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참전 용사를 기억하자

경기일보 2024. 6.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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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재 정치부장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현충일에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오찬에 참석한 유공자들을 한 명 한 명 거명하며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우리 사회가 최고의 예우로 보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과 그 유족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국가의 마땅한 책무이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6년 9월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 강릉시 부근에 좌초됐다. 이른바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다.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 26명이 강릉 일대에 침투한 사건으로 우리나라 육군은 49일간 소탕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잠수함 승조원과 대한민국 군인,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승조원 1명이 생포됐다. 육군 28개 부대, 해군 1개 함대, 공군 1개 전투비행단, 수십만의 예비군, 경찰병력이 참여했다. 이 작전은 평균 일일 전투병력 4만2천명, 연일 전투인원은 150만명에 이르는 거대한 작전이었다. 공식적으로 군인 12명, 예비군 1명, 경찰 1명, 민간인 4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27명이며 민간 손실액은 2천억원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필자는 당시 육군 모 부대 복무 중에 이 작전에 투입됐다. 무장공비 침투지역에 헬기를 타고 갔다. 실탄과 수류탄, 50㎜ 고폭탄을 지급받고 수색 정찰과 매복에 들어갔다. 작전 중 아군 사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작전에 투입됐던 특전사 소속 간부가 헬기를 타고 내려오던 중 머리에 총알을 맞고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작전 시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살상 능력이 뛰어난 적과 조우한다는 상상만 해도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피할 수 없는 임무였다. 49일간의 작전이 마무리되고 대부분의 아군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복귀하지 못한 동료 아군도 상당수 있었다.

생포된 간첩의 증언에 의하면 임무의 진짜 목적은 김영삼 대통령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1996년 10월7일 춘천시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전에 참석하는 김 대통령을 저격할 계획이었다. 잠수함이 좌초되지 않았다면 국가 요인이 다수 암살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날 윤 대통령이 마련한 오찬에는 제2연평해전 참전 용사인 황창규 원사, 연평도 포격전에 참전했던 정경식 준위 등 서해 수호 장병 대표와 군 복무 중 순직한 고 전새한 이병의 유족, 임무 도중 순직한 고 장용훈 경장·고 허승민 소방위의 유족들도 함께 자리했다. 6·25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박동군, 박차생 참전 용사와 최근 유해가 발굴된 고 전병섭 하사의 조카 전춘자씨가 특별 초청 대상자로 참석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모든 분은 최고의 예우로 보답해야 한다. 특별히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참전 용사로서 함께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동료 영웅들과 그들의 유가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길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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