜이 소재이지만, 권력을 위임 받은 공직자가 상습적으로 저지른 행위라면 심각한 범죄다. 한국의 검찰총장 후보까지 올랐던 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스폰서 사업가들에게 “거액의 금품과 100 차례가 넘는 성접대”(뇌물수수)를 받고 집단 성폭력(특수강간)까지 저지른 사건을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으로 바꿔치기한 검찰 내 특정 집단의 수사 왜곡은 최악의 사례다.
‘검찰 국가의 배신’은 오랜 법조 취재 경력의 기자가 김학의 사건의 전말을 치밀하게 되짚고 문제점을 정리한 대한민국 검찰 부패 실록이다. 사건은 2013년 별장 성접대 영상 폭로로 처음 알려졌다. 이후 경찰 수사와 송치, 검찰의 수사 물타기와 뭉개기, 2019년 수사 재개, 김학의의 해외 도피 시도와 긴급출국금지, 피해 여성들에 대한 검찰의 겁박과 사건 프레임 바꿔치기, 1·2심에 이어 대법원의 파기 환송까지 롤러코스터를 탄 끝에 ‘무죄’ 확정(2022년)으로 끝났다. 검찰은 노골적인 제 식구 감싸기로 범죄자에겐 면죄부를, 피해자들에겐 인격적 모욕과 참담한 절망을 안겼다. “검찰이 더는 공익의 대표자가 아님을 선언한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지은이는 수사 과정뿐 아니라 공판 기록, 관련자 증언, 언론 보도를 망라한 방대한 취재와 교차 검증으로 사건의 실체를 꼼꼼하게 재구성했다. 1차 수사에서 검찰은 김학의에 대한 경찰의 통신사실 조회와 압수수색영장 신청, 출국금지요청을 번번이 기각했다. “수사 지휘를 가장한 수사 방해”였고, 경찰 수사팀은 인사 이동으로 사실상 해체돼 버렸다. 검찰 수사는 김학의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을 한 반면, 피해 여성들에 대해선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데 열을 올렸다.
이런 사정은 2차 수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사건을 한참이나 뭉개다가 뒤늦게 김학의의 성범죄에 ‘무혐의’ 처분을 하고, 문제의 동영상도 “등장 인물을 특정할 수 없다”며 무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추진한 검찰 개혁은 ‘조폭’을 방불케하는 검찰 집단의 반발에 부닥쳐 좌초됐는데, 김학의 사건이 큰 구실을 했다는 게 지은이의 시각이다.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 작업의 유일한 성과로 기대를 모은 김학의 사건 재수사는 오히려 김학의에게 확실한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았다. 권력기관중 유일하게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검찰에 더는 진상조사를 요구할 수 없게 됐고 검찰 개혁에 대한 검찰 기득권 세력의 반발도 더욱 거세졌다. (…) 이런 분위기는 문재인 정권 후반기에 검찰 개혁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가능하게 한 토양이 된다.”
그 흥미진진하고도 씁쓸한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오만과 술수가 넘치고 “반성과 성찰의 디엔에이(DNA)라곤 없는” 검찰의 행태에 역겨움이 치밀어 오른다. 지은이는 “지금도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짓을 버젓이 저지르는”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선 “민주주의를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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