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코드를 풀면 김기린이 보일까… [Weekend 문화]

유선준 2024. 6. 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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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작고 후 첫 개인전 열어
안과 밖 연작·미공개 유화 40점 소개
단색의 캔버스 이면엔 메시지 느껴져
무언가 숨겨져 있는 '비밀코드' 같아
김기린 개인전 '무언의 영역' 전시 전경
2016년 당시 김기린 화백. 갤러리현대 제공

지난 2021년 세상을 떠난 화가 김기린(1936∼2021)은 박서보 등과 가까이 교류하며 활동했던 국내 대표 단색화가였다. 특히 미술계에선 '색으로 써진 시(詩)'라고 평가받으며, '단색의 대가'로 우뚝 섰지만 다른 유명 화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에서 내달 14일까지 열리는 김기린의 '무언의 영역'전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김기린의 삶을 소개하며, 다른 단색화가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던 김기린을 조명하는 전시다.

그가 별세한 후 첫 전시이며, 갤러리현대에서 8년 만에 선보이는 그의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 타이틀인 '무언의 영역'은 프랑스 미술평론가 사이먼 몰리가 쓴 에세이 '무언의 메시지(Undeclared Messages)'에서 차용한 제목이기도 하다.

전시에서는 1970년작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연작과 1980년대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했던 '안과 밖' 연작과 함께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종이에 그린 유화 작업 등 40여점이 소개됐다.

생전 가깝게 지냈던 박서보 화백이 1979년 한국 화단의 소식을 전하며 한국 전시를 위해 작품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던 편지, 프랑스 개인전 당시 현지 언론의 기사, 김창열 화백과 함께 찍은 사진, 작가가 쓴 시 등 아카이브 자료도 함께 볼 수 있다.

전시 개막 전날인 지난 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기린 작품을 설명했던 사이먼 몰리는 "김기린의 작업은 단색조 작가들과는 무언가 다르다고 느꼈다"며 "(그가 표현한 색의) 이면에 뭐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김기린 작품은 무언가 메시지가 있다고 느껴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이먼 몰리의 말처럼 김기린 작품 대부분은 색감이 단조롭지만 무언의 메시지가 숨겨 있는 '비밀코드'를 연상케 한다. 특히 김기린의 1970년대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흑단색화'(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는 분명 그림이 존재하는데, 빠져들어야만 보이는 무위의 도가 사상을 연결 짓게 한다.

생전 김기린이 "(내 그림은) 1차, 2차, 3차 공간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공간 '지각 현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라고 밝힌 것처럼 그의 작품들은 단조로운 색감에서도 작품에 빠져드는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안과 밖' 연작 시리즈도 그의 미술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작업하던 김기린에겐 음악이 곧 색이었던 만큼 '안과 밖' 시리즈에는 운율과 리듬감이 투영돼 있다.

'안과 밖 1'(1985~1986)은 오일 물감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려 최소 30겹 이상의 점을 지속적으로 찍어 완성됐다. 오톨도톨한 점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시간차를 두고 쌓여간 점이 머금은 시간과 온도, 습도에 따른 차이가 묘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표면은 마치 심장 박동처럼 절제된 운율과 리듬으로 꽉 채워졌는데, 자연광 혹은 조명의 위치에 따라 다른 빛깔로 체험되는 특색이 있다.

'안과 밖 3'(1997)은 한지가 유채를 머금는 속도와 최적의 농도를 탐구해가는 과정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2층 전시장에 함께 놓인 그의 시처럼 작품 왼쪽의 파란색 점은 '회화로 표현한 시'를 연상케 한다. 이밖에 '안과 밖 4'(1997)는 우리의 지각현상과 관계하는 '장'으로서의 회화를 추구하는 작품이다. 특히 작가의 연속된 붓질로 감상자의 지각현상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갤러리현대 측은 "김기린 작고 이후 처음 열리는 개인전인 만큼 '화면에 쓰인 시'라는 키워드로 그의 생애에 집중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한편, 김기린은 함경남도 고원 출신으로 14세 때인 1950년 월남했다. 본명은 김정환이며, '기린'이라는 이름은 고교 동창이 '너는 목이 짧으니 기린이라고 하라'고 붙여준 별명이다. 시인을 꿈꿨던 김정환이 화가로 변신하면서 김기린이 됐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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