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23] 진심이면 다 괜찮은가
별종은 별종이다. 괴팍하고 거친 언행이야 오래전부터 아는 바. 28년 만에 연임(連任)하지 못한 대통령이 또 하겠노라 나선 것도 뚝심이라 치자. 성추행 입막음 사건으로 받은 혐의 34건 모두 유죄 평결이 나올 만큼 뒤가 구리지 않은가. 그런데도 호감도가 경쟁 후보와 엇비슷이 나오는 걸 보면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 또한 만만찮은가 보다.
‘일부 지지자는 유죄 평결을 내린 배심원 신상 털기를 시도하고 있다.’ 배심원일 법한 사람 이름이나 주소 따위를 퍼뜨리는 일에 ‘신상 털기’가 알맞은 표현일까. ‘털다’는 한마디로 ‘남의 재물을 빼앗거나 훔치다’라는 뜻. 한데 개인 정보는 재물(財物)이 아닌지라 대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빼앗거나 훔치는 게 아니라 여럿에게 드러내는 행위를 가리켰으니 ‘털다’가 아니라 ‘캐다’나 ‘들추다’가 알맞다.
비유적 표현이라 할 수 있지 않으냐? 언젠가 쓰임새가 넓어진다면야 모르되, 딱 들어맞는 말을 구태여 팽개칠 까닭이 없다. 더욱이 규범에 맞게 잘 다듬어야 할 종이 신문에서 제목이며 본문에 버젓이 쓰다니. 아무렇게나 말 갖다 붙이는 인터넷 매체와 다를 바 없지 싶다.
엇비슷해 보여서 잘못 쓰는 말이 이뿐이랴. ‘곰탕에 진심인 사장님과’ ‘떡볶이에 진심인 모습’ ‘올해 투수 보강에 진심인 구단은’…. 진심(眞心)은 말 그대로 ‘참된 마음, 거짓 없는 마음’인데. ‘곰탕에 참된 마음’은 대체 뭔 소리람. 열과 성을 다해 곰탕을 끓여 낸다는 뜻일 터. 그럼 ‘정성껏 곰탕을 만드는’이 옳다. ‘떡볶이에 진심’도 그렇다. 떡볶이를 참으로 좋아한다는 말이겠지. 온 힘 쏟아도 모자랄 판에 좋은 선수를 거짓된 마음으로 데려가려는 팀이 있을까. ‘투수 보강에 진력(盡力)하는’ 해야 맞겠다.
유죄 평결 뒤 24시간 동안 약 730억원. 미국 역사상 처음인 중범죄 전직 대통령한테 쏟아진 후원금이란다. 그는 심지어 감방에 가도 출마할 수 있고 당선될 수도 있다는데. 진심으로 걱정스럽다, 남 일 같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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