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GC녹십자, 희소 질환 ‘파브리병’ 신약 개발 손잡은 이유는

박지민 기자 2024. 6. 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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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리스크 낮추기’ 공동 전략

국내 매출 상위 5대 제약사 중 2곳인 한미약품과 GC녹십자는 유전성 희소 질환인 파브리병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파브리병은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는 세포 소기관 ‘리소좀’의 효소 이상으로 당지질이 과다 축적돼 사망에 이르는 질환이다. 환자들은 현재 2주마다 한 번씩 병원을 찾아가 정맥 주사를 몇 시간 동안 맞는 치료를 받고 있는데, 두 회사가 공동 개발 중인 신약은 월 1회 피하(皮下) 투여만 하면 된다.

한미약품이 특허를 가진 후보물질 ‘LA-GLA’에 대해 GC녹십자가 임상, 개발 등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개발 중인 신약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지난달 희소 의약품으로 지정되는 등 수요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GC녹십자와 함께 글로벌 임상시험계획(IND) 신청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신약 공동 연구·개발(R&D)이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금까지 제약업계에서는 서로의 영업망을 이용해 약품을 공동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제는 R&D 단계부터 손을 잡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드는 신약 개발의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그래픽=김하경

◇회사 간 강점 결합해 신약 개발

국내 제약 기업의 신약 개발 노하우가 쌓인 데다, 회사마다 강점이 달라 공동 연구 개발로 협력할 때 시너지가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은 단독으로 성공하면 막대한 이익을 낼 수 있지만, 그 단계까지 과정이 너무 험난하고 성공률도 낮다”며 “공동 개발을 통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을 ‘로 리스크 미들 리턴(저위험 중간 수익)’으로 바꾸는 셈”이라고 했다.

공동 R&D의 대표적 유형이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강한 회사가 임상과 허가, 제조 등에 강점을 가진 회사와 손잡는 것이다. 대원제약은 일동제약의 신약 R&D 자회사 유노비아와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인 ‘P-CAB(칼륨경쟁적 위산분비 억제제)’ 공동 개발과 라이선스 계약을 지난달 29일 체결했다. P-CAB는 위산 분비에 연관된 효소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위산 관련 장애를 치료하는데, 속쓰림 증상 등을 개선해 주목받고 있다. 대원제약은 유노비아가 발굴해 보유한 P-CAB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 개발 등을 수행하고, 향후 허가부터 제조·판매 등을 포함한 국내 사업화 권리를 얻게 된다. 백인환 대원제약 대표는 “국내 제약사 사이에서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신약 개발의 각 단계를 나누어 공동 개발하는 모범 사례를 만들게 된 것”이라고 했다.

동아쏘시오홀딩스의 원료의약품 자회사인 에스티팜은 차백신연구소와 메신저 리보핵산(mRNA) 의약품 공동 개발에 나섰다. 에스티팜은 mRNA 플랫폼 기술을 토대로 후보물질을 도출하고, 차백신연구소는 후보 물질에 대한 임상 시험 등 모든 개발 과정을 총괄한다. 각자 강점이 있는 영역에서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차백신연구소는 치료제 상업화 권리를, 에스티팜은 치료제 독점 생산·공급권을 갖게 된다.

◇바이오 벤처와 함께 AI로 신약 연구

제약업체가 바이오 벤처기업과 손잡는 경우도 늘고 있다. GC녹십자는 바이오 벤처인 노벨파마와 유전 질환인 산필리포 증후군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고, 유한양행은 인벤티지랩과 올해 1월 비만·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하기로 협의했다. 유망한 바이오텍들의 기반기술과 대형 제약사의 노하우를 합쳐 효율적으로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대형 제약사들이 과거에는 공동 협력을 꺼리고 단독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으나, 이제 창업주의 3·4세들이 경영을 맡게 되면서 소모적 경쟁보다는 합리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상업화를 하는 것에 열려 있는 분위기”라고 했다.

제약업체들이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플랫폼과 손잡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JW중외제약은 지난달 AI 신약 개발 기업 온코크로스와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JW중외제약이 개발 중인 항암, 재생의학 분야 신약에 온코크로스의 AI 신약 개발 플랫폼 ‘랩터 AI’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신약은 1999년 이후 25년간 37종에 불과할 정도로 개발에 속도가 붙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규모를 가리지 않고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함께 신약 개발에 나서면서 혁신 신약들이 속속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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