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가 덫에 걸렸다"는 여권... 대법원 "그렇게 받아도 위법"

최동순 2024. 6. 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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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백 사건 함정취재 법적 쟁점은?]
영광군수 '함정뇌물' 유죄와 똑 닮은꼴
法 "사인이 덫 놓았다면 면책 해당 안돼"
선친? 금품? 최재영 만난 이유도 변수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왼쪽 두 번째) 여사가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9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보훈 가족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건희 여사 사건의 본질은 종북 인사들의 몰카 함정 취재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의 이 일갈은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바라보는 대통령실과 여권 일부 인사들의 관점을 잘 보여주는 발언이다. 김 여사가 가방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최재영 목사 등이 애초에 선물 주는 장면을 찍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접근한 것이기 때문에 김 여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 판례는 어떨까. 공직자가 얽힌 금품수수 사건에서 대법원은 '민간인이 놓은 뇌물의 덫'에 걸린 경우 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본다. 수사기관이 범죄를 의도적으로 유발하기 위해 설치한 함정만 아니라면, 함정에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면책받을 수는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함정뇌물도 처벌할 수 있다

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범의 유발형 함정수사로 기소된 사건을 "적법하지 않은 소추권 행사"로 판단해, 공소기각(유무죄 판결을 내리지 않고 검찰의 기소 자체를 무효로 판단)을 선고해 왔다. 수사기관이 범죄를 고의로 유발한 뒤 소추해 처벌하는 것은 금반언(禁反言)의 원칙(모순된 행위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다.

다만 이런 면책은 어디까지나 수사기관이 덫을 놓았을 때만 적용된다. 수사기관이 개입되지 않고 일반인이 함정을 설치한 경우 피고인의 책임을 묻는다. 강종만(70) 전 전남 영광군수의 '함정 뇌물'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이 사건은 △반대 세력과 공모해 금품을 마련하고 △개인적 인연을 빌미로 접근해 금품을 전달하고 증거를 채집한 뒤 △이를 직접 신고했다는 점에서 김 여사 사건과 유사하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 등에 따르면 강 전 군수의 고등학교 후배 지모씨는 2006년 12월 하수종말처리장 사업 수주 대가로 강 전 군수에게 1억 원을 건넸다. 강 전 군수의 정치적 경쟁자인 정기호 후보 측과 꾸민 함정이었다. 지씨는 ①뇌물공여 전후로 정 후보의 측근과 총 169차례 통화했고 ②서울에서 내려온 제3의 인물에게 뇌물용 자금 1억 원과 보이스펜을 제공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③보이스펜으로 뇌물공여 당시 상황을 녹음했고 ④강 전 군수가 "2월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하자, 발주를 기다리지 않고 뇌물을 검찰에 신고했다. 정 후보는 강 전 군수가 뇌물 혐의로 군수직을 상실한 뒤, 재보궐 선거로 영광군수가 됐다. 강 전 군수 입장에선 정치공작에 당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강 전 군수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함정수사와 달리, '사인에 의한 함정교사'는 설령 그로 인해 피유인자(강 전 군수)의 범의가 유발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유로 피유인자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며 "범죄를 적발해야 하는 국가로서는 범죄가 함정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포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함정 교사는 피고인의 책임을 면하게 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오로지 함정에 빠뜨릴 의사로 금품을 공여한 경우에도, 공무원이 그 금품을 직무와 관련해 수수한다는 의사를 가지고 받아들이면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직무관련성 인지 여부가 쟁점

최재영 목사가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 피의자 신분 조사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물론 김 여사 사건은 뇌물죄가 아닌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이지만, 두 조항 모두 공직자의 청렴성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 결국 여사 사건에서 함정취재 여부는 법적 책임을 따지기 위해 본질적으로 고려할 사안이 아니란 얘기다.

그것보다는 김 여사가 직무 관련 금품 수수라는 점을 인지했는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몰래 촬영한 함정취재라는 점이 이목을 끈 건 사실이지만, 법리적으로는 김 여사가 어떤 이유에서 그를 만나고 선물을 받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친과의 친분 때문에 최 목사를 어쩔 수 없이 만난 것인지, 청탁을 들어주고 금전적 이익을 얻으려 한 것인지가 사법처리 여부를 가를 것이라는 얘기다.

법원 판례상 김 여사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정황이 있기는 하다. 대법원은 단순히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회상규나 교분에 의한 것인지를 꼼꼼히 따진다. 최 목사가 "큰형님께 보여드리고 싶으니 아버님 사진 좀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등 선친과 인연을 끊임없이 강조해 접견이 성사된 점은 김 여사에게 유리하다. 일찍 별세한 선친에 대한 평판에 누가 될까 봐 만남이나 선물을 거절하지 못했다는 항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물 사진을 보여 주자 김 여사가 만나줬다"는 고발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 여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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