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함께 약해지자는 ‘공산주의 KBL’(한국농구연맹)

이영빈 기자 2024. 6. 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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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1일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부산 KCC와 원주 DB의 4차전 경기. 부산 KCC 라건아가 팀 동료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고 있다. /뉴스1

프로스포츠 리그는 최강팀이 생겨났을 때 흥행한다. 마이클 조던의 1990년대 시카고 불스, 스타들이 너무 많아 갈락티코(은하수)라고 불렸던 2000년대 레알 마드리드 등이 그랬다. 최강팀의 패권을 빼앗아오기 위한 혈투가 벌어진다. 최강팀이 더 흥하거나 거짓말처럼 몰락하면서 서사가 생긴다. 리그는 이런 팀들과 함께 일어선다.

한국농구연맹(KBL)엔 그런 최강팀이 없는지 오래됐다. 2015년 울산 모비스 이후 연속 우승이 없다. KBL은 ‘공평한 리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무한 경쟁을 추구하는 프로스포츠가 공평함을 좇는다는 게 형용모순이지만 KBL은 기이하게도 그렇다.

사례가 많다. 한국 프로농구 무대에 ‘귀화 혼혈’ 선수가 입성하던 2009년. KBL은 이들이 3년마다 강제로 팀을 옮겨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혼혈 출신으로 귀화한 선수들이 뛰어난 기량을 가진 만큼 전력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이유였다. 선수들이 ‘우리는 팀을 정할 권리가 없느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KBL은 한 팀씩 귀화 혼혈 선수를 보유한 뒤에야 이 규정을 폐지했다.

단순한 전력 보강도 어렵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려면 돈이 몇 배로 들기 때문. 리그 정상급 선수(연봉 30위 이내)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그의 이전 시즌 연봉 2배를 이전 소속팀에 지불해야 한다. 자유 계약인데도 그렇다. 그래서 연봉 31위 선수가 더 많은 인기를 누리는 기현상도 생겨난다. 이 제약들을 딛고 강팀으로 군림한다 해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KBL 우승팀은 그다음 시즌 리그 메인 스폰서를 담당한다. 우승 상금은 1억원인데, 스폰서 비용은 30억원이다. 한 팀 1년 예산은 70억~80억원 정도. 한 구단 관계자는 “우승을 해도 남는 게 거의 없다. 인기 많은 준우승 팀 정도가 딱 좋다”라고 했다.

KBL은 매번 “팀 간 전력 불균형 초래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한 팀이 유별나게 강해지면 나머지 팀들의 항의가 심하다고 한다. 하지만 규정들의 방향이 이상하다. 약팀을 돕는 게 아니라 모두가 강해지지 말자는 쪽으로 향한다. 2m가 넘는 외국 선수 영입을 금지시키거나, 미국 프로농구(NBA) 경력이 있으면 KBL에선 못 뛴다는 식의 규정들도 그랬다. 함께 가난해지는 공산주의와 비슷하다. 규정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손쉬운 전력 상승 방법은 좋은 외국 선수를 데려오는 것. KBL이 외인 천하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불꽃이 튀기지 않는 리그는 침체될 뿐이다. KBL 관중 수는 2011-2012시즌 130만명을 돌파한 뒤 계속 내리막 추세다. 2019-2020시즌 65만명까지 떨어졌다가 지난 시즌 83만명으로 소폭 반등에 성공했다. 연일 최다 관중 기록을 깨나가고 있는 프로축구와 프로야구에 비교하면 아쉬운 수치다.

한국 국적이 있지만 너무 잘한다는 이유로 외국 선수로 분류됐던 라건아. 올해 소속팀과 계약이 끝난 라건아는 이제 나이 들어 기량이 하락한 만큼 한국 선수로 뛰길 원했다. 그러나 KBL 이사회는 팀들 전력이 불균형해진다면서 계속 외국 선수로서 뛰라고 정했다. 노쇠한 35세 라건아에게 소중한 외국 선수 자리를 내줄 구단은 없었다. 12년을 KBL에서만 뛰어온 라건아는 배웅도 없이 쓸쓸히 외국 리그를 알아보고 있다. 형평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KBL에선 특별할 것 없는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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