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째지게’ 맛있는 ‘째복물회’…지금 동해 가서 호로록
동해서만 잡히는 ‘민들조개’ 넣은 여름 별미
고추장·사과·매실진액 등으로 육수 만들어
소면 풀어 채소와 같이 먹으면 시원함 ‘그만’
멋지게 파도를 가르는 해양 스포츠 ‘서핑’의 성지로 잘 알려진 강원 양양은 동해의 떠오르는 인기 휴양지다. 휴양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먹는 재미를 더할 맛있는 음식이다. 동해안은 생선회·해삼·오징어 등 다양한 해산물을 넣어 시원하게 먹는 물회가 유명하다. 특히 이곳 양양엔 동해에서만 잡혀 외지인은 들어보지도 못한 조개 ‘째복’으로 만든 ‘째복 물회’가 있다. 새콤하고 차가운 육수에 쫄깃한 째복 조갯살을 넣은 이 향토음식은 더운 여름에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줄 양양의 별미다.
째복은 동해안의 3대 토종 조개인 ‘민들조개’를 부르는 강원지역 방언이다. 다른 조개보다 크기가 작고 쩨쩨하게 생겼다 해서 째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민들조개는 백합과 조개로 3∼5㎝ 크기에 둥근 삼각형 모양이다. 회백색 껍데기에 사방으로 퍼진 거미줄 모양의 예쁜 무늬가 눈에 띈다. 얕은 바다 밑 모래에 사는 민들조개는 5월부터 맛이 들기 시작하는데 6월 산란기 직전 가장 맛이 좋다. 민들조개를 취급하는 식당에선 5월말까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민들조개를 한가득 잡아 그대로 냉동한 후 사계절 내내 별미로 제공한다.
민들조개는 양양 바닷가에선 흔한 조개다. 옛날엔 지금보다 그 개체수가 훨씬 많아 얕은 바다의 모래를 발로 쓱 밀면 조개 대여섯개가 발에 치일 정도였다고 한다. 양양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김철우씨(59)는 어릴 적 바다에서 민들조개를 가지고 놀던 기억을 떠올렸다.
“동네 친구들과 정암해변에서 놀다 발가락에 걸리는 민들조개를 한가득 주워서 바지 주머니에 넣어 집에 갔죠. 집에선 어머니가 그 조개로 고추장을 풀어 국수를 끓여 주시곤 했어요.”
양양 주민들만 즐기던 민들조개의 맛을 이곳에 놀러 온 방문객도 알게 됐다. 양양종합여객터미널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식당 ‘양양째복’에선 다양한 민들조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탕·덮밥·물회·무침 등 종류도 많다. 식당 사장인 한정순씨(57)는 “민들조개는 비린 맛이 없고 깔끔해 어떤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며 “날씨가 더운 여름철엔 물회를 가장 많이 찾는다”고 소개했다.
조개를 주재료로 넣는 물회는 어떻게 만들까? 정암해변·낙산해변·동호해변 등 양양 바닷가에서 잡은 민들조개는 4일 정도 해감한 뒤 식당에 들여온다. 깨끗이 씻은 조개를 껍데기째로 삶는다. 오래 삶으면 살이 질겨지기 때문에 삶는 시간은 회백색 껍데기가 연한 갈색빛을 띠고 조개 입이 살짝 벌어질 때까지가 적당하다. 껍데기에서 살을 다 발라낸 후 남은 모래나 불순물이 없도록 한번 더 헹군다. 뽀얗게 삶은 조갯살을 당근·상추·오이 같은 갖가지 채소와 함께 그릇에 담는다. 육수는 고추장을 곱게 풀어 식초·소금 등으로 양념하고 사과·배·매실진액을 이용해 단맛을 낸다. 그릇에 육수를 붓고 소면 사리 한 덩이까지 올려주면 배도 든든한 민들조개 물회가 완성된다. 한씨는 민들조개를 처음 본 외지인의 반응이 식당을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180도 다르단다.
“특이한 이름 탓인지 째복(민들조개)을 생선인 ‘복어’의 한 종류라고 오해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식당에 들어와서 조개인 걸 알고 실망하는 눈치인데, 음식이 나온 후 맛보고 나면 다들 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너무 좋다며 배부르게 먹고 나가죠.”
조갯살이 담뿍 올라간 물회가 나왔다. 생선회가 없는 물회의 맛은 어떨지 궁금하다. 차가운 그릇을 앞으로 당겨 무심하게 얹은 소면을 육수에 살살 풀어 채소와 조갯살을 함께 섞는다. 조갯살을 먼저 한점 먹어본다. 조개를 차갑게 먹으면 비릴 것 같다는 걱정은 편견이었다. 비린 맛은 전혀 없고 찬 육수에 담겨 한층 더 쫄깃해진 식감과 씹을수록 느껴지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채소와 소면으로 조갯살을 감싸 먹어보자. 채소가 머금은 육수와 함께 입 안에 감칠맛이 돈다. 마지막까지 씹히는 조갯살을 삼키기 전 육수를 그릇째 들고 들이켜면 목덜미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물회만 먹기 아쉽다면 민들조개탕과 무침도 함께 맛보자. 민들조개, 청양고추와 각종 채소를 넣고 맑게 끓인 탕은 어느 조개탕보다도 시원하고 칼칼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민들조개 무침에 소면이나 밥을 비벼 먹어도 좋다.
탁 트인 바다가 생각나는 여름철.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 양양에서 째복 물회와 함께 더위를 날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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