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움직이는 듯한 ‘시녀들’… 피카소도 반해 58차례 오마주
〈1〉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독특한 마무리로 움직임 포착… 고야와 함께 인상파 탄생 이끌어
프라도 미술관 큐레이터 페레스… “미래 향해 과감하게 펼친 작품”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은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와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프라도 미술관을 대표하는 예술가는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 등 17∼18세기 스페인 작가들이다. 두 미술가는 인상파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다
이러한 마무리 방식은 선 원근법이나 해부학을 이용해 대상을 그렸던 라파엘로 등 일부 르네상스 화가들의 방식과 다르다. 라파엘로의 그림에선 모든 것이 얼어붙은 느낌이라면, 벨라스케스의 회화는 일상 속 움직이는 사람들의 순간을 포착한 느낌을 자아낸다. 페레스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움직인다. 정적일 때는 거의 없다”며 “이런 실질적 시각을 충실히 표현하는 것이 벨라스케스의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기법을 더 밀고 나아가 빠르게 변하는 도시 풍경을 담은 것이 인상파 예술이다.
벨라스케스는 그림 속 인물의 배치를 통해서도 율동감을 만들었다. “치마의 큰 폭을 활용해 인물이 점유하는 ‘공간’을 창조해낸 것을 볼 수 있다”며 “이 그림은 실제로는 바닥에서 가까운 낮은 위치에 걸려 있었는데, 방에 들어서면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고 전했다고 큐레이터는 설명했다.
‘시녀들’은 주제도 파격적이다. 이 그림에서 확실한 것은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 중 가운데 위치한 중심인물이 다섯 살의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라는 것. 궁정 작가였던 벨라스케스는 가장 왼쪽의 이젤 앞에 서 있다. 작품 중앙부 뒤편 벽에 내걸린 거울 속에는 당시 왕인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가 서 있다.
● 초상화? 역사화? 수수께끼 그림
이 그림을 왕실 구성원들의 초상화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여백이 많다. 보통 왕실 초상화는 인물을 중심으로 화려한 배경을 채우거나, 말을 타는 모습 등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시녀들’에서는 인물들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실제로 ‘시녀들’은 1666년 스페인 왕실 소장 미술품 목록에선 “시녀들 및 여자 난쟁이와 함께 있는 공주의 초상화”로 기술돼 있었고, 17세기 말 몇 궁정 문서에선 “벨라스케스 자신의 초상화”라고 언급됐다.
무엇이 답일까. 페레스는 “‘시녀들’은 수많은 질문과 답이 교차하는 그림”이라며 “내용을 보면 초상화이지만 공간, 행동, 의미의 복잡성을 따져 보면 르네상스 시대 역사화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벨라스케스가 후대에 기억될 것을 인식하고 과감하게 펼친 미래를 향한 유산”이라고 했다.
미술의 역사에서 이 같은 파격은 혼란기에 등장했다. 르네상스 예술은 전쟁과 흑사병으로 인한 혼란기를 겪던 이탈리아 도시 국가에서 탄생했고, 인상주의 예술은 산업혁명과 도시화를 배경으로 했다. ‘시녀들’이 탄생할 때도 스페인 왕실은 후계자 문제, 포르투갈과 카탈루냐의 독립 문제와 세비야 인구 절반이 사망한 전염병 문제를 겪고 있었다.
혼란기는 과거의 권위는 내려놓고 오래된 경계를 넘어가려는 시도가 발생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페레스는 “이때 스페인 대표 극작가인 칼데론도 활약했다”며 “가톨릭 이슬람 유대 문화 등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가운데 스페인 특유의 소탈한 현실에 대한 애정이 스페인 궁정 문화의 황금기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국제적인 언어’로서 미술 조명
프라도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컬렉션 중 하나인 17세기 스페인 미술의 보존과 연구를 담당해 온 페레스는 1999년부터 미술관에서 일하며 변화를 지켜본 산증인이다. 그는 프라도 미술관이 ‘스페인 미술’, ‘이탈리아 미술’, ‘플랑드르 미술’ 등을 국가별로 나눠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언어’로서 예술을 조명하고 있음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실제 프라도 미술관은 이러한 왕실 소장품을 기반으로 유럽의 화가들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국제적 흐름을 반영한 큐레이팅을 보여 주고 있었다. 메인 갤러리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색채 사용을 보여 주었던 베네치아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고 그다음으로는 플랑드르 화가인 루벤스의 작품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미술관의 가장 중심이 되는 큰 공간에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걸려 있다.
페레스는 “벨라스케스는 베네치아 화가들의 아들이자 루벤스의 형제와도 같다”며 “18세기부터 미술사가 국가를 관점으로 쓰여 왔는데, 이것이 15∼17세기 활발한 이동과 교류가 있던 시대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프라도 미술관은 현재 큐레이팅에서 국경을 넘는 예술가들의 ‘연결’을 강조하고, 사실상 미술이 국제적인 언어였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드리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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