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곽도영]‘삼무원’ 직장인들도 마음속 불꽃은 있다

곽도영 산업1부 기자 2024. 6. 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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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니는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다.

한 전직 삼성전자 사장은 퇴임 후 직장인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

그럴 때마다 '이들의 마음속에도 분명히 불꽃이 있는데, 그것을 회사가 불러일으켜 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삼무원의 태만과 귀족노조의 보신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회사는 다시 한번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불꽃을 고민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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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도영 산업1부 기자

회사를 다니는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다. 생계유지와 자아실현, 사회에 대한 소속감과 조직에 기여한다는 효능감 같은 것들이다. 한국의 경우 다음 세대로 넘어갈수록 생계유지를 제외한 무형의 이유들이 급속하게 가치를 잃고 있다.

특히 대기업에선 더 많은 월급이 지상목표가 되기도 한다. 한 푼이라도 더 주는 회사로 이직을 망설이지 않는 동시에, 한 푼이라도 지불되지 않는 노동은 절대 나서서 하지 않으려는 보신주의가 퍼지고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삼무원’(삼성+공무원), ‘월급루팡’(일하지 않고 근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는 자조도 흔히 나온다.

한 전직 삼성전자 사장은 퇴임 후 직장인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 그럴 때마다 ‘이들의 마음속에도 분명히 불꽃이 있는데, 그것을 회사가 불러일으켜 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가 삼성에서 목격했던 불꽃의 한 사례는 이렇다. 2022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과 빌 게이츠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게이츠재단) 이사장이 합심해 저개발국용 화장실 프로젝트에 성공했을 때다. 삼성의 사회적 가치(SV) 확산을 위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 하수 처리가 필요 없는 화장실을 개발한 것이었다.

초기에 삼성에서 이 프로젝트에 차출된 임직원들은 회사 핵심 업무에서 벗어난 일을 맡았던 만큼 사기가 꺾여 있었다고 한다. 반도체나 스마트폰 공정이 아닌, 생전 처음 해보는 하수 처리 연구엔 난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에서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걸 보여주자”는 독려가 퍼지면서 2년여 만에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당시 게이츠 이사장이 감동한 나머지 이 회장에게 어떻게든 크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하자 이 회장은 “그럼 이사장이 직접 해당 직원들을 격려해 달라”고 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흔쾌히 수락했고, 당시 팬데믹 시국이었으므로 해당 연구원들을 모두 모아 화상통화로 직접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당시 연구원들은 “퇴근 후 늘 하수 냄새에 찌들어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설명할 말이 없었는데, 게이츠 이사장이 격려했다고 하니 자랑스러운 아빠가 됐다”고 했다.

이 사례에서 엿볼 수 있는 불꽃은 세 가지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걸 보여주자’는 구성원의 자긍심과 ‘세상에 기여한다’는 효능감, 그리고 이를 ‘회장과 빌 게이츠가 인정해 줬다’는 자부심이다.

회사는 돈 벌려고 모인 집단이지만 결국 사람이 모이는 사회이기도 하다.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시몬 스톨조프는 현시대 직장인들의 세태를 분석한 저서에서 “사회적·종교적 유대 관계가 약해지자, 직장이야말로 많은 이들의 일차적인 사회 집단이 되고 말았다”고 썼다. 친족 공동체가 약해지고 종교 활동 비중도 낮아지면서 현대인들에 대한 회사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회사가 성장할수록 초기 구성원들이 가질 수 있는 자긍심과 효능감은 계속 옅어지고 있다. 오늘날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 것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삼무원의 태만과 귀족노조의 보신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회사는 다시 한번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불꽃을 고민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곽도영 산업1부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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